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또 한번 덤벼보는 거다
发布时间:26-01-21 08:51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또 한번 덤벼보는 거다

(연길) 최기자

오늘은 화요일, 정기적 학습일이다. 칠팔십대 로인 일여덟명이 트럼프놀이의 하나인 사타일(四打一)유희를 하는데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이 유희일을 학습일이라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단순히 유희만 하는 것이 아니니깐. 몇몇 작가, 편집들로 구성된 이 조직에서는 유희를 하면서 문학을 론하고 작품을 평하고 문단정보를 교류하면서 문학소양을 높이고 우의를 돈독히 하여왔는데 족히 30년은 된 것 같다. 그리고 이 모임에 다녀간 사람들도 30여명이 되는 줄로 안다. 어쩔수 없이 무정세월 따라 한분 두분 하늘나라로 가시였는데 우리는 가끔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서 “지금 쯤 하늘나라에서 네댓패는 사타일을 놀고 있을 거”라고들 한다. 지금은 신구인원 합쳐야 고작 7. 8명이 이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자고로 이 모임은 백프로 남성들로 구성되였었는데 이 녀자가 덤벼들면서 누구 말처럼 일점홍조직이 된 것이다. 여든살 로친네가 렴치없이 자기를 ‘녀자’라 ‘일점홍’이라 하니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어느 날 격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성이 전씨인 시인님이 우리들중 제일 덤비는 사람이 두번째가 당신이고 첫번째는 이 녀자라 했다. 그 것도 그럴 것이 어느 한번은 어찌 덤비면 웃사람이 분명 대왕패를 내놓았는데 이 녀자는 보지도 않고 기세등등히 소왕패를 냅다 쳐대면서 눌렀다고 으시댔으니 말이다.

지금 하는 얘기지만 무슨 일이나 천천히가 없이 급히 서두르기에 사람들은 나를 성질이 너무 급하다고 한다. 길에 나서면 발 먼저 몸이 앞서고 걸어가도 될 것을 달려가다가 엎어지기도 하니깐. 아무튼 내가 덤비는 녀자라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덤빈다고 해서 다 나쁜 것도 아닌 것 같다.

덤비다의 사전적 해석은 “1. 함부로 대들다. 2. 침착하지 못하고 서두르다” 인데 침착하지 못하고 덤벙대지는 말아야 하지만 함부로 대들어 보는 것이 마냥 나쁘지만은 아닌 줄로 안다.

‘대들다’는 이기고 짐을 가르거나 실력을 겨루기 위하여 맞서나선다는 뜻도 있다.

지난 세월을 더듬어 보니 난 정말 많이도 덤벼댄 것 같다.

20대에 첫 아이를 업고 문학을 한답시고 겁없이 노래가사며 삼로인대본이며 시를 비롯한 문학창작에 덤벼들었고 30대에 두번째 아이를 키우며 대학공부에 덤벼들었다. 그리고 40대에 잡지사에 전근하여 편집에 덤벼들고 낚시에 덤벼들었다. 웃기는 얘기지만 그렇게 덤비는 녀자인데 낚시대를 잡으면 물고기가 먼저 덤벼치며 미끼를 물어 어느 한번은 낚시시합에서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50대에 컴퓨터에 덤벼들고 60대에 사타일에 덤벼들고 70대에 수영에 덤벼들었다.

이렇게 겁없이 처절히 덤비였기에 그렇게 원했던 대학공부도 마쳤고 편심직함도 가졌다. 그렇게 체면없이 끈질기게 덤비였기에 80대 문설주에 기댄 오늘도 컴퓨터화면을 보며 두손으로 키보드를 마음대로 쳐댈 수 있고 개구리헤염도 멋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고금중외의 모든 문명발달의 력사를 보더라도 덤비지 않은 발명과 창조는 없었고 덤비지 않은 학습과 진보도 없는 줄로 안다.  1차 산업혁명시대로부터 오늘의 4차산업혁명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길고도 험난한 려정에서 현실과 맞서려는 용기와 못할 일 그 무엇이냐는 오기로 과학에, 미지수에 덤빈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환상적인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 세계는 모든 령역에서의AI 사용과 보급을 수요하고 있는 바 AI 를 모르면 어제의 글자문맹이나 컴퓨터 문맹과 다름 없게 된다고 한다. 한 나라의 국격도 그 나라의 AI 수준과 발전, 그리고 보급정도에 따라 평가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자는 AI 는 젊은이들의 몫이라 하는데 인구로령화 시대인 요즘 늙은이들이라고 제외되지는 않는 것 같다.  AI 를 어느 정도 알아야 소통이 순조로울 수 있고 생활이 다채로울 수 있어 만년을 더 확실하게, 의의있게, 멋지게 살아갈 수 있다. 그리고 더 편안히, 더 품위 있게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을 수 있다.

시대의 조류를 따르는 것이 사회나 가족의 짐이 되지 않는 길이며 력사와 자신에게 책임지는 행위일진대 어찌 늙었다고 두손 놓고 지켜보거나 눈감고 아닌보살할 건가.

초겨울 바람에 흩날리는 여기 북방의 가로수 락엽처럼 물기 없이 거무데데 초라한 모습의 늙은이로 되지 않도록, 발 아래 나뒹구는 천개 혹은 만개 락엽중 하나의 온전히, 곱게 내려앉은, 살그머니 주어 소중히 책갈피에 끼우고 싶은 한장의 락엽으로 되기 위해 다시 한번 덤벼보는 거다.  AI에 도전해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