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불타는 노을
(심양) 황혜영
오늘 또 단동으로 간다. 리초선 시인의 첫 시집 《다섯시 반의 노을》 출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3년 전, 우리 수연수필 맴버들은 단동에 계시는 최철 박사의 주선으로 단동에서 문학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번 모임에서 나는 리초선 시인을 처음 만났었고, 리시인의 시작 〈다섯시 반의 노을〉을 접했었다. 첫눈에 내 시선을 사로잡고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시였다. 리초선 시인은 그로부터 3년여 동안 창작한 130여수의 시를 묶어 바로 3년 전 접했던 그 시의 제목을 표제로 단행본을 출간했다. 그리고 오늘은 출간 기념식을 가진다.
단동역에 도착하여 출구를 나서니 최철 박사가 차를 대기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3년 전 그대로의 친근한 모습이다. 유식하지만 틀이 없고 유머스러워 조금도 부담스럽지 않은 최철 박사다.
함께한 수연수필 맴버들은 최철 박사의 안내를 받아 푸르른 압록강변에 자리잡은 달섬에 도착하였다. 오늘 리초선 시인의 시집 출간 기념식이 바로 이 달섬의 한 로천카페에서 진행된다고 최철 박사가 알려주었다.
‘로천카페에서……?”
출간 기념식을 분위기가 그럴듯한 회의실에서 할 거라는 나의 예측은 한참 빗나갔다. 카페 입구에 걸려있는 ‘엄마 리초선 사랑합니다’, ‘시인 리초선 사랑합니다’란 우리말 표어가 여기가 곧바로 행사장임을 말없이 알려주고 있었다.
카페 정원에 들어서니 놀라움과 감탄 그 자체였다. 시인의 섬세한 감각과 손길에 의해 새로 단장된 장소는 은은하면서도 우아한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카페 안 적재적소에 활짝 피여있는 각양각색의 꽃들, 유유히 흐르는 압록강 물줄기의 때묻지 않은 출렁임소리, 파라솔 밑에서 차 한잔 혹은 커피 한잔 마시면 저도 모르게 시상에 젖어들 것만 같은 환상적인 장소였다.
출간식 시작과 함께 가는 보슬비가 하늘의 축복 인양 소리없이 내리며 카페의 천막을 촉촉히 적시고 압록강 우에 피여나는 하아얀 물안개가 달섬을 포근히 감싸안으며 출간식에 시적 랑만을 더해주고 있었다.
시인의 인사말이 내 가슴을 울렸다. 시가 좋고 시쓰기가 좋고 문인들과의 만남은 더욱 좋다고 그녀는 심중을 토했다. 그러면서 오늘 이 자리를 함께 한 모든 분들과 살아오는 동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시집을 드린다고 했다. 이어진 지인들의 진정어린 축하와 보슬비 마냥 모든 이의 가슴을 적셔준 시랑송, 그리고 시인이 손수 마련한 풍성한 오찬까지 시의 향기가 우리들의 일상 속에 진하게 피여오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다.
나는 선물받은 시집을 펼쳐들었다. 그녀의 마음을 상징하는 듯한 은은한 연분홍색 표지가 가슴에 와닿았다. ‘다섯시 반’의 연분홍 ‘노을’,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 ‘노을’은 때론 짙게, 때론 엷게 빛나고 있었다. 그 노을 속에는 “만남과 리별, 그리움과 고독, 아름다웠던 부부의 기억, 홀로서기를 향한 고투, 그리고 시와 독서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과정”이 고스란히 스며있었다.
시인의 생활담은 깨달음 다름 아니였다. 남편을 여의고 한동안 침식을 잃었으나 무너지지 않고 ‘김씨맛집’을 지키고 있는 시인은,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시인은 더없는 축복이라고 했다. 말없이 조용히 찾아주는 단골을 맞이하고 보내는 와중에 책을 읽고 시를 쓰며 마음을 다스린다는 그녀는 시집 출간이 아니여도 진정한 시인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
달섬을 떠나며 달섬을 바라보니, 안개 걷힌 달섬 너머 푸르른 압록강물이 유유히 흘러 흐르고 압록강 물결이 다달은 수평선 너머에는 연분홍 노을이 짙게 불타고 있었다. ‘옹근 여섯시의 노을’, 불타는 그 노을 속에서 리초선 시인이 방불히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