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어도 보람이 있어요
发布时间:20-07-02 04:48  发布人:金卓    关键词:   

힘들었어도 보람이 있어요

-시부모를 극진히 모신 며느리 계순화씨

“제가 시부모님을 잘 모셔서인지 저희 자식들도 저한테 잘해요. 그때 매우 힘들었어도 보람이 있는것 같애요.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요.”  대석교시 수원진 신광촌의 계순화씨(57)의 말이다.  

  

  1981년 심양시 동릉구 만융촌에서 살고있던 계순화씨는 지인의 소개로 대석교시 수원진 신광촌의 박영환씨와 맞선을 보았고 영환씨의 따뜻하고도 착한 마음에 끌려 1년간의 련애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박씨가문에서는 둘째며느리인 계순화씨를 체면있게 맞이하기 위해 삼간기와집을 마련해 세간을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계순화씨는 시부모님을 모실 생각으로 상의끝에 시부모님과 같이 지내던 큰 아들을 내보내고 이들부부가 시부모님과 같이 생활하였다.

  결혼초기 생활형편은 넉넉하지 못했지만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면서 아들딸을 낳고 재미있게 살았다.  

  

  그러던 1990년, 한국에 있는 친척이 시어머니와 남편한테 초청장을 보내오며 아기자기하게 살던 이 가정에도 시련이 찾아왔다. 맏아들은 자기가 먼적 한국에 가겠다고 우겼고 그의 남편은 시형에게 한국갈 기회를 양보했다. 하지만 약보따리를 걸머지고 한국행에 나선 시어머니와 시형은 17만원이란 거액의 빚을 지고 돌아올줄이야…

  빚쟁이들의 빚독촉에 살림집은 저당잡혔고 신고스레 거둔 알곡마저 내놓아야만 했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였지만 계순화씨는 얼굴 한번 찌프리지 않고 시부모님과 남편을 위안했고 궂은일 마른일 가리지 않았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다고 시누이한테서 3만원을 꿔서 심양에서 식당도 해보았으나 오히려 빚만 더 지고말았다.  

  

“인생의 벼랑끝에 서있는 기분이라고 할가요? 매일매일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거의 두려움속에서 세월을 보냈어요.”

  

  다행히 그때 친정오빠가 돈 6만원을 꿔주어 남편이 한국 로무길에 올랐다고 계순화씨는 말했다. 순하고 착한 그의 남편은 한국에서 악착스레 일하였고 10년만에 모든 빚을 갚을수 있었다. 남편이 한국에 있는 동안 그는 녀자의 나약한 몸으로 시부모님을 정성껏 모시면서 두 자식의 공부뒤바라지를 했다.

  시부모님들이 80고개를 넘으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시아버지는 중병으로 2005년에 세상을 떠났고 뒤이어 시어머니도 중풍으로 반신을 잘 쓰지 못하다가 2010년에는 꼼짝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있게 되였다. 시어머니는 그후로 성격이 괴벽해지면서 사소한 일로도 짜증내기가 일쑤였다. 반찬투정은 더 말할것 없었다. 하지만 계순화씨는 한번도 대꾸없이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냈고 또 몸에 욕창이 생길가봐 날마다 안마와 목욕을 해드렸으며 의사를 청해온다, 약을 지어온다, 료리한다 하면서 정성을 다했다. 그리고 해마다 집앞뜨락에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월계화 등 각가지 꽃을 심어 시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렸다.

  

  고된 시집살이와 가사로동으로 그는 체중이 70근으로 되였고 페기종에 우울증까지 앓게 되였다. 주변 사람들은 병시중에 시달리는 계순화씨가 너무 안쓰러워 시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라고 권고하였으나 계순화씨는 절대 안된다며 2014년까지 시어머니의 림종을 지켰다.

  매번 선량하고 효성이 지극한 안해를 말할 때마다 60고개를 바라보는 남편도 눈시울을 적시면서 안해의 짐을 덜어주지 못한 자신을 몹시 자책할뿐만아니라 안해에 대한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식들도 어머니의 효심을 본받아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다. 상해한화그룹에서 근무하는 딸은 어머니를 상해에 모셔다가 병치료도 해주었고 사위도 좋다는 약은 다 사보내주고있으며 한국로무중인 아들도 용돈을 자주 부쳐드리면서 효도를 아끼지 않는다.

  30여년동안 시부모를 극진히 보살피고 간병한 대석교시 수원진 신광촌의 계순화(57)씨는 주변의 귀감이 되고있다.  

  최수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