孝文化系列报导-朝鲜文报

재혼가정의 효도며느리 -심양시 흥성촌 박선옥씨

20년 전이다. 심양시 흥륭대진 흥선촌 촌민 박선옥(1966년생)은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평범한 나날을 보냈다. 시집 갈 나이가 되다보니 혼사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찾아왔다.

조선족사회에 효도하는 기업인의 아름다운 손-단동시 권호길 방해란 부부

단동시의 권호길, 방해란 부부는 “아리랑제과점”과 “아리랑회집”을 경영하며 최근년간 조선족사회 봉사에 눈을 돌려 불황속에서도 효도하는 기업인의 “아름다운 손”을 몸소 보여주고있다.

누가 긴병에 효자 없다 했던가 -리의정 조경자 부부의 극진한 효성

우리 민족의 속설에 “긴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병간호가 힘들다는 말이다. 대련시 금주구에 살고있는 리의운(65세), 조경자(60세)부부는 20여년을 하루와 같이 병환에 계시는 량가부모€뿳?로인을 극진히 모셔 실제행동으로 “긴병에도 효자가 있다”는 아름다움을 실천해 대련시 금주구조선족사회의 미담이 되고있다.

현시대의 효녀-정복주

무순현 장당향 상장당촌에 위치한 무순시조선족양로쎈터는 설립되여 10여년간 따뜻한 보살핌과 정성으로 조선족로인들의 행복의 복지락원으로 거듭나고있다. 친딸처럼 로인들을 공경하고 효도한다고 린근에 소문이 자자한 양로쎈터의 “터주대감”은 정복수씨, 일전 양로쎈터를 찾아 정복수씨를 만났다.

걸립무 전승인 김명환 환인걸립무 국가급 무형문화재로 승화시켜

“민간예술가”, “국가급걸립무전승인”, “중화무형문화재전승인공헌상” 등 수많은 칭호와 영예를 받아안은 김명환(69세)선생은 환인태생이다. “김씨가문에서 태여난것만큼 가문 대물림 걸립무를 전승, 발전시키는것은 응분의 책임이다.” 말은 쉽지만 숙명적으로 받아안은 걸립무의 전승과 발양은 사실 민족적 사명감이 없으면 견지하기 어려운 사회적인 책임이였다. 그만큼 환인걸립무는 “국가급무형문화재”로 등록되고 우리 나라에서 무용류종목중 유일하게 “인류무형문화재대표작명록”에 입선되기까지 100여년동안 김명환선생을 비롯한 김씨가문의 피타는 노력이 슴배여있다.

‘혈친’의 정으로 지적장애인 시형을 근 40년간 돌봐

약혼자 가정에 지적장애인이 있다는것을 알았다면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가? 22살 꽃나이에 가정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리춘택씨와 결혼하여 지적장애인 시형을 “친오빠”처럼 근 40년간 돌봐오고있는 정창화씨의 사적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있다.

가문의 효자로부터 ‘동네효자’로

철령시한라산구이식당 백영찬사장(48)은 철령시조선족사회에 널리 알려진 효자다. 4남 2녀중 막내로 태여나 부모님과 형님, 누나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면서 자라서인지 부모님과 가정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부모님들이 선후로 세상을 떠난후 그는 부모님께 못다한 효도를 이웃과 철령시조선족로인협회 로인들에게 정성껏 드려 “동네효자”로 주위의 칭찬을 받고있다.

10여년간 4명 로인의 손발이 되다

“백가지 착한 일중에서 효도가 으뜸이다.” 안산시에 살고있는 최경문(45세) 김명순(39세) 부부는 10여년동안 4명 로인의 손발이 되여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에서 지켜주며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전통미덕 “효도”를 고스란히 실천해왔다.

힘들었어도 보람이 있어요

“제가 시부모님을 잘 모셔서인지 저희 자식들도 저한테 잘해요. 그때 매우 힘들었어도 보람이 있는것 같애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대석교시 수원진 신광촌의 계순화씨(57)의 말이다. 1981년 심양시 동릉구 만융촌에서 살고있던 계순화씨는 지인의 소개로 대석교시 수원진 신광촌의 박영환씨와 맞선을 보았고 영환씨의 따뜻하고도 착한 마음에 끌려 1년간의 련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당신의 이름 독거로인들의 착한 딸

가정에서는 훌륭한 며느리, 훌륭한 안해로 손색이 없고 촌에서는 촌민을 이끌어 치부에로 달리는 코기러기로 손색이 없으며 동네에서는 로인들의 훌륭한 딸로 불리우는 촌간부가 있는데 그가 바로 신빈만족자치현 왕청문진 왕청문조선족촌의 서기 겸 촌민위원회 주임 안향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