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평
우리는 모두 ‘덤비기 위해’ 세상에 태여났으리
ㅡ 최기자의 수필 <또 한번 덤벼보는 거다>에 덧붙여
(할빈) 한영남
로익장이라는 낱말이 있음에도 잘 인정하지 않는 한사람이다. 글 앞에서는 공정해야지 나이가 어리다고 원로라고 봐주어서는 발전이 없다고 믿는 사람인 까닭이다. 그런데 최기자 선생의 수필 <또 한번 덤벼보는 거다>를 읽고나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말에 동의를 해야 할 것 같다. 왜?
수필은 조선족문단의 몇몇 원로들이 모여서 트럼프놀이를 하는 자잘한 일상으로 시작된다.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이제 황혼의 여유를 즐기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트럼프놀이를 하면서 문학과 인생을 두고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그야말로 작은 모임인데 멋지게 표현한다면 문학살롱인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놀이는 주제를 이끌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고 그 놀이를 할 때 자신이 얼마나 헤덤비는 사람인지에 앵글을 맞추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세상은 바로 그런 덤비는 사람들에 의해 때론 위대한 발명도 생겨나고 사회의 발전도 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견인해낸다.
일례로 세런티피티라는 말이 그 것을 잘 증명해준다. 우연한 실수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하는 경우를 뜻하는 말인데 항생제의 하나인 페니실린은 바로 배양실험을 하는 도중 실수로 잡균인 푸른 곰팡이를 혼입시켰고 그렇게 해서 감염증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낸 항생물질을 발견하게 된 경우이다.
바로 이와 같은 깊은 의미를 저자는 시치미를 떼고 사소한 일상에서 ‘덤비는’ 것의 ‘유익한’ 점을 발견해내고는 그 것으로부터 세상사와 인간사를 관통시키는 거대 의미까지 견인해낸 것이다. 수필의 묘미를 극대화시킨 대목이라 해야겠다.
우리 주변의 가장 사소한 일상도 수필이 될 수 있으며 그 것도 아주 멋진 수필이 될 수 있음을 또 한번 증명해보인 최기자선생의 녹쓸지 않은 필력에 감탄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