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몸치의 반란
发布时间:26-04-23 03:00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몸치의 반란

(연길)김순희

나는 얼마 전부터 우연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갑자기 웬 춤? 그래서 춤 좀 추냐고?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답은 “노”이다.

춤이 뭐 별 거야? 손을 뻗어 흔들어도 춤이고, 삐걱거리지만 허리와 엉덩이를 돌려도 춤이지. 혼자 있을 때 캄캄한 곳에서 음악에 맞추어 추다보면 꽤 근사해보인다. 크크크,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날은 내몽골에서 온 손님들을 모신 자리였다. 업무상의 일로 종종 통화는 했지만 얼굴은 처음 보는 분들이라 회식자리에 어색함이 감돌았다. 편집실 주임이 아무리 분위기를 띄우려고 애를 써도 경직된 분위기는 여전했다. 침묵이 흐를 때면 누군가의 헛기침소리, 심지어 숨소리마저 거칠게 들렸다.

자, 자, 다 같이 한잔 마십시다. 건배사는 청바지로, 내가 ‘청바지’하면 다 같이 ‘청춘은 바로 지금!’ 하고 웨쳐주시면 됩니다!

편집장의 목소리가 텅 빈 강당에서 외치는 것처럼 공허하게 울렸다. 모두가 일제히 술잔을 들었다. “청춘은 바로 지금!” 소리는 높았지만 각자의 소리가 따로 노는 어색한 합창이였다.

누군가 무거운 공기를 깨보려고 아재개그를 했다. 구석에서 누군가 작게 키득거릴뿐 다시 썰렁해졌다.

 “예, 뭐… 그렇죠…”
   “아… 하하, 네네…”
   서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마지못해 건네는 말이라 끝맺음이 흐리마리했다.

이 모든 것들이 목에 걸려서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저 애꿎은 술만 권하는 대로 꼬박꼬박 마셨다. 어색한 기분을 무마하려면 술이라도 마셔야 했다. 참는 것에 길들여져서 일어나고 싶은 나를 꾸욱꾸욱 눌러앉혔다. 그리고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손님한테 순대 접시를 들이밀었다.

“이거 연변의 특색음식인데 드셔보세요. 정말 맛있어요.”

옆에 앉아있던 허선생이 “김선생은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배려하네요”하고 말했다.

늘 칭찬인줄 알고 들었던 말인데 그날따라 그 말이 고깝게 들렸다. 아부하는 걸로 보였나?

“지나치게라니요? 왜 그렇게 함부로 말해요?”

발끈하고 싶은 것을 겨우 삼켰다. 그런데 속이 부글부글 괴여올랐다.

산책하러 나갔다가 갑자기 이 회식자리에 불리워온 것도 억울하고, 온 저녁 다른 사람 비위를 맞추며 억지 웃음을 짓고 쓰디쓴 술을 마시고 있는데 이런 소리나 듣다니.

(나는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나도 싫다구. 나도 누가 날 배려해줬으면 좋겠다구.)

하지만 그 말들을 입밖에 낼 수는 없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패였다. 날이 선 말들에 다치지 않기 위해, 어색한 상황에서 튀지 않기 위해 나는 내 스스로를 낮추고 참는데 습관되였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지루한 회식자리는 저녁 9시가 넘어서 파했다. 겨우 회식자리까지 참았는데 또 2차를 간단다. 같은 업종에서 일하면서 여직껏 교류를 해왔고 앞으로도 도움을 받아야 하는 분들이기에 도리상으로나 례의상으로나 먼저 자리를 뜰 수 없는 상황이였다.

주는 대로 받아마시다보니 몸이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정신이 해롱해롱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들어간 곳은 나이트클럽이였다.

문이 열리는 순간, 파란색, 보라색, 빨간색 요란한 조명과 술냄새, 땀냄새가 확 몰려와 잠간 멈칫하게 만들었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리듬에 몸을 맡긴 채 각자의 방식으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술을 홀짝거리며 남들이 춤을 추는 것을 구경만 하고 아무도 일어나서 춤을 추지 않았다.

취하면 안되지, 실수하면 안되지 하고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는데 맞은편 자리에 앉은 내몽골방송국의 손님이 나한테 허리 굽혀 깍뜻이 인사를 하면서 춤을 추자고 청했다. 나는 얼결에, 아니 옆에 앉은 동료한테 떠밀리다싶이 앞으로 나왔다. 무대에는 아무도 없고 오직 나와 그 손님 뿐이였다. 사교무는 가끔 춰봤지만 숱한 관중들 앞에서 둘이 춤을 춰본 적이 없는 나는 이 손님과 어떻게 춤을 춰야 할지 막연했다.

하지만 나온 이상, 쭈볏거릴 수는 없었다. 뒤로 빼며 망설이다가는 더욱 초라해보일 것 같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배짱으로 모든 것을 내던졌다.

천만다행으로 곡이 바뀌면서 조명이 어두워져서 관중석에 앉아있는 사람들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오로지 음악만이 귀가에 남아 나를 미지의 황홀한 그 곳으로 이끌고 갔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팔을 길게 뻗어 내가 그릴 수 있는 가장 큰 원을 그렸다. 탱고를 추듯이 한바퀴 돌아보기도 하고 어느 깊은 바다의 해초처럼 두팔을 흐느적거리기도 했다. 가슴을 쫘악 펴고 고개를 젖히고 발을 구르며 내 안에 가득 찼던 무언가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회식 자리에서 삼켜야 했던 말들, 참아야 했던 감정들, 스스로에게도 숨겼던 불편함들이 춤사위와 함께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미숙하기 그지 없는 춤이였지만 나는 내 마음 속 떨림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것이 걷잡을 수 없이 치밀어 올랐다. 감동이였다. 오래만에 느끼는 감동이였다.

어색하고 경직됐던 몸이 음악에 맞춰 조금씩 유연해지고, 몸의 움직임에 자신감이 붙는 순간 그건 분명 내가 알던 나와는 다른 모습이였다. 춤이 열어준 또 다른 자아였다. 나는 당당하고 빛나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저 녀자 뭘 잘못 먹었나?” 하고 눈이 휘둥그래서 바라보던 시선들이 점차 경탄으로 바뀌였고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내 감정에 충실했고 그것으로 만족이였다.

춤이 끝나고 제 자리로 돌아왔을 때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주변의 시선이 어땠을지? 내 모습이 어땠을지?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순간에 지나지 않았고 온몸에 퍼지는 가벼운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술기운도 한몫 했겠지만, 그것만은 아니였다. 무거운 것을 내려놓은 것처럼, 답답한 것을 토해낸 것처럼 온몸이 거뿐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음악 속에서, 어두운 무대 우에서, 나는 오늘 하루 동안 잃어버렸던 내 몸의 주인으로 돌아온 기분이였다. 춤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를 나에게로 돌려보내는 주문이였던 것이다.

나는 오래동안 춤을 잊고 살았다. 나는 왜 춤을 추지 못했을가? 어릴 때는 어른들의 넘치는 칭찬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껏 춤을 췄다. 하지만 나이 들면서 부끄러움을 알기 시작하고, 주변의 달라지는 시선과 반응, 잘한다 못한다는 평가에 신경 쓰면서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몸이 점점 경직되고 움직임이 어색해지면서 몸치로 변해갔다. 그럴 수록 자신을 가두게 되고 작아져갔으며 그것이 발전해서 남한테 싫은 소리를 못하고 모든 걸 혼자 참고 끙끙거리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모임이 끝난 후, 나는 호젓한 밤거리를 혼자 걸어갔다.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가슴 어느 깊숙한 곳에서 노여움이, 억울함이 치밀어올랐다. 누구도 날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하려고 내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모든 걸 인내하면서 살았는데 니가 감히 나를 함부로 대해?

“김선생은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배려하네요.”

허선생이 나에게 던진 한마디가 오래도록 내 귀가를 맴돌았다. 나는 누가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걸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일어나서 살펴주고 챙겨준다. 누가 힘든 일을 겪으면 꼭 밥을 사주거나 커피를 사주면서 위로해주군 한다. 같이 아파해주면 그 사람이 조금 덜 아프지 않을가 하는 마음에서이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도 여러 사람 기분을 두루 살피며 맞장구를 쳐주고 적당히 추어올린다. 어느 순간부터 그게 슬프고 고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누군가를 위로하고, 공감해주고, 다독이면서 점점 자기 자신은 놓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는 귀를 기울였지만, 내 마음은 괜찮은지, 상처받지 않았는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나는 늘 착한 사람이고 싶었고, 남한테 도움이 되는 사람이고 싶었으며 누구한테나 따뜻함을 주고 싶었다.

나의 본능을 억누르면서 내 마음 속에는 작고 단단한 분노가 쌓여갔다. 그 분노는 다른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고 그냥, 나를 향한 실망이였다. ‘나는 왜 그냥 참기만 할가?’, ‘나는 왜 피하기만 할가?’

문득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는지 몰랐다. 이런저런 원인을 다 떠나서 처음 겪어보는 감정의 파도였다. 나는 여직껏 나를 감추며 살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참으며 살았다. 나도 기분이 엉망일 때가 있고,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거나, 막연히 불안하고 우울할 때도 있고 공허할 때도 있지만 그냥 괜찮다고 하면서 내 감정을 잘 살피지 못했다. 나는 이제부터라도 내 감정과 기분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이튿날, 나는 허선생을 찾아가 어제 선생이 나한테 한 말이 불했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허선생이 곧 불쾌하게 들렸다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아무리 참아도 주위는 바뀌지 않지만, 내가 용기를 내여 말할 때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주위가 달라진다는 것을.

엉성하고 어색한 자신과 마주하며 무한한 창피함을 이겨내며 보란듯이 춤을 추고 나니 놀라운 자신감이 생겼다. 창피함을 극복한다는 것은 처음에는 어렵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갖는 출발점이 되는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혼자 집에 있을 때면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프로처럼 잘 출 필요가 없다. 동작을 어떻게 하느냐보다 그 순간의 내 감정에 충실하는 게 중요하다. 리듬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동안 내 몸 속에서 파도가 일렁인다.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없을 때 슬프고 상처받는다. 상처를, 진정한 나를 숨기지 않고 드러낼 때 비로소 자유롭고 강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드러날가봐, 약점이 보일가봐 무의식적으로 춤을 두려워하지만 끝끝내 춤을 통해 몸의 길, 나의 길을 찾게 되나보다.

언젠가는 무대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싶다. 오직 나와 음악만이 아는 몸치의 반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