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울림의 아우라
发布时间:26-03-24 08:50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어울림의 아우라

(심양) 전정환

나는 아직도 내 고향의 강 리민하를 엄청 그리워한다. 무엇이 그토록 그리움으로 각인이 되고 있는 것일가. 뭐라고 딱 잘라 말하라고 하면 곤난한 질문이 된다. 그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 다 무지무지하게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있으니까.

수필 〈이복누나〉의 소재를 정리하면서 큰이모님을 ‘취재’했었다. 한마을에 사시던 이모님은 우리 가족사의 산증인이시다. 그때 이모님으로부터 우연하게 흘러나온 한마디 말씀이 있었다. 리민하에 깃든 어머님의 구슬픈 추억 한토막이다. 그건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다. 이모님의 말씀으로 엄마의 가냘픈 그림자가 리민하기슭에 아련하게 드리우며 나를 먼 추억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어머님의 슬픈 사연은 거기까지였다. 나의 사유가 리민하로 빨려들어가며 방금 전까지 마음으로 내려앉던 엄마의 애잔한 그림자는 점점 느슨해지고 희미해졌다. 나의 동년, 나의 젊은 시절이 그곳에서 밀도있게 압축되고 발효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리민하는 엄마의 강이 되였다가 바로 나의 옛시절 옛꿈이 서려있는 고향의 강으로 둔갑하여 나를 찾아왔다. 거창한 물결로 다가와 나를 삼켜버렸다. 그리고 어쩌고저쩌고 할 새도 없이 그리워하는 마음이 울컥하며 치밀어 올랐고 오래동안 내안에서 잠자고 있던 그리움이 기지개를 켜며 심연으로 밀려들었다. 그건 분명 엄마의 애달픈 사연을 압도하는 다른 한 종류의 거룩하고 벅찬 그리움이였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이 넘어가기에는 그 그리움의 무게가 너무 우람하고 버거웠다. 그래서였던가. 이 나이에 무슨 오도방정을 떨고 있느냐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조금 머뭇거리기도 했지만 나는 정말 만사 제쳐놓고 달려갔다. 이것저것 재고 계산하며 뜸들이지 않고 500리 원정길을 이튿날 바로 답파했다. 그 날이 있은 후 리민하는 이 몇해동안 내가 간간이 한번씩 찾는 ‘성지’가 되여있었다.

그 해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다시 찾은 리민하를 바라보며 나의 신상으로 다가왔던 감촉은 아직도 어제 일이련 듯 생생하다. 그때 내가 강렬하게 느꼈던 점은 내가 그동안 어떻게 그 그리움을 지금껏 견디며 살아왔는가 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순수 자연에 관한 것이였다. 유소년시기의 추억 같은 개인적 감상이나 정서적 요소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순수 자연의 강이 나를 순도 높은 그리움으로 인도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고향의 강은 다른 힘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강의 힘으로 강의 풍류와 운치로 강의 존재를 빛내인다는 것을.

이런 느낌은 후날 다시 찾아가도 마찬가지였다. 리민하는 정말 무한한 그리움으로 도배되여 있었다. 모든 풍경 하나하나가 다 그토록 유정하게 다가왔고 그토록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물과 풀, 나무... 그리움은 곳곳처처에 스며있었다. 그리고 그 그리움은 한 모양새가 아니였다. 닮은 듯 다른 표정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령롱하고 감미로운 색채로, 눈부신 해살 같은 광망으로 마음을 물들인다. 그러면 나는 속절없이 그 그리움 속으로 침몰한다. 때로는 강변에 우두커니 앉아 몇시간 동안 온 마음을 다해 강과 강의 그리움에 관해 생각하기도 한다.

무엇이 그토록 그리움을 만들어냈을가. 그 그리움의 원천과 근원을 짚어내라고 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가? 늘 그랬다. 답은 그 순간에 절대 주어지지 않는다. 나중에 천천히 깨닫게 된다. 어쩌면 답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뒤척이지 않았다. 두뇌를 회전하지 않았는데, 신경회로를 가동하지 않았는데 답안지가 바로 불쑥 솟구치며 튀여나왔다.

어울림의 아우라!

푸른 물결, 울창한 수목, 강변의 물망초 그리고 풀벌레가 사르륵하는 소리(때로는 새의 소리까지 끼여들어서)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아우라! 그것은 마치도 교향곡의 여러 악절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악장과도 같은 것이였다. 인간은 그런 것 같다. 대자연의 경외로운 조화에 면하면 랭철한 머리는 작동하지 않은 상태에서 달아오르는 가슴만으로 어떤 상황으로 깊이 침몰해버리는 수가 있다. 강호 산수의 그 넓고 깊은 신비앞에서, 그 모호하고 야릇한 불가사의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빨려들어가는 수가 있다.

그랬었다. 강변 물가에 앉아 있으면 분명 여러 매력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져서 다른 하나의 새롭고 거창한 존재가 되여, 막강한 력량이 되여, 간절한 그리움이 되여 다가온다. 벽돌과 철근과 시멘트가 하나로 통합되여 웅장화려한 건물이 일떠서듯이. 그 어울림에 의해 내 육신은 이상하게 노곤하게 풀리며 잦아들고 내 마음은 기묘하게 강도 높은 편안함에 포근해진다. 그건 정말 경이롭고 황홀한 경험이다.

사실 하나하나 따로 살펴봐도 어느 것 하나 마음을 사로잡지 않는 것이 없다. 강변 어느 구석 어느 모퉁이 어느 후미진 곳에서도 다 무엇인가가 반짝이고 깜빡이고 있다. 강변을 사그리 차지하고 있는 갈대숲, 강언덕을 푸른 초록으로 장식하고 있는 이름 모를 들풀과 그 속에서 하느작이는 야생화, 넝쿨로 가득 뒤덮인 수목들, 수풀속에서 바스락거리고 있는 작은 생명들...저녁나절이 되면 어디선가 슬프게 우는 물새의 울음소리에 마음이 살짝 처량해지기도 하지만 푸른 하늘을 배회하는 제비의 힘찬 날개짓에 곧 다시 심기일전해진다.

하지만 나는 이 아름다운 것들을 따로따로 받아들였던 것이 아니다. 나의 주관의지와 관계없이, 나의 의식적인 감응과 련대감이 일어나지 않은 조건에서 그것들이 스스로 하나로 어우러져서 한 덩어리가 되여 나에게로 달려왔고 나의 신상으로 솔솔 배여들었다. 그건 하나의 체계이고 시스템이고 종합세트이였다. 이런 어울림과 침투는 소리없이 고요하게 일어난다. 차분하게 심후하게 파고 든다.

아마도 그래서였던 것 같다. 리민하강변에 들어서면 나도 바로 리민하와 하나로 어우러진다. 그래서 또 하나의 새로운 융합이 만들어 지는 것 같았다. 어떤 변곡점처럼 리민하의 강변에 한발을 뚝 찍으면 맑고 청초한 느낌과 부드럽고 평화로운 기운이 훅 다가온다. 그 느낌, 그 기운은 온화하고 살갑게 나를 휘감는다. 그럴 때면 나의 온 육신에, 나의 온 심령에 리민하가 젖어들며 내가 리민하 안에 있는지 리민하가 내 안에 있는지 착각이 든다.

강과 어우러진 나, 나와 어우러진 강, 그 어울림의 에너지는 때로 무섭게 팽창한다. 강렬한 원동력으로 나를 붕 떠올릴 때도 있다. 하지만 표표하게 나부끼지 않았고 가볍고 저렴하게 달뜨지 않았다. 초조하거나 불안에 떨지 않은 채로 스스로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명료하게 투시할 수 있었다. 강변에 불어오는 바람에 사각거리는 풀 한포기의 흔들림,나무 이파리 하나하나의 움직임 그리고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흐름과 정체,허상과 망상 하나하나가 명확한 륜곽과 모양으로 현시된다. 신령한 자연의 경이, 그 어렴풋하고 막연한 리면의 하나하나까지 다 일목에 료연하다. 그리고 그 기세에 실려 마냥 흔들리고 싶어진다. 자유롭게 퍼덕이고 싶어진다.

그렇다. 리민하가 나를 깨우쳐준 건 자연의 섭리만이 아니다. 리민하는 어울림의 미학으로, 무언의 에너지로, 침묵하는 동력으로 나를 바람결 잘 통하는 어딘가로 운반해갔다. 그래서 나는 리민하를 찾아갈 때마다 강변에서 기꺼이 바장이였고 돌다리에 앉아 기분좋게 멍을 때렸다. 그곳에서 시름없이 바라보았고 또 속절없이 서성거렸다. 누구도 모르게 희망했고 아무도 모르게 원망했다. 누구도 모르게 자화자찬했고 하염없이 자책하기도 하였다. 누구도 몰랐기에 아무도 보지 않았기에 부채로 남거나 회한으로 남아서 트라우마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냥 충만했다. 그냥 배가 불렀다.

내 고향의 강 리민하는 이렇듯 자연의 무궁한 원천에 대해 절실하게 탄복하고 찬양하고 숭배하는 마음이 들끓게 한다. 나에게 처음으로 자연도 한 요소가 아니라 원소와 원소, 낱낱의 편린들이 하나로 집합하고 어우러질 때 가장 큰 동요와 흔들림을 만들어낸다는 리치를 깨우쳐 주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주저없이 이렇게 단언한다. 리민하와 하나가 되여, 그 영원하고 광활하고 깊은 어울림 속에 스며들고 녹아들어서야 비로소 내가 일생을 걸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뭔가를 깊이 통찰한 것 같다고! 고향의 강, 엄마의 강 리민하는 지금도 늘 내가 영속적으로 지켜나아가야 할 삶의 원리, 인생의 진리 일부를 또박또박 가르쳐주고 있다. 그 소리는 선명하게 그리고 온유하고 아늑하고 따스하면서도 명령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이 세상의 어떤 가치는 분명 자연의 조화로 발생하고 규명되는 것 같다. 리민하의 풍광처럼! 

지금도 나는 여전히 드문하면 한번씩 리민하를 찾아 간다. 리민하 강변의 수목 아래나 잡초더미나 돌다리옆에 가 조용히 쭈크리고 앉는다. 귀를 열고 주변의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생각하며 그 한도 끝도 없는 어울림 속으로 그리움 속으로 침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