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수필문학상 대상작품---아버지의 밤을 밝히던 등불
发布时间:26-07-29 10:53  发布人:白一婷    关键词:   

 (서란) 김홍화

 

밤이 깊어지면 집 안의 불은 하나씩 꺼졌다. 그러나 아버지의 방만큼은 예외였다. 그 방은 작은 도서관 같았다. 벽을 따라 책장이 놓여 있었고 손때 묻은 책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책상 위에 놓인 30촉짜리 백열등이 연한 주황빛을 은은히 흘리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에서 아버지는 원고지를 펼쳐 놓고 글을 쓰고 계셨다. 세상을 밝히기에는 소담한 불빛이였지만 아버지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가끔 아버지는 펜을 멈추고 방금 쓴 문장을 낮은 소리로 읽으셨다. 천천히 읊조리는 목소리는 어린 나에게 마치 주문처럼 들렸다. 뜻은 잘 알지 못했지만 마음이 먼저 알아들었다. 책을 꺼내 한장씩 넘기며 종이 냄새에 젖어 갔고, 내 키도 한뼘씩 자라났다. 글보다 먼저 생각의 깊이와 문장을 대하는 진지함을 배웠다.

  

적막이 짙어갈 수록 잉크와 종이 냄새가 섞인 공기가 아련하게 마음을 적셨다. 원고지를 스치는 펜촉의 사각거림이 고요히 울렸다.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밤이면 아버지의 방은 따스한 온기로 가득했다. 후날 나는 그것이 아버지가 스스로를 붙들기 위한 시간이였음을 알게 되였다.

  

긴 하루를 마치면 아버지는 책상 앞에 앉으셨다. 낡은 원고지와 검은 만년필, 반쯤 식은 찻잔이 늘 그 자리에 놓여있었다. 방문이 닫히면 집안의 공기는 차분히 가라앉았다. 잠시 뒤 차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면 아버지의 펜은 날개를 단 듯 움직였다. 작은 주황빛 등 하나가 모래알 같은 수많은 밤을 지켜주며 말없이 방안을 비추고있었다.

  

아버지는 글을 ‘잘’ 쓰려는 사람이 아니라 ‘꾸준히’ 쓰는 사람이였다.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저녁이면 어김없었다. 적막 속에서 홀로 문장과 마주하셨다. 몸이 무거운 날에도 글 한줄을 남기고서야 잠자리에 드셨다.

  

글이 잘 풀리는 날에는 싱글벙글 웃으며 나를 불러 문장을 읽어주고 “어때, 이건 괜찮지?” 하고 물으셨다. 글이 막히면 펜을 책상우에 ‘툭’ 내려놓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의자에 등을 기댔다. 한줄을 지우고 다시 쓰고, 또 지우고 다시 쓰기를 거듭했다. 구겨진 원고지는 의자옆에 슬며시 쌓여갔다. 작은 소용돌이가 방안을 스쳐지나간 뒤 아버지는 손을 깍지 낀 채 가만히 숨을 골랐다.

  

심기가 사나울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삽을 들고 집 밖으로 나가셨다. 고르지 않은 흙길을 다듬고 나면 막혔던 생각이 조금씩 풀리는 모양이였다. 땀을 닦으며 방으로 돌아오는 걸음에는 다시 글을 이어보려는 기운이 묻어있었다.

  

글 한편이 완성되면 아버지는 우리를 부르셨다. 어머니와 나, 그리고 동생들은 숨을 죽인 채 자리에 앉았다. 방안에는 아버지의 랑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낮게 읊조리다가도 때로는 감정을 높이며 한구절 한구절에 생명을 불어넣으셨다. 깊은 울림이 방안을 가득 채웠고, 그 여운은 지금도 내 가슴 한켠에 머물러있다.

  

“어디를 고치면 좋겠느냐?”

  

아버지의 물음에 나는 목이 메여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문장 속에 담긴 진정성과 열의가 깊이 느껴졌다. 우리 집은 작은 문학의 공간이였다. 어린 나는 아버지의 글보다 글을 읽는 목소리의 결을 더 오래 기억하고 있다. 살아오면서 아버지처럼 감정을 담아 읽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아버지에게 문학은 박수를 받기 위한 일이 아니라 마음을 다스리는 오래된 습관이였다.

  

새벽 출근 전에도, 저녁 퇴근 후에도 아버지는 동네 흙길을 다지곤 하셨다. 비가 오면 길은 금세 진흙탕이 되였다. 그 광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다. 삽으로 길을 고르고 손으로 돌을 골라냈다. 시멘트길이 생기기 전까지 그 일을 한번도 멈춘 적이 없으셨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였다. 아버지는 문장 한 줄을 쓰듯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살아가며 자신만의 문법으로 삶을 써 내려가고 계셨다.

  

젊은 시절 아버지는 군 복무를 마친 뒤 공무원 자리를 제안받으셨다. 그러나 교사의 길을 택하셨다. 아버지는 어떤 자리에 계셨더라도 결국 글을 쓰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섰으리라. 비단길도 꽃길도 아니였지만 그 길을 아버지는 오랫동안 한결같이 걸으셨다.

  

퇴직후 아버지는 한쪽 눈을 잃으셨다. 시야가 서서히 흐려지는 동안에도 끝내 글을 놓지 않으셨다.

  

“눈으로 쓰는 게 아니다. 마음으로 쓰는 거지.”

  

그 말은 지금도 내 귀가에 남아 있다. 희미해진 시야 속에서도 아버지는 원고지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한글자씩 써내려가셨다. 시력이 거의 남지 않았을 때에도 종종 밖으로 나가 생각을 정리한 뒤 다시 방으로 들어오셨다. 벽을 더듬거나 허공에 손을 뻗은 채 되뇌던 독백은 어느새 글이 되고 문장이 되였다.

  

집에 돌아와 원고지 앞에 앉으면 글자는 자주 비껴갔다. 줄이 틀어지고 여백이 어긋났다. 그래도 펜은 늘 같은 자리에 있었다. 글씨는 점점 기울어 갔지만 펜을 쥐는 방식만큼은 끝내 바뀌지 않았다.

   

말년에 뇌종양으로 두통이 잦아졌을 때도 글을 내려놓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말리셨다. 그럴 수록 아버지의 말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날 어머니가 나를 힐끗 보며 툭 던지듯 말했다.

  

“몸보다 글이 먼저야. 쓰다 죽어도 후회 없을 사람이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유품을 정리하다가 나는 노란색 서류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는 시조집 두권과 단편소설 서른편 남짓, 그리고 오래된〈료녕조선문보〉 신문 한장이 조심스럽게 접혀있었다. 신문 속 사진에는 소설〈피줄의 호곡성〉으로 2000년 LG컵 압록강문학상을 수상하며 소감을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시조집 속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새겨져 있었다. 아버지는 《오늘의 문학》 작품상을 받기 위해 고국에 가셨다가 상주의 고향집을 찾으셨다. 오십여년 만에 다시 밟는 땅이였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한편의 시를 쓰셨다. 〈태어난 고향집을 바라보며〉였다.

   

“추녀에 서리였던 어머님의 신음이 / 광야의 혹한에 떨며 쓴 열매 맺힐 적 / 오가던 꿈의 옷자락은 피눈물에 얼룩졌소….”

  

봉투를 들고 어머니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으셨다. 그러다 아주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여셨다.

  

“글쓰느라 집안이 편할 날은 없었지. 눈도 잘 보이지 않는데 끝까지 붙들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게 늘 원망스러웠다.”

  

잠시후 어머니는 봉투를 내 손에 건네며 덧붙이셨다.

  

“그래도 이건 네 아버지의 인생이다. 남겨야 한다.”

  

나는 그 무게를 안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희미한 시력으로 더듬어 쓴 마지막 원고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책상 우에는 반쯤 닳은 만년필 곁에 미처 끝내지 못한 문장 하나가 중간에서 멈춰 있었다. 아버지의 글이 세상의 인정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버지에게 글은 세상을 향한 말이 아니라 하루를 의미 있게 건너기 위한 버팀목이였다.

  

전기가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흔들리는 초불에 의지해 밤을 보냈다. 그러다 툭 하고 전기가 들어오는 순간, 30촉짜리 전구 하나가 칠흑 같은 어둠을 밀어냈다. 그 빛은 크지 않았지만 고단한 하루를 마친 아버지의 밤을 밝히기엔 족했다.

  

아버지에게 작은 등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밤에도, 몸이 무거운 날에도, 눈이 흐려진 뒤에도 아버지는 늘 그 주황빛 등불 아래로 돌아오셨다. 나는 그 빛 아래서 잠이 들었고 그 빛 속에서 아침을 맞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주황빛이 번지면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밝아온다. 아직도 그 방에서 아버지가 펜을 들고 계실 것만 같다. 아버지는 그 등불 하나에 기대어 긴 밤을 건너오셨다.

  

문학은 오래동안 내게 먼 세계였다. 나는 그 문 앞을 서성이다가도 언어라는 벽앞에서 자주 멈춰 서곤 했다. 그저 읽는 일에 머물던 어느날, 문득 한줄이라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마음 어딘가에 남아있던 흐릿한 흔적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워 잠깐이라도 붙잡아 두고 싶었다. 몇 문장을 더듬듯 적어 내려가던 순간, 오래된 기억 속 한 사람이 조용히 떠올랐다. 아버지였다.

  

사람을 만나면 나는 늘 상대의 말에 먼저 귀를 기울인다. 그것이 언제부터 내안에 자리 잡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끝까지 듣고 나서야 한마디를 건네던 모습, 한줄을 붙든 채 밤을 건너던 모습, 끝내지 못한 문장을 남기고 떠난 뒤모습이 차례로 겹쳐진다.

  

밤이 깊어지면 나 역시 책상 앞에 앉는다. 오늘도 아버지가 남긴 침묵 우에 글 한 줄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