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수필. 봄날의 슬픈 넉두리
发布时间:26-05-19 08:41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봄날의 슬픈 넉두리

--나의 영원한 형 림금산 작가님을 그리며

                       (심양) 전정환

가슴 아픈 사연 하나 마음속에 애틋하게 둥지를 틀고 있다. 응어리처럼 생채기처럼 맺혀있다. 떠올리면 가슴이 뻑뻑하고 숨이 꺼억 막힌다. 어쩌면 내가 영원히 실패처럼 바라보아야만 하는 파편 하나, 상처 한조각... 그게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고 그냥 그 자리에서 사무치고 있다. 작아지지 않고 가벼워지지 않고 마냥 짓이긴다.

툭 터쳐놓으면 조금 풀릴가, 조금 완화될가, 마음이 조금 편해질가?

이태 전의 일이다. 심양 서탑의 희래원이라고 하는 조선족식당, 연변대 선후배들이 모인 술자리이였다. 모두들 주흥이 도도했던 시점이다. 이따금 노래 한 소절이 고음으로 터지기도 했고 혀 꼬부러진 횡설수설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형이 나를 조용히 룸 밖으로 불러냈다.

“정환아, 나 오늘 낮부터 손가락이 제대로 말 듣지 않아”

형은 정말 진지하게 물었다. 술기운으로 발가우리하게 상기된 형의 얼굴에서 간절한 표정이 읽히였다. 그건 분명 손가락이 제대로 말 듣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표정이다. 형은 절대 가상의 표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해가 서쪽에서 뜨기 전에는.

조금 싱거운 얘기지만 대학동창모임이라는 이 작은 골목에서 나는 전박사(의학박사)로 통한다. 오래전 보건프로젝트 하나를 다루며 여러해동안 의학리론에 몰두한 적이 있었던 게 밑천이다. 제법 뭘 좀 아는 척 할 수 있다. 그런 연고로 몸 어딘가 불편했던 형은 나한테서 무슨 신통한 말이 나올 것이라고 신뢰하고 있었던 것 같다.

“또 싸가지 없이 술 잔뜩 퍼마신 거 아냐?”

내가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물었다. 그랬더니 형은 야, 말도 마라, 요새 날마다 한잔한다, 고 말하며 히물히물 웃었다. 그가 말하는 한잔은 수자적 개념의 1잔이란 말이 아니다. 그냥 술을 마셨다는 뜻이다. 형으로 한정해서 말하면 그 의미가 더 확장된다. 왕창 억수로 마셨다는 얘기가 된다. 친구들과 좋은 술 마시며 요사하게 몸을 사리고 깜찍하게 수를 쓰겠느냐, 라는 게 평생 그를 지배했던 음주관, 마신다하면 그냥 끝내주게 마신다.

나는 먼저 형의 손을 더듬었다. 의사들 전문용어로 좀 유식하게 말하자면 이건 촉진(触诊)이다. 전박사의 촉진으로 가닿은 형의 손은 차거웠다. 손목 아래 부위 특히 손가락은 아예 얼음장 같았다. 단순히 컨디션난조로 치부하기엔 그 차거움이 너무도 구체적으로 너무도 섬뜩하게 차거웠다.

“손가락에 마비 같은 게 느껴지지 않아?”

전박사가 묻는 말에 형이 또 히물히물 웃으며 답했다.

“말도 말아, 낮에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지 못했다니까...”

그러면서 얼굴도 조금 뻣뻣해나고 한쪽 다리갱이가 약간 저릿저릿해난다고 했다. 형의 말에 속에서 뭔가 철커덕 내려앉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구? 례사롭지 않은 직감에 신경이 곤두섰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이건 이미 특정 질환을 지칭하는 무서운 신호다. 너무도 뻔하게 어떤 방향을 가르키고 있었다. 그랬었다. 나는 그걸 체계적으로 알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 이거 지금 여기 이렇게 앉아서 술이나 처먹고 있을 대목이 아니거든!”

나는 거의 고함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야, 이 자식아, 그렇게 겁만 주지 말고 알아듣게 말 한번 해봐!”

“형, 내 말 한글자도 빠치지 말고 똑똑히 들어봐!”

당시 전박사가 인상(두려움과 공포감을 조장할 수 있는 표정 몽땅 다 동원하며)을 팍 쓰면서 정색해서 한 이야기는 요지 아래와 같다.

래일 당장 형수님하고 같이 병원에 가서 머리(뇌혈관) 검사 한번 해봐야 한다. 이 검사에는 반드시 에마라이나 씨티같은 의료기기 검사가 꼭 포함되여야 한다. 병원은 반드시 신경내과가 설치되여있는 큰 병원, 좋기는 의과대학 산하 종합병원이나 륙군병원 등 신망이 높은 병원을 선택해야 한다 등등. 키워드는 하나, 만사 제쳐놓고 당장 병원 진단 받아봐,였다.

이튿날 형은 정말 형수님의 손에 끌려 의과대학병원에 갔고 에마라이, 씨티검사 등 첨단설비들이 동원된 뇌정밀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뇌경색진단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 퇴원하고 나서 형은 약 달포간 그냥 두문불출하고 아예 단주를 했다. 누가 불러도 그냥 먹통이다. 형 인생에서 처음으로 달포간이나 술 한방울 입에 대지 않는 ‘기적’을 일궈냈다. 물론 예후는 상당히 좋았다. 아무런 탈도 후유증도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이 원상복귀되였다. 후유, 이것으로 상황종료! 아슬아슬했던 한차례 수난사는 그렇게 소리 없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후날 어느 한 술자리에서 “내가 형 구원자이고 은인이야!”하고 말했더니 형이 “맞아!”하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였다. 형의 성정상 이런 수긍은 흔치 않은 일이다. 형도 자칫 만회할 수 없는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의 진면목을 꿰뚫고 있었던 것 같다. 희떱게 공치사 같은 걸 입에 올리는 건 아니지만 분명한 것은 형이 무시무시하게 마주했던 재난을 구제하는데 내가 중요하게 관여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이 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일 상위 10위권에 드는 “업적”으로 치부되고 있다.

여기까지는 행운이 함께 했고 모든 것이 차곡차곡 부드럽게 흘러갔다. 이제 형이 스스로를 아기처럼 정성스럽게 보듬고 아끼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게 허술하고 만만한 일로 남아있었던 게 아니였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벽이 그처럼 견고하고 높은 줄은 몰랐다. 그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형의 ‘우정음주관’이다. 친구들과 좋은 술 마시며 무슨 잔꾀를 부리겠는가, 하는 론리, 소년 같은 순백의 마음 한가운데 완고하게 자리 잡은 그 어수룩한 관념 하나. 그건 형이 지닌 우정의 법칙, 친구의 도리가 부조리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체현되는 현장인 동시에 형이 의연한 자세로 하늘을 마주하는 지점이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 형의 술자리 패턴은 조금도 조절이 되지 않은 채 다시 온전하게 제자리도 돌아왔다. 아주 오랜 세월 이어져온 관습이다. 먼저 두냥, 석냥 족히 들어가는 맥주컵에다 소주를 넘치게 담아서 2컵 복용한다. 그러면 속에서 불이 붙어버리고 그 열불을 진압하기 위한 소방대책으로 맥주를 들이붓는다. 그냥 서너병은 바로 주르륵 흘러들어간다. 이건 늘 반복되는 기본 동작이다. 곁에서 그 모양을 지켜보며 "이건 아닌데..." 하며 손에 땀을 쥔 적이 한두번 아니다. 바로 얼마 전 위험천만한 상황을 겨우 모면한 립장이다. 처방약으로도 말 듣지 않는 혈압, 혈당 등 위험요인들을 안고 산다. 거기다가 담배까지 먹는다. 침묵의 살인자, 무시로 터질 수도 있는 시한폭탄 여러 마리를 품고 사는 셈이다. 형 생전에 나는 그걸 분명하게 바삭하게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였던가...

“형, 많이 마시면 안 되잖아, 지난번에 한번 혼났잖아, 의사가 과음하면 위험해진다고 했잖아?” 라고 간곡하게 만류하고 싶었다. 아서라, 하고 소리를 지르며 거칠게 저지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찰나 순간의 일이다.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바로 삼켜진다. 술 한잔 들어가면 무한 행복속에 침몰하는 형의 모습이 당신님의 모든 의지를 가차없이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그건 마법과도 같은 것이였다. 아무리 단단히 잡도리를 하고 나서더라도 곧 추풍락엽처럼 사라진다. 정말 그랬었다. 술기운이 작동하면 형의 얼굴에는 즐거움과 희열, 충만감과 만족감이 넘치게 차오른다. 그런 형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 순진무구하고 상큼한 기운이 형의 인간적인 면모와 어우러져서 다른 하나의 거창한 힘을 만들어낸다. 훅하고 다가온다. 그걸 멈추게 하는 일이 어떻게 쉬운 일일 수만 있겠는가! 단속하려다가 오히려 합류한다. 형이 만들어낸 희열 속에 포함되여 버린다. 하나가 된다.

그러다가 정신이 랭정하게 돌아오면 이대로 방치하면 안된다,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휘말려들기도 한다. 하지만 맙소서, 무엇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번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소주 두컵을 한컵으로 축소하는 일.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다. 우선 두컵을 한컵으로 제한하는 데 형이 극력 반발하는 때가 있었고 설령 한컵만 마시게 하는데 성공한다고 해도 별 효용가치가 없었다. 절제된 소주 한컵 분량의 주정을 맥주가 채워주기 때문이다. 사실 그게 더 무섭다. 맥주는 절대 한두병으로 소소하게 마무리 되지 않는다. 형은 그런 사람이다. 손가락이 오그라 들거나 발가락이 가들어 들기 전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다. 그냥 즐겁게 마신다.

물극필반이라고 했던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 쌓이면 터진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어느 시점부터 이미 무엇인가 공포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이승의 끝자락을 향해 완만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금년 1월의 어느 날 과음한 형을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는 택시 안에서였다. 승용차 작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는 형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쌕쌕했다. 짓눌리고 헐떡이며 숨이 새여나왔다. 그건 제대로 순환되는 호흡이 아니었다. 다른 장기의 힘까지 빌려다가 겨우 숨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불길한 예감은 바로 그 순간에 번개처럼 덮쳐왔다. 몇해 전에 역시 연변대 동창 최문식형이 세상을 떠나기 한달 전 대련의 장흥도(长兴岛)에서 술 한잔 마시고 내뿜었던 그 숨소리와 너무 흡사했던 것이다. 어떤 예감은, 어떤 느낌은 필연일 수밖에 없는 것일가. 그 거친 호흡이 예고편이였을가. 최형은 한달만에, 그리고 림형은 석달만에 이승을 하직했다. 두 분 다 잔뜩 마시고 총망히 떠나갔다. 형은 밤이 깊어가도록 3차까지 하고 홀연히 이 풍진세상을 떠나갔다...

지금도 그 우울한 시간들을 떠올리며 흘러간 장면 하나하나를 곰곰이 복기하면 탄식과 자괴, 비애와 자책이 뼈 속까지 스며들고 파고든다. 어쩌면 내가 이 세상에서 고혈압환자인 형이 과음을 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리치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였을 수도 있다는 추론은 나를 한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돌이킬 수 없는, 고쳐쓸 수 없는 회한이 더욱 가슴 뭉클하게 펼쳐진다. ‘더 강하게 말리었다면’ ‘말을 들을 때까지 단속했더라면’하는 애석함은 이제 허망한 가설이고 행차 뒤 나발이다. 어긋난 의도와 가닿지 못한 성심은 마음속 페허로 남아 가슴을 구슬프게 물어뜯는다.

슬프고 허탈하고 공허하고 안타깝다. 마음에 텅 빈 구멍이 생긴다. 아직도 어쩌다 한번씩 형이 그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가며 혼자 감당했을 막막한 체념과 절망감을 떠올리면 가슴의 가장자리 하나가 떨어져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순간 형의 비극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 일부가 어김없이 내 몫으로 부각되여 다가온다.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학하고 싶어진다. 부채감에 절규하고 오열하고 싶어진다...

이 대목에 이르면 몸부림 같은 사유의 한 끝에서 이런 생각이 환청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어떤 가정도 통하지 않는 허허로운 들녘에다 이 모든 슬픈 마음을 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가? 헐거워서 허공으로 떠오를가? 무거워서 심연으로 가라앉을가? 떠오르지도 가라앉지도 못한 채 어중간한 지점에서 부유하고 너울거리기만 할가?

이제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는 소중한 인연! 나의 진심 어린 고백이 그대 령혼으로 가닿아 자그마한 위로 한 가닥이 내려앉기를 소망한다. 간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