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디술
(철령) 강재희
음력 오월 초아흐레날 오디 술을 담근다. 손 없는 날이라고 안해가 받은 날짜다.
“내 일년 량식이다. 단디 해라 이…”
아내에게 지청구를 해 가며 내 딴 에는 중대사다.
살짝 스치기만 해도 물감처럼 묻어 나서 한번 물들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그 피같이 진하디 진한 자주빛의 오디 즙은 매양 나를 전률케 한다. 처음 담아 초벌 삼개월에 오디를 건져내고 숙성 삼개월, 반년이 지나서야 술맛을 볼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해 마시면 거의 새 술이 익을 때까지 이어진다.
인생도 술처럼 기다리며 익어가는 과정이 아닐 가 싶다.
술군들의 필독서로 알려진 한국의 수주 변영로 선생의 수필집 《명정 사십년》이 문득 떠오른다. 동시대 문인들이 ‘옥 같은 수주’이라 일컬었던 선생은 당시 술로 암담했던 그 세태에 맞섯던 것이였다.
선생의 그때 그 심경에 공감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돌이켜 보면 내 인생도 술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였다. 학교문을 나선 열일곱살의 햇내기 사회인을 맞아주는 세상은 거칠고 험난하기만 하였다. 세상에서 소외되여 잔뜩 움츠린 못난 나를 차별없이 동무해준 것이 술이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50여년을 나는 술과 절친이 되여버렸다. 나는 ‘명정50년’ 이였다. 지치고 힘들 때 세상이 나를 저버릴 때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술밖에 없었다. 지지리 못생기고 세상살이에 어줍었던 나를 요만큼 이라도 살아 남게 해준 데는 술의 공이 크다. 호리건곤 취생몽사로 취해 있을 때만이 본연의 내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잠시나마 이 세상에 융합이 될 수 있었다.
장창 과음하는 나를 말리다 지쳐버린 안해는 궁여지책으로 술의 도수를 낮추는 방법을 물색했고 드디어 오디가 당첨 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오디술 담는 것만은 적극적으로 주선 협조하였다. 오디가 몸에 좋다는 핑계로.
오디가 술을 물들이는 것처럼 나는 술에 물들어 있었다.
오디술처럼 한번 물들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인연들이 있다.
한번만 스쳐가도 오디처럼 색깔과 향이 남는 들여다보면 전률을 느끼게 반가운 그런 인연들! 특히 문학을 매개로 맺은 인연들은 내 평생에 영원한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런 인연들 덕분으로 어설프게 나마 글을 써냈고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왔다.
오늘 오디술 담그는 와중에 그 인연들이 못견디게 그립다.
오디술이 익을 때쯤 그 인연들과의 만남을 간절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