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수필문학상 은상작품. 사랑의 번역법
发布时间:26-07-15 08:46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아리랑수필문학상 은상작품

사랑의 번역법

      (연길) 리영언

밤이 깊어질수록 뒤척이시는 할머니의 손바닥에서 낮고 짧은 신음이 새여나왔다. 그 소리는 안온한 일상의 결을 거칠게 할퀴며 내 마음의 벽을 아프게 두드렸다. 집은 더 조용해졌다. 조용해진다는 것은 소리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낮동안 애써 밀어내던 것들이 하나씩 또렷해진다는 뜻이였다. 쏘파 한쪽에 앉아 무릎을 천천히 문지르며, 나는 노트북 앞에서 외할머니의 무릎상태를 검색하고 있었다. 어두운 거실에서 노트북 화면이 내뿜는 서늘한 청색광만이 내 얼굴을 차갑게 비추고 있었다. 화면 우로는 뼈가 시리도록 정교한 의학용어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닳아버린 연골, 유일한 대안인 수술, 그리고 그것 마저 버티기 힘든 로쇠한 몸. 단어들은 원인과 결과를 분명히 가르고, 가능성과 한계를 수자로 명확히 정리해 주었다.

데이타는 할머니의 고통을 무미건조한 문장으로 직역할 뿐, 그 안에서 무너져 내리는 삶의 무게까지 읽어내지는 못했다. 나는 닳아버린 연골의 마모도를 생각하며 그것이 할머니가 견뎌온 세월의 함축임을 망각했다. 타자의 고통을 객관화하려는 시도는 결국 내 안의 두려움을 격리하려는 비겁한 방어기제였음을, 차가운 모니터 뒤로 숨어버린 나는 알지 못했다.

나의 서늘한 청색광의 세계를 가르고 들어온 것은 어머니의 손에 들린 투박한 상자였다. 무릎에 효험이 있다는 정체불명의 의료기기. 과학의 문법으로 세상을 읽어왔던 내게 그 기계는 통계의 벽 앞에서 바스라질 보잘 것없는 지푸라기에 불과했다. 저 어설픈 기계가 외할머니의 닳아버린 세월을 되돌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정답이 없는 고통 앞에서 오답만을 골라쥐는 어머니의 손이, 그 무모한 간절함이 나는 견디기 힘들었다.

어머니가 기계의 전원을 켜는 순간, 거실의 공기가 일렁였다. 기계에서 뿜어져 나온 붉은 빛이 내 차가운 수치들 우로 거칠게 번져나갔다. 증명되지 않은 붉은 온기가 검증된 푸른 질서를 조용히 침범하는 순간이였다. 내 파란 화면 속 데이타들이 저 붉은 빛은 가짜라고, 아무런 효능도 없는 기만이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그 붉은 빛을 견딜 수 없어, 나는 가장 예리하고 잔인한 단어만을 골라 던졌다.

“이건 아무런 효과가 없어. 론문에도 다 나와 있다고. 이런 건 사기나 다름없어!”

방안이 얼어붙었다. 내 날카로운 외침에 외할머니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으로 내 차가운 손을 잡으셨다. 그러자 내가 던진 비수같은 말들은 갈 곳을 잃고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래, 우리 손자가 할미 아픈 거 낫게 해주려고 공부를 참 많이 했구나… 고맙다.”

나는 외할머니가 내 말을 리해하지 못해 엉뚱한 대답을 하신다고 생각했다. 내 정직한 조언이 ‘걱정’으로 오역되는 이 아득한 어긋남이 그저 답답할 뿐이였다.

한참을 서있던 엄마가 그런 나와 외할머니를 번갈아 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럼 내가 뭘 해야 되는데.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어?”

잠시 말이 끊겼다. 엄마는 숨을 한번 고르고, 마치 설명하듯이 아니, 설명이 아니라 고백하듯 말을 이어갔다.

“난 내 엄마가 지금 몹시 아프다는 건 알아. 매일 밤 무릎 때문에 잠 못 이루시고, 아침에 일어나실 때마다 신음소리가 나는 것도 알아.”

“그게 다야. 과학이든 사기든, 뭐라 불러도 좋아. 조금이라도 덜 아프실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기운을 내실 수 있다면…”

엄마는 기계 우에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이런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해.”

론리가 지배하던 내 파란 화면 너머에서, 나는 한번도 읽어본 적 없는 문장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문장의 이름은 아마도 절박함이였을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론리가 지배하는 내 파란 화면 너머로, 한번도 읽어본 적 없는 ‘절박함’이라는 생경한 문법이 밀려오고 있었다.

엄마의 그 말들이 할퀴고 간 가슴 안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확 쏟아져 내렸다.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에 지독한 억울함만이 소금기 마냥 쓰게 남았다. 나도 외할머니를 사랑하는데!

매일 밤 잠들기 전, 외할머니의 닳아 문드러진 뼈가 마찰하며 내는 비명을 내 뼈마디가 저리도록 떠올렸던 수많은 밤들. 내가 노트북을 켜고 론문의 숲을 헤맸던 것은, 외할머니의 고통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적어도 나만은 흔들리지 않아야 외할머니의 남은 시간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였다.

나의 ‘옳은 말’들이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에 비수가 되여 꽂힐 때마다, 나의 세계도 함께 무너지고 있었다. 왜 나의 진심은 입술을 타는 순간 차가운 론리의 문법 속에 갇혀, 잔인한 독설로 오역되여 버리는 것일가. 내 정직함이 가족들에게는 폭력으로 읽히는 이 지독한 부조리 앞에서 나는 참담하게 고꾸라졌다. 나는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끝내 배우지 못한 채 자라버린 모양이다. 그날 밤, 내가 느낀 분노는 엄마를 향한 것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생생한 현실로부터 자꾸만 멀어지는 나 자신을 향한 것이였다. 나는 사랑이라는 모국어를 잃어버린 채, 고독한 론리의 외국어만을 더듬는 이방인이였다.

며칠이 지났지만, 거실의 기계는 매일 밤 켜졌다. 나는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열다가도, 문틈으로 가늘게 스며드는 그 붉은 빛을 오래동안 응시하곤 했다. 그 빛 곁에서 엄마는 외할머니의 무릎을 만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내 마음 속 억울함의 날이 조금씩 무뎌졌다. 엄마는 정말 몰랐을가? 저 기계가 과학적으로 얼마나 허술한지 정말 몰랐을가?

엄마는 늘 외할머니 곁에 있었다. 약을 챙기고, 찜질팩을 데우고, 작은 신음소리에도 가장 먼저 불을 켰다. 나는 그 곁에서 수치와 확률을 따지며 고통을 분석했지만, 엄마는 그 고통 자체를 온몸으로 함께 견디고 있었다. 엄마에게 저 기계는 물리적인 치료기가 아니였다. 그것은 ‘무엇이라도 해야만 하는’ 사랑이 빚어낸 하나의 행위이자, 론리를 넘어서는 ‘초리성(超理性)’의 언어였다. 엄마는 믿고 싶은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가느다란 지푸라기를 통해서라도 사랑하는 이의 오늘을 지켜내야만 했던 것이다.

그 붉은 빛 아래에서 외할머니는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조금은 덜 아픈 것 같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단순한 인사치레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외할머니의 목소리에 담긴 행간을 비로소 읽어내기 시작했다. 그 말에는 기계에 대한 기대보다, 딸을 향한 조심스러운 배려가 더 짙게 배여 있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기계소리가 멎은 뒤에도 외할머니의 방에서는 아주 낮은 신음이 새여나왔다. 외할머니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 기계가 어떤 기적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외할머니는 매일 “괜찮다”고 말했다. 엄마가 ‘절박함’이라는 언어로 지푸라기를 내밀면, 외할머니는 ‘인내’라는 언어로 그 지푸라기를 금줄처럼 소중히 받아쥐였다. 그리고 나는 문득, 며칠 전 내 날카로운 독설을 ‘고맙다’는 말로 받아내던 외할머니의 표정을 떠올렸다.

외할머니야말로 우리 집의 가장 오래된 ‘통역가’였다. 어머니의 비리성적인 분투를 ‘지극한 효심’으로, 나의 서슬퍼런 훈수조차 밤새 모니터를 지켰을 ‘손자의 기특한 사랑’으로 기꺼이 오역하셨던 것이다. 어쩌면 사랑이란, 정확한 번역보다 이런 오역 속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답이라는 이름의 조각난 글자들에 매몰되여있었지만, 외할머니는 그 파편들을 이어붙여 사랑이라는 찬란한 맥락들을 완성하고 계셨다.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완벽한 번역보다 더 숭고한 것은, 끝내 리해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삶으로 껴안으려는 그 서툰 오역의 과정이였음을.

그 이후로 나는 종종 외할머니 앞에서 말을 고르곤 한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다가 멈추고, 목끝까지 차오른 과학적인 수치들을 삼키는 일은 여전히 서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입술을 비집고 나오려던 그 ‘옳은 말’들이 때로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를 방해하는 소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노트북을 덮자 얼굴을 차갑게 훑던 서늘한 청색광이 비로소 자취를 감췄다. 화면 너머의 정교한 데이타들이 사라진 자리 우로, 문틈을 타고 넘어온 어머니의 붉은 빛이 낮게 깔렸다. 그 빛은 론리의 벽을 허물고 내 발등 우에 머물며, 증명할 수 없는 절박한 기도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그 붉은 빛을 한참 바라보았다. 수치로 환산되지 않는 저 투박한 손길이, 과학의 문법으로는 끝내 읽어낼 수 없었던 저 지푸라기같은 간절함이, 할머니의 닳아버린 세월우에서 어떤 위로가 되고 있는지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랑은 늘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다. 할머니는 인내의 언어로, 어머니는 절박함의 언어로, 그리고 나는 오만한 과학의 언어로 각자의 사랑을 말해왔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진심을 정확히 번역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어긋나고 오역한다. 허나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사랑이란 타인의 언어를 완벽히 번역해내는 기술이 아니라, 그 서툰 오역의 틈새로 새여나오는 온기까지 기꺼이 껴안는 일임을. 그날 밤, 우리 가족이 나눈 불협화음은 실은 가장 뜨거운 사랑의 반증이였다.

창밖으로 달빛이 내려앉아 거실의 붉은 빛과 노트북의 푸른 빛을 하나로 섞어놓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한참 서 있었다. 밤은 깊었고, 집안에는 서로 다른 언어들이 부딪혀 만들어낸 온기만이 오래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