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조의금장부를 적으면서
직장동료의 집에 상사가 생겨 조의금장부를 적을 사람을 급히 찾지 못하였기에 난생처음으로 조의금 받는 일을 맡게 되였다.
부조장부를 만드는 일은 일반적으로 두사람이 완성하는 것이 관례다. 한 사람은 장부를 적고 한 사람은 돈을 받는다. 나의 파트너는 경험이 풍부하고 년세도 있으신 한선생이였다.
조문객들이 빈소에 찾아들기 시작했다. 나는 조의금장부를 적었고 한선생은 부조를 받았다. 조문객이 어찌나 많은지 이름을 적고 또 적었다.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부탁을 받고 조의금을 전달할 때면 우리는 더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장부를 다 적고나면 그분은 또 잘 전달했다는 증거로 사진 한장을 찍어서 대방에게 보낸다. 거기에 한족분들의 이름은 동음어가 많아서 진땀을 뺐다. 곁에 있던 한선생도 받은 돈을 쉴새없이 세는 것이 보였다.
반나절이 지나 조문객의 행렬이 좀 뜸해졌다. 우리도 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틈이 생겼다. 한선생은 담배 한대를 붙여물더니 나에게 물었다.
“자네 발견했나? 남자와 녀자가 부조할 때 부동한 특점이 있다는 걸.”
장부를 적기에 급급했던 나는 그 구별점이 무엇인지 관찰할 사이가 없었다. 내가 의아해하자 한선생이 이어 말했다.
“남자는 조의금을 직접 손에 들고 오는 경우가 많지. 대부분 정해진 금액을 내려놓지. 간혹 호주머니에서 꺼내는 경우도 있는데 꺼내는 액수가 곧 조의금인거야. 실제 호주머니에 조의금밖에 없다는 뜻이지. 녀자들은 다르다네. 례외없이 모두 돈가방에서 꺼내는데 두툼한 돈뭉치에서 일부를 꺼내 부조하는거야. 하여튼 네편네한테서 용돈을 받아쓰는 우리 남자들이란 불쌍한 족속들이야. 허허.”
장례식장이라는 숙연한 장소가 아니였더라면 나는 하마트면 큰소리내여 웃을 번 했다. 실은 그번 장부를 적으면서 처음으로 우리 고장의 장례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상제들이 슬픔에 잠겨 령전 앞 량켠에 자리한 한편 장례식장에서 가장 바쁜 이들은 다름아닌 향도계의 호상도감들이다. 제사상을 차리랴, 조문객들을 맞이하랴, 집사절차를 확인하랴,상주들과 토론하여 묘쇼를 정하랴 그야말로 그들이 없으면 장례식장은 제대로 운행될 것 같지 않았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마을이 생겨나면 제일 먼저 생기는 것이 학교와 향도계라고 했다. 교육을 중시한만큼 장례문화도 중시를 받았다는 말이다. 전쟁과 가난, 병마와 기아로 허덕이던 년대에 친척도 없는 가난한 마을에 이사왔다가 상사가 생겼을 때 가족으로서 느끼는 슬픔과 막막함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친인을 잃은 슬픔을 달래주고 서로 도와 장례를 치러주는 문화가 곧바로 우리의 향도계문화가 아닌가 생각한다. 도시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많은 조선족마을이 사라지고 설사 마을은 사라지지 않았더라도 조선족이 몇몇 남지 않은 것이 오늘날 우리 조선족사회의 실정이다. 장백현은 지금까지 줄곧 전통적인 향도계문화를 고스란히 보존해온 몇몇 안되는 작은 고장이다. 하기에 이런 향도계문화를 고찰연구하고저 몇해전에 연변 등 지구에서 취재를 왔고 장례치르는 전반 과정을 촬영하여 자료로 남겨두었다.
장백현의 향도계문화를 살펴보면 우선 포용력이 크다는 점이다. 무릇 장백현성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족으로서 성별, 직업, 년령, 학력, 종교신앙, 국적을 가리지 않고 자원적으로 입계비를 납부하면 향도계 회원자격을 가질 수 있으며 호주거나 본 가정성원 속에서 한 사람이 입계하면 온 식솔이 모두 회원자격을 가진다. 그리고 수금표준은 다르지만 설사 회원이 아니더라도 장례식장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며 그 집사절차는 회원과 동등하다.
장백현의 향도계문화의 또 하나의 특점이라면 향도계 회원의 권리만큼 의무 또한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향도계 회원은 총감, 총무, 관리인원으로 당선될 수 있으며 취지에 따라 상가를 위해 장례식장에서 1년간 무상봉사할 의무가 있다. 또한 향도계 리사회에서 총감 립후보자로 추천한 회원이 2년간 총감직에 응하지 않으면 그 정절에 따라 회원자격을 영원히 취소하기도 한다. 또 총무, 관리인원 립후보자로 추천한 회원이 2년간 총무, 관리인원직에 응하지 않으면 10년간 회원자격을 박탈당하는 엄격한 규칙조례가 있다. 아마도 앞서 말한 두가지 특점이 장백의 향도계문화가 오늘날까지 지속되게 한 주되는 원인이 아닐가 생각한다.
조선족문화가 날로 야위여가고 소실되고 있는 시점에서 장백현은 그나마 우리의 전통문화를 지금까지 잘 계승하고 있어 다행스러운 곳이라 하겠다. 장례문화는 물론 돌잔치, 결혼식, 환갑잔치 등 각종 대사는 모두 전통식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조선족의 음식문화 또한 유명하여 몇년전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취재를 다녀갔었다. 많은 조선족 젊은이들이 타지에서 삶의 보금자리를 정하고 또 대량으로 외국으로 로무수출을 나가고 있어 전에 비해 조선족인구가 격감하였지만 고향에 남아있는 분들은 오늘도 우리의 전통문화를 고수하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우리의 전통문화를 피부로 감수하며 자라온 나는 이런 우수한 전통문화와 미풍량속이 대대손손 이 땅에서 존속했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