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늘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
(광동)김금단
손을 많이 사용해서일가, 아니면 찬 것을 많이 먹어서일가? 8월초 어느 날 밤, 갑자기 열 손가락에 통증이 밀려와 끙끙거리며 밤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손가락이 시체처럼 뻣뻣하게 굳어 내 몸에 붙은 손이 내 손 같지 않게 느껴졌다.
이튿날 병원에서 건초염(腱鞘炎) 진단을 받았다. 비싼 중약과 서약을 처방받고 파스를 붙였지만 오히려 몸에 열이 올라 입안에 콩알만한 부스럼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하루밤 푹 자면 나았을 텐데 이번엔 달랐다. 열흘이 넘게 고생해서야 겨우 나았다.
파스를 손가락에 붙이면 피부가 빨개지며 과민반응이 생겼다. 일일 업무일지를 기록하려고 볼펜을 쥘 때마다,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신경을 따라 콕콕 아픔이 전해졌다. 주변에서는 “물리치료를 해보라”, “반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말라”, “손을 아끼면 저절로 낫는다”는 등 다양한 조언이 쏟아졌다. 하지만 일을 해야 하는데 모든 것을 손에서 놓을 수는 없었다. 통증이 심할 때면 운남백약을 뿌리거나 뜨거운 물에 손을 담그면 잠시 완화되였다.
어느 날 저녁 목이 말라 랭장고에서 꺼낸 생수병을 두 손으로 꽉 잡고 돌려봐도 뚜껑이 꿈쩍하지 않았다. 몸무게 60kg의 내가 1kg도 안 되는 작디작은 생수병 마개 조차 열 수 없다는 현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옆에 남편이 있었다면 “자기, 마개 열어 줘”라고 말할 수 있었을 텐데, 텅 빈 집의 정적 속에서 나의 무기력함만이 집안을 메웠다. 결국 다른 생수병을 찾아 애쓰며 열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물 한 모금의 소중함을 알았고 혼자여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비참함을 겪었다.
“괜찮아질 거야. 그래도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밥을 해서 먹을 수 있잖아. 힘내!” 스스로를 위로하며 마음속에서 고개를 드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나씩 걷어냈다. 삶이 무겁게 내려앉아 원치 않는 깊은 곳으로 이끌어도 그 무게를 견디며 버텨야 했다. 건강이 밑바닥에 있을 때 남은 길은 오로지 조금씩 되짚고 올라가는 일뿐이였다. 두려워할 것이 없어졌다.
나는 아픔과 공존하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감사일기를 시작했다. 현실이야 어떻든 손의 건강을 회복해야 했고, 모든 것을 감추고 웃으며 살아야 했다.
첫 시작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했다. 아침 회사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온기, 손이 아파 힘들 텐데 주말 점심에 감자떡을 구워주겠다는 친구의 전화, 고향에서 아버지가 주신 현찰로 산 모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정, 동료가 넘겨준 손을 따뜻하게 하여 통증을 완화해주는 발열 마우스패드 등… 돌아보니 사소한 것들 속에 감사함이 숨어 있었다.
서울에서 돌아오는 남편에게 접이식 등산지팡이만 부탁했는데, 무거운 운동음료며 갖가지 한국산 생필품까지 두 캐리어나 들고 왔고 그다음 번에는 13kg이나 되는 책도 가져다주었다. 공항에 픽업 나가 남편으로부터 캐리어를 넘겨받으며 그 무게는 단순한 무게가 아니라, 말없이 나를 배려하는 마음의 무게임을 느꼈다. 매번 픽업할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찬 캐리어의 무게는 종종 말없는 실천으로 전달되는 사랑임을 깨달았다.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감사한 일을 기록하던 어느 날부터 삶의 일상 자체에 감사함이 스며있음을 깨달았다.
계수나무의 은은한 향기, 동료가 사준 오후의 커피, 12월의 반팔 차림 날씨… 주변을 들여다보니 내 일상은 감사함으로 가득 차있었다.
딸을 보러 혜주에서 광주까지 고속도로가 막혀 왕복 여섯시간을 운전하고 나면 피곤한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일수록 더 미세한 것까지 감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딸과 오랜만에 만나 포옹할 수 있는 행복,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아열대의 아름다운 풍경,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감사,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일기에 적었다.
감사일기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되여주었다. 삶은 해가 쨍하고 뜨는 날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의 련속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고 어둡고 엎어진 자리에서 다시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서는 날들의 련속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몇달 동안의 치료를 거쳐 손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열 손가락이 뻣뻣해지고 통증이 밀려올 때가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문득문득 찾아오는 아픔은 신경을 자극하며 나를 괴롭히지만 이제는 그 아픔에만 매몰되지는 않는다. 그 아픔이 있었기에 현재의 순간순간을 더없이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친구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게 되며, 가족의 소중함이 깊게 와닿고,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힘들어도 순간순간을 우리는 인내하며 버텨내고 살아내야 한다. 나의 감사일기는 예측할 수 없는 일상에서도 작은 감사함으로 내 령혼을 맑게 해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밝게 해주었다.
따스한 오후 해살이 30층 높이의 사무실 창가를 비추고 있다. 난 오늘도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