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강변에서 만난 어느 로부부
(목단강) 리춘렬
어느 날 늦은 오후 우리 부부는 강변을 거닐다 무심결에 강둑 아래로 눈길을 멈췄다. 년세가 꽤나 많아 보이는 로부부가 다정히 손을 잡고, 끌리고 끌어올리며 강둑을 오르고 있었다. 하아얀 모시저고리에 검정색 조끼를 산뜻이 받쳐 입고 있는 것을 보매 우리 백의족임이 틀림없었다.
아직은 정정해 보이는 백발의 할머니가 구부정한 백발 할아버지를 층계 우로 끌다 싶이 하며 끌어 올리고있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손에 끌려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한폭의 색바랜 풍경화를 련상시킨다.
우리의 모든 세시풍속이 날로 잊혀져가는 요즘 세월에 그나마 강변에서 우리 겨레의 멋과 풍속을 말없이 이어주는 숨은 정성이 아직도 우리 둘레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흐뭇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듯이 로부부의 거동을 도우려고 층계를 밟고 내려가 마중했다.
“할머니 올해 춘추가 어떻게 되십니까?”
할머니는 흐릿한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 보며 또렷또렷 대답하신다.
“할부지는 여든 일곱, 나는 여든 아홉!”
할머니의 목소리는 아직도 짱짱하시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되려 두살이나 년상인데도 할아버지보다 정정하시다.
로부부는 마치 이 세상 끝까지 함께 갈 것처럼 두 손을 한시도 놓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보기 좋았다. 비록 온몸에 세월의 흔적을 남겼지만 아름답게도 늙어가고 있었다. 내 손에도 그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아 나는 심한 감동과 감전을 느꼈다.
그래서 베이컨은 덮어놓고 늙은 것, 오래된 것은 다 좋다고 했나 보다. 고목은 불을 때기에 좋고 오래 묵은 술은 마시기에 좋고 오랜 친구는 믿을 수가 있어 좋고 노련한 작가의 글은 읽을 재미가 있어 좋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괴테의 립장은 달랐다. 로인의 삶을 ‘상실’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면서 건강, 로동, 친구, 꿈… 등은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잃어간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늙음’이 ‘낡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자기 인식과 행동 철학이 중요한 관건이 되게 마련이라고 했다. 늙음 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도리여 새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곱게, 점잖게 늙어가는 이들은 늙지만 낡지는 않는다. 늙음이 곧 낡음이라면 삶은 곧 상실이자 ‘죽어감’의 일 뿐이다. 제 구실을 하지 못할 정도로 낡고 오래된 현상을 로후(老朽)라고 한다. 로후는 늙을 ‘로’와 썩을 ‘후’자의 결합이다. 그러니까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 지도록 자신이 가꿔야만 한다. 숙성과 낡음은 삶의 미추(美丑), 그러니까 삶의 아름다음과 추한 모습으로 갈라놓는다. 곱게 늙어간다는 것, 원숙하게 늙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멋있고 아름다운 인생 아니겠는가?
그날 강물은 참으로 맑기도 하여 나를 설레게 했다. 흐르는 강물이 썩지 않는 것처럼 사람도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다고 한다. 물의 흐름은 바다를 향하는 성장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장을 멈추기만 하면 곧 늙음이 오고 죽음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늙으려고만 하지 말고 성장하려고 애써야 한다. 나이를 먹으며 세상이 계속해서 날 버린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 세상은 종래로 나를 가진 적이 없다. 우리가 늙는 것은 새로운 성장뿐이다. 내 세상이라는 개울가에서 나와라. 너와 나의 인생이 그렇다. 탄생과 죽음은 아주 작은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것을 알아버리는 것이 바로 늙어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책을 읽었지만 사실상 그 책을 ‘읽는 자’는 한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로후(老后)는 ‘책 읽는 자’를 읽는 또 다른 귀중하고 보귀한 시간이 아닐가?
강물 우에는 바람 한점 없었다. 성자의 림종과 같이 수평선 너머로 고요히 석조에 타는 붉은 물결을 바라보며 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어 저 로부부와 같은 고령의 나이에도 늙은 교목과 상록수와 같이 장성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한없이 쓸쓸해지던 등뒤가 든든해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분명 늙음도 하나의 인생공부요, 그 공부의 최종 목적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 몸을 떠나기 위한 준비가 아니겠는가?
아~ 어느 성현이 말씀하셨던가?
“우리는 몸이였던 적이 없으며, 지금도 몸이 아니며, 앞으로도 몸으로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
나는 슬그머니 전류가 흐르는 내 손으로 감동이 흥건한 안해의 손을 꼭 잡고 강변의 동둑(东壩)을 향해 발걸음을 맞춰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