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커피와 잠
(연길) 김영춘
한때는 내게 긍정에너지를 불어넣던 커피가 언제부턴가 내 잠을 방해하는 달콤한 독이 되였다. 그날도 친구를 만나 담소하며 마신 커피때문에 밤 열두시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조용히 일어나 객실 쏘파에 누워 휴대폰을 켰다. 형형색색의 숏폼을 보니 잠은 더 멀어져 간다. 억지로 눈을 감아보며 뒤척거리다가 언제 잠들었을가. 늦은 아침, 눈을 뜨자 남편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가엔 안쓰러움이 서려있었다.
젊은 시절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커피를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친구가 선물한 예쁜 잔에 커피를 따를 때면 은은한 커피향이 코를 자극하고 마음도 들뜨게 했다. 커피를 마시면 일단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삶의 의욕이 샘솟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무엇을 해도 기뻤다. 커피숍에서 친구와 수다 떨고 온 날은 밤이 깊어도 행복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행복이 친구의 매력때문인지 커피의 마력때문인지 헷갈릴 때가 있었다. 그때는 커피가 내게 보약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촉매제였다.
어쩌다가 중약처럼 검고 쓴 것에 빠져서 헤여나오지 못하는 걸가? 첫사랑과 생애 처음 마셔본 커피에 대한 미련이 남아서일가?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인데 그럴리가? 나이 들면서 점심 먹은 후 커피 마시면 그날 밤은 반드시 잠을 설쳤다. ‘커피때문에 한껏 즐거웠으니 요만한 대가는 치뤄야지', 처음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불면의 다음 날은 늘 흐리멍텅한 기분이였다. 그 흐릿함을 다시 커피로 정신 추스르고 흥분 속에 머물렀다. 그러는 사이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사흘 련속 밤잠을 설친 뒤면 치아가 시큰거렸고 입술이 부르트고 감기가 잘 찾아왔다. 건강검진에선 내 뼈가 나이보다 허약하다고 나왔다. 뉴스는 불안을 더했다. 현대인 불면증의 주범이 커피 과다섭취라는 이야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신 어느 스무살 녀자가 암으로 세상 떠났다는 이야기, 어떤 외국의 도시에서는 판매하는 커피에 담배갑처럼 “커피는 몸에 해롭다”는 경고문을 붙인다는 소식도 들렸다.
커피를 끊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쾌락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통을 일으킨다면 그 쾌락은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어느 유명인의 말을 타자해서 책상앞에 붙여놓기까지 했다. 커피를 안마시니 처음엔 금단현상이 생겼다. 머리가 조금씩 욱신거렸고 속은 울렁거렸다. 그러나 그날 밤은 달라졌다. 잠을 잘 자게 되였고 숙면을 취하고 나면 몸이 가벼워졌다. 그런데 건강을 되찾으면 또 커피가 그리웠다. 술을 못마시는 내가 커피마저 없으니 사는게 너무 슴슴했다. 마음은 고요한 호수같았지만 무엇인가 이루고자 하는 욕망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고요함은 편안했지만 그 편안함은 너무나 싱겁게 느껴졌다. 결국 또 커피를 사서 마시곤 또다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몸에 탈이 생기면 또 후회하며 사둔 커피를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한달이 좀 넘으면 또 커피를 마신다. 이토록 어리석은 반복을 오간지 어느덧 3년이 된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 억만장자가 로화방지를 위해 수년간 커피를 끊었으나 다시 모닝커피를 마신다는 뉴스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카페인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에 따른 결정이란다. 나는 씩 웃었다. 이보다 더 좋은 핑계가 있을가? 나는 또 커피를 샀다. 커피향을 맡는 순간 그 익숙한 설렘이 다시 살아났다. 마치 청춘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가슴 한가득 차올랐다. 이 황홀함뒤에 찾아올 긴 밤을 나는 너무 잘 알지만 매일 아침 이 유혹에 손을 내민다. 그래도 아침에 커피를 마시니 점심에 마셨을 때보다 불면의 시간이 짧아졌다고 스스로를 달래면서. <인간은 실수를 되풀이한다>는 말은 나를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는 커피냐? 잠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설렘이냐? 무감각이냐의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