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춤사위, 자유를 향한 몸부림
发布时间:26-04-23 02:58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단평

춤사위, 자유를 향한 몸부림

ㅡ 김순희 작 수필 <몸치의 반란>에 얹어

한영남

춤은 사전식으로 풀이하면 가락에 맞추거나 절로 흥겨워서 팔다리나 몸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동작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락에 맞추거나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동작이 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가락에 맞추지 않고 일정한 규칙에 따르지 아니한다면 그게 과연 춤일가 하는 의문이 따르게 된다.

그 가락을 깨고 그 일정한 규칙에 따르지 아니하는 동작도 춤이라고 작자는 설파하는 것이다. 이름하여 <몸치의 반란>인 것이다.

그렇다면 몸치들의 동작을 왜 춤으로 봐줘야 하는가? 그 것은 그 동작이 절로 흥겨워서 팔다리나 몸을 움직이는 것이므로 <나>만의 가락이요 <나>만의 규칙인 까닭이다.

수필로 돌아와서 김순희의 수필 <몸치의 반란>은 바로 그런 규칙깨기이면서 자신만의 흥을 고집하는 사랑스러움이 되겠다.

수필은 어찌어찌하다가 본의 아니게 술 여흥을 빌어 몸을 흔들어대면서 시작된다. 춤을 모른다는 전제하에서 <떠밀려서> 추게 된 그 춤은 타인이야 어떻게 보든 <나> 스스로는 스트레스를 풀기에도 안성맞춤이였을 것이고 굳어진 관절들을 놀려서 적당한 <운동>조차 되였을 것이다.

하다면 그런 춤이 과연 춤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그래서 글의 말미에서 저으기 단호하게 세상을 향해 나지막한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드러날가봐, 약점이 보일가봐 무의식적으로 춤을 두려워하지만 끝끝내 춤을 통해 몸의 길, 나의 길을 찾게 되나보다”라고.

타인의 시선보다는 오롯이 “나와 음악만이 아는” 그런 물아일체의 경지에서 저자는 비로소 <몸치의 반란>을 꾀하는 것이고 그 것을 바라보는 우리 모두는 박수를 아끼지 말아야 하는 대목에 이르는 것이다.

특히 이 수필의 표면에 드러난 낱말들 기저에는 그런 <몸치들의 반란>이야말로 생명의 신선한 활동이고 생명존재가치의 구현이며 생명을 생명이게 만드는 힘이라는 은근한 메시지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의미는 움직임에 있다. 그 움직임이 멈출 때 우리는 생명의 정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은 운동에 있다”는 꽤 멋진 말도 생거난 것이리라.

그런 의미의 연장선에서 볼 때 김순희의 수필 <몸치의 반란>은 바로 이와 같은 생명활동의 흔적이고 과정이며 활기찬 생명파워라 할 수 있겠다.

몸놀림이 조금 어색한들 어떠리. 박자가 맞지 않은들 또 어떠리. 그 것은 오롯이 <나>만의 의미이고 <나>만의 행위로서 오히려 그 것은 남한테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향한 위로의 손수건이 아닐 것인가.

그 것이 바로 수필 <몸치의 반란>의 매력이요 수필가의 멋진 행보가 아닐가 생각한다. 김순희의 수필춤사위가 더욱 멋진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내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