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창고에서 피여난 백년의 전병향기
发布时间:26-08-19 08:58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운명의 시작: ‘산해관을 넘어 동북으로 이주’와 백년 전병의 탄생

연변에서 유명한 무형문화유산인 장유전병 제작기예의 뿌리는 1930년대‘산해관을 넘어 동북으로 이주(闯关东)’라는 거대한 이주의 물결 속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동에서 돈화지역으로 이주한 진장유의 조부모님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한 장의 전병이 목숨을 구해준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인연을 계기로 그들은 전병 제조 기술과 깊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진장유의 부모님인 진수룡과 왕수영 부부는 오랜 발효 과정을 거치고 탄산나트륨을 첨가한 전병이 당시 업계의 한계였던 ‘시고 질긴’ 맛을 넘어 ‘얇고 부드러우며 향긋하고 단’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들은 발효 연질 전병의 핵심 공정을 확립하게 되였고 이 기술은 왕수영의 세심한 손길을 거쳐 이웃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비밀기예(秘技)로 자리 잡았다. 이웃 주민들의 “항상(经常有) 전병이 있으면 좋겠네요”라는 롱담 섞인 말은 오히려 후날 ‘장유(长有) 전병’이라는 이름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였다.

1973년 진장유가 태여났을 때 그의 어머니 왕수영은 가족의 생계를 유지시켜 주는 전병기예를 기념하여 아들의 이름을 지었다. 이로써 진장유는 태여날 때부터 무형문화유산 제작기예와 운명적인 인연을 맺게 되였다. 어린 시절 진장유는 어머니의 황토 무쇠솥 곁에 다가앉아 김이 문문 피여오르는 환경속에서 한장, 또 한장 완성되는 전병을 지켜보기를 좋아했다. 어머니는 그에게 전병 굽는 손놀림뿐만 아니라 ‘량식을 소중히 여기고 품질을 근본으로 삼는’ 가문의 신념도 전해주었다. 

“이것은 옛날 우리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온 전병이야. 산해관을 넘어 동북으로 떠나올 때 네 아버지 목숨을 구해 주었단다.” 이 말은 무형문화유산 기술에 담긴 생존의 지혜와 정서적 무게를 진장유의 마음속 깊이 새겨 넣었다.

 어머니의 맛을 찾아서: 작은 창고에서 시작된 전승의 길

어른이 되여 맞이한 인생의 한 전환점은 그가 본격적으로 무형문화유산 기예를 계승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였다. 2000년, 가정을 이루고 아버지가 된 진장유는 더 나은 삶을 위해 고향인 돈화시 청구향 동심촌으로부터 돈화시에 진출해 생계를 찾아 헤맸다. 생활의 고됨은 그로 하여금 어머니가 굽던 어린 시절의 전병을 더욱 그리워하게 했다. 그것은 유년 시절의 추억이 깃든 맛있는 음식이자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구체적인 향수와 상징이였다.

기억 속의 맛을 재현하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그는 안해와 함께 12평방메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창고에 초라한 전병 작업장을 차렸다. 그곳이 바로 그가 본격적으로 무형문화유산 전승의 길을 걷기 시작한 출발점이였다. 이 선택은 우연이 아니라 오랜 정서적 축적이 필연적으로 폭발한 결과였다. 어머니의 솜씨는 기술적 토대였고 유년 시절의 미각 기억은 정서적 핵심이였으며 성인이 되여 전통 음식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더 많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좋은 전병을 만들어보자’는 사명감으로 이어졌다.

그는 ‘엄선된 좋은 곡식, 좋은 환경 보장’을 원칙으로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은 13가지 핵심 공정을 엄격히 준수했다. 원재료 발효가 밤늦게까지 이어져도 피곤을 무릅쓰고 작업에 돌입했으며 가문의 ‘얇고 부드럽고 향긋하고 달콤한’ 전병제작 정수를 계승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정직하게 일하고 성실하게 만들라’는 신념을 한장, 한장의 전병에 녹여내면서 무형문화유산 전병제작기예가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생명력을 갖추도록 애썼다.

뼈를 깎는 고난과 신념의 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전승의 책임

진장유의 전승 인생에 순탄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였다. 

2000년 창업 초기, 그와 아내는 12평방메터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창고에 무쇠 솥 하나를 놓고 생존의 시련을 견뎌야 했다. 장유전병의 핵심은 24시간 저온 발효 공정이다. 원재료 발효가 완성되는 시점은 정해진 때가 따로 없어 종종 한밤중에 자명종이 울리면 곧바로 일어나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혹한의 겨울, 창고에는 난방이 없어 두 손이 시뻘겋게 얼어도 전병을 굽는 작업을 멈출 수 없었고 동이 틀 때까지 잠시도 쉴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창고는 허술해 비가 샜고 어느 폭풍우가 쏟아지던 밤에는 비물이 지붕 틈새로 흘러내려 방금 발효를 마친 원액이 젖을 뻔했다. 그는 안해와 함께 우산 챙길 겨를도 없이 맨손으로 원료통을 들어 마른 구석으로 옮겼고 온몸이 흠뻑 젖은 채 오직 이 소중한 식재료를 지키는 일만 생각했다. 그 시절 하루 수면 시간은 4시간도 채 되지 않아 체력은 이미 바닥났다. 안정된 직장과 편안한 삶을 사는 또래들을 보며 깊은 밤 차가운 무쇠 솥 곁에 앉아 스스로에게 망연히 묻기도 했다. “이렇게 고생하며 버티는 것이 과연 가치있는 일일가?”

그러나 어머니의 가르침인 “품질이 생존의 유일한 답이다”라는 말과 전병을 사기 위해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의 인정, 그리고 이것이 가문 3대째 이어온 기술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그는 다시 힘을 내고 일어나 전병 굽는 도구를 손에 쥐게 되였다. 어머니의 다년간의 땀방울과 수고를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고, 어머니의 기술을 잘 살려 ‘장유전병’을 어머니의 기대에 부끄럽지 않은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이같은 끈끈한 혈육의 정은 그가 모든 어려움에 맞서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였다.

그를 지탱한 원동력은 혈육의 정, 전승의 책임감, 소비자의 신뢰, 그리고 사회적 사명감이라는 네 가지 힘이 서로 얽히며 창업의 고난과 시장의 물결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나아가게 했다. 가장 근본적인 동력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가문의 초심에 대한 수호였다. 그의 이름은 이 기술로 인해 지어졌고 유년 시절은 어머니가 전병을 굽던 불빛 연기로 가득 채워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전병은 그 그리움을 담는 매개체가 되였다.

기술의 매력과 미래를 향한 도전: 백년 전통의 불씨를 이어가다

장유전병 제조 기술이 지닌 매력은 첫째로 그 공정의 정교함에 있다. 원료 선별부터 12시간 침지, 55분의 고온 증숙, 24시간의 저온 발효, 그리고 230℃ 고온에서 35초간 굽는 정밀한 조절까지... 모든 공정마다 장인의 경험과 지혜가 담겨있다. 둘째로는 문화적 깊이이다. 1930년대부터 이어져 온 이 기술은 동북지역의 음식문화와 민속을 고스란히 담고있어 중화 농경문화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서 가치를 지닌다.

무형문화유산 전승 과정에서 진장유가 맞이한 ‘미검출’이라는 놀라운 성과와 생방송 열풍은 그에게 큰 감동과 함께 시대가 선물한 값진 경험이였다. 

전병업계의 난제인 노랑곰팡이독소(黄曲霉素) 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작업팀을 이끌고 5년간 공정 개선을 거듭하며 원료 선별부터 발효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철저히 점검했다. 일본 수출 검사 결과가 도착했을 때, 노랑곰팡이독소 수치가 단순히 기준치를 통과한 것을 넘어 아예 검출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공장 전체가 환호성을 질렀다. 2020년에 틱톡 진출 후 석 달 만에 팔로워 50만 명, 생방송 평균 조회수 400여만 회를 기록하며 무형문화유산이 시대와 접목되는 매력을 생생히 체험했다. 진장유가 만들어내는 전병은 전국 각지는 물론 널리 해외의 10여개 국가에까지 수출되고있으며 그는 명실상부한 ‘전병대왕’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다양한 맛과 품종을 자랑하는 '장유전병'

2024년, 진장유는 제5진 연변주급 대표적 전승인으로 선정되였다. 그는 ‘기술은 전수되여야 생명력을 가진다’는 신념 아래 ‘핵심 제자가 선도하고 중추 구성원이 버티며 대중 체험으로 보급하는’ 다층적 전승 인력 체계를 구축했다. 정식으로 제자 의식을 올린 입실 제자부터 일반 수강생, 체험 활동 속에서 전승의 씨앗을 심은 잠재적 인력까지 백년 전병기술이 홰불처럼 이어져 내려오도록 하고 있다.

진장유는 미래에 대해 밝은 전망과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를 동시에 제시한다. ‘건강 중국’전략 아래 저혈당지수, 저지방 등 기능성 제품이 건강 시장의 요구에 부합하고 있으며 ‘노랑곰팡이독소 미검출’이라는 품질 돌파구는 식품 안전 분야에서 차별화된 우위를 점하게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식품생산 시장의 치렬한 경쟁, 젊은 세대의 전통 기술에 대한 관심 부족으로 인한 인재 단절 위험, 높은 원가 부담 등 넘어야 할 산들도 많다. 

현재 진장유는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맛의 전병을 개발하고 체험형 관광 프로그램을 통해 무형문화유산의 매력을 알리는 등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하면서 백년 전병기술의 불씨를 열심히 지켜나가고 있다.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