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효자로부터 ‘동네효자’로
发布时间:20-07-02 04:51  发布人:金卓    关键词:   

가문의 효자로부터 ‘동네효자’로

-철령시한라구이식당 백영찬 사장

철령시한라산구이식당 백영찬사장(48)은 철령시조선족사회에 널리 알려진 효자다. 4남 2녀중 막내로 태여나 부모님과 형님, 누나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면서 자라서인지 부모님과 가정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 부모님들이 선후로 세상을 떠난후 그는 부모님께 못다한 효도를 이웃과 철령시조선족로인협회 로인들에게 정성껏 드려 “동네효자”로 주위의 칭찬을 받고있다.

  

  1998년 백영찬씨는 한국에서 배운 료리기술로 철령시내에 한라산식당을 오픈했다. 식당을 갓 오픈해 밤낮없이 팽이처럼 바삐 보내면서도 그는 항상 농촌에 계시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군 하였다. 하루 빨리 시내에 아빠트를 구입해 부모들을 모실 타산으로 식당경영에 온갖 심혈을 몰부었다. 4년후인 2002년 마침내 아빠트를 마련하고 부모님들을 모셔와 아침저녁으로 효성을 다했다.

  

  2003년 6월, 백영찬씨는 한라산구이식당 1부, 2부를 세운데 이어 철령시 은주구에 한라산구이식당 3부를 오픈했고 2006년에는 800평방메터 규모의 한라산구이식당 플래그숍을 개장했다.사업하느라 바삐 보내는 아들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어머니는 배가 시름시름 아픈것을 말하지 않고 가만히 약을 먹으면서 지탱했다. 영찬씨 부부가 눈치채고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 검진해보니 담낭암이였다. 수술후 1년동안 입원해있는기간 영찬씨는 안해와 함께 매일이다싶이 심양과 철령을 오가며 어머니 병구완을 했다. 하지만 이들 부부의 절절한 정성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6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버지는 충격을 못이겨 뇌혈전이 발작했다. 걸음을 걷지 못하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로 엄중했다. 안해는 하루에 두세번씩 아버지의 옷을 빨았고 영찬씨는 매일 저녁 아버지의 몸을 씻어드리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년여동안 정성껏 보살폈다.

  4년전, 영찬씨는 장모와 함께 생활하던 안해의 외할머니를 집에 모셔왔다. 장모의 신체도 신체려니와 외할머니를 직접 모시면서 장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치매가 엄중한 외할머니는 고함을 지르기 일쑤였다. 병이 도질 때마다 두 딸애는 무서워 자리를 피했으나 영찬씨는 이마살 한번 찌프리지 않고 극진히 모셨다. 올 4월 외할머니는 9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몇년사이 가문의 어르신들이 한분, 두분 돌아가자 백영찬씨는 기둥을 잃은 기분이였다. 해마다 명절이 되면 부모에 대한 그리움에 허전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부모들이 계실적에도 철령시조선족로인협회를 자주 찾아가 활동경비를 내놓군 하던 그는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부모에 못다 한 효성을 다하고저 틈만 생기면 로인협회를 찾군 하였다. 철령시은주구조선족로인협회의 리영호회장은 백영찬사장이 후원해준 덕분에 협회에서 예쁜 무용복을 열벌이나 사게 되였다며 항상 고마와하고있다. 가문의 효자로부터 “동네효자”로 된것이다.

  

  농민의 아들로 태여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백영찬사장은 불우이웃돕기와 자선봉사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창업초기부터 마을의 독거로인이나 빈곤호들을 남몰래 도와주고있었는가하면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가 설립된후에는 항상 선참으로 사랑의 성금을 보내군 하였다.

  

  현재 철령시조선족기업가협회 회장과 철령시조선족애심기금회 회장직을 맡고있는 백영찬사장은 애심활동이라면 언제나 발벗고 나선다. 지금까지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와 철령시조선족사회에 기부한 사랑의 성금이 얼마인지 모른다.  

  

  올 여름철,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와 료녕구구친우회 회원 50여명이 위문품과 위문금을 들고 철령시에 가 불우로인들을 찾아뵙는 봉사활동을 할 때에도 백영찬사장은 선뜻이 이번 활동에 참가하였고 또 이번 행사에 참가한 회원들을 한라산식당에 모셔다가 푸짐하게 점심을 대접하였다.

  

  백영찬씨는 민족의 문화교육사업에도 남다른 사랑을 몰부어온 미더운 기업인으로 알려져있다. 철령시조선족문화예술관은 성내에서 비교적 늦게 세워지고 단독 청사도 없는데다 경비마저 부족하여 사업에 애로가 많았다. 조선족문화예술관의 애로를 헤아린 백영찬사장은 해마다 조선족의 문화행사때면 소문없이 정성어린 성금을 보내군 했다. 2010년에는 몇몇 기업인들을 뜻을 같이하여 철령시조선족고중에 “남학생장려장학금”을 설치하였다. 사정으로 인하여 후에 다른 기업인들이 장학금을 후원할수 없게 되였음에도 백영찬사장은 지금까지 견지해오고있다. 철령시은주구조선족소학교에도 후원의 손길을 뻗쳤다.

  

  백영찬사장은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여도 바람이 멈추지 않고 자식은 부모님을 봉양하려 하나 부모님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영원히 자신의 기둥으로 되여주실줄 알았던 부모들이 저세상으로 가니 더는 효도할수 없어 마음이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고 말하면서 로인협회나 료녕성한마음애심기금회에 성금을 기부하는것을 통해 부모님께 효도 못다한 애석한 마음을 달래군 한다고 표했다.

 

  “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것이 세월이고 다시 뵐수 없는것이 부모다. 부모들이 있을 때 효도를 잘해야 후회없는 삶을 누릴수 있다.” 대효자 백영찬사장의 속심말이다.

                            최수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