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늙어가는데 익어가는데 우리는 어찌하여
ㅡ 리춘렬의 수필 <강변에서 만난 어느 로부부>와 인사를 틀며
(할빈) 한영남
리춘렬의 수필 <강변에서 만난 어느 로부부>를 읽으며 저도 모르게 노래 <바램>을 흥얼거리게 되였다.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작은 한 마디
지친 나를 안아주면서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그 말을 해준다면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그렇다. 늙어간다는 것은 익어가는 일인 것을. 외로워할 필요도 쓸쓸해할 필요도 없이 순리대로 살아가면 그만인 것을.
수필은 어느 날 안해와 강둑길을 산책하다가 만난 로부부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인생 황혼을 맞은 로부부는 그러나 여든 일곱, 여든 아홉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 도와주며 아름다운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가고 있었다.
리춘렬은 그러나 그런 그림에만 안주하지 않고 거기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 행복이고 진정 아름다운 인생인지 반추해보이고 있다.
저자는 다양한 각도에서 고전을 인용하고 명언을 인용하고 한자를 풀이하면서 조용한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미사려구가 전혀 없이 텅 빈 구호나 대성질호를 떠나 친구에게 들려주듯이 인생철리를 풀어보이고 있는 것이다.
리춘렬에게 있어 아름다운 삶이란 ‘분명 늙음도 하나의 인생공부요, 그 공부의 최종 목적은 즐거운 마음으로 이 몸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할 줄 아는 삶인 것이다.
요즘 인터넷에 떠도는 말들 중에 버리라는 말과 내려놓으라는 말이 각별히 많아졌다. 그러나 그게 말이 쉽지 실천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이다. 다 익히 아는데도 실천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것을 리춘렬은 어느 날의 강변에서 만난 어느 로부부의 삶의 모습에서 발견해내고 명상에 잠겨 수필 한편을 펴내고 있다.
선행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우리는 감동하게 되고 감탄하게 되고 감복하게 된다. 물론 선행을 하는 사람들은 다는 모른다. 자신의 그 선행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러나 그게 무슨 대수랴. 세상사람들이 다 그렇게 선행을 하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들 삶이 훨씬 아름다워지게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리춘렬이 만난 ‘로부부’는 그런 선행을 했고 리춘렬은 그런 선행을 세상에 알리는 또다른 ‘선행’을 한 셈이다.
그런 선행은 이 수필을 읽는 독자들한테도 전해져서 더 많은 선행들이 줄을 이어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밝혀주리라는 생각에 마음 한귀가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