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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족은 력사가 유구한 민족이다. 주로 운남성 노강(怒江)주의 란평(兰坪)현, 려강(丽江)시의 녕랑(宁蒗)현, 옥룡(玉龙)현 그리고 적경(迪庆)주의 유서(维西)현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 그 외 일부가 운현(云县), 봉경(凤庆), 중전(中甸) 그리고 사천성의 목리(木里), 염원(盐源),구룡(九龙) 등 현에 살고 있다. 〈중국통계년감—2021〉의 통계에 따르면 프리미족의 총 인구는 4만 5,012명이다.
프리미족 마을은 산비탈에 지어져 있고 혈연 관계에 따라 모여 살며 마을과 마을간 거리가 가깝다. 가옥은 보통 통나무로 2층짜리 집을 지어 아래층에서는 가축을 기르거나 잡동사니를 보관해두고 사람은 웃층에 거주한다.
프리미족의 지칭인 ‘프리미’는 프리미어의 음역으로 원 뜻은 ‘백인’(白人)이다. 프리미족은 예로부터 흰색을 숭상했고 흰색이 길함을 상징한다고 여겨 본 민족을 ‘백인’이라고 불렀다.
프리미족에 대한 기타 민족의 호칭은 각각이다. 장족과 나시족은 프리미족을 ‘파’(巴) 또는 ‘보’(博)라고 부르고 이족은 ‘워주’(窝珠), 리수족은 ‘류류파’(流流帕)라고 불렀다. 력사문헌에 따르면 프리미족을 ‘파쥐’(巴苴) 또는 ‘서판’(西番)이라고도 호칭했다. 프리미족의 타칭을 보면 ‘서판’이란 호칭은 진(晋)나라 때 이미 나타났다. 당나라 때에는 서판이 투판(吐蕃)의 별칭으로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송나라 문헌에는 ‘서판’과 ‘투판’ 이 각각 기재돼 있다. 1960년 10월 국무원은 본 민족의 념원에 따라 이들을 ‘프리미족’으로 공식화했다.
한문 사서의 기재와 본 민족의 전설, 민족학 자료를 보면 프리미족은 중국 고대 유목민족인 저챵(氐羌)족군에 속한다. 이는 민족학과 언어학 측면으로부터도 립증됐다. 고대 챵(羌)인들은 흰색을 숭상하고 화장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프리미족도 그러했다. 그리고 동한 시기 ‘백랑’(白狼, 흰 늑대)등 부락도 한 왕조에 ‘백랑가’(白狼歌)를 바친 적이 있는데 이는 력사가 가장 오랜 챵족 언어기록이다. 최근년간 학자들은 현지 조사를 통해 ‘백랑가’에 나타난 34개 단어가 프리미어와 완전히 같거나 약간 다름을 발견했다. 언어학 차원으로부터도 프리미족이 백랑 고국의 후예임을 알 수 있다. 프리미족의 선민은 원래 감숙성 남부와 청해성 동부에 거주했는데 후에 청장고원의 동부지역으로 이주하고 점차 금사강과 아롱강(雅砻江)을 따라 남하했다. 기원 7세기 이전에 이들은 이미 사천의 월서(越西)와 면녕(冕宁),한원(汉源)、구룡 및 석면(石棉) 등 지에 살았으며 당시 서창(西昌)지역의 주요한 민족의 하나였다. 프리미족의 전설에 따르면 이들은 처음에 백설로 뒤덮인 곤륜산맥일대에 거주했지만 후에 산과 강을 넘어 남하해 점차 따뜻하고 습윤한 운남과 사천 일대에 정착했다. 지금도 프리미족의 력사에 정통한 프리미 로인들은 명절 때면 ‘궁가령가’(贡嘎岭歌)를 불러 조상에 대한 숭배와 선민들의 옛 삶터에 대한 그리움을 표한다. 또 장례식 때 읊조리는 ‘개로경’(开路经)에서도 프리미인들은 사천 파당(巴塘), 리당(理塘), 궁가산(贡嘎山)을 선민들의 거주지와 령혼의 귀속처로 간주하고 있다. 당송시기 사서를 보면 프리미족의 선민으로 알려진 ‘서판’에 대한 기재가 아주 많다. 이는 프리미족이 이 때 한족 및 기타 민족과 밀접한 왕래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중국 력사 조대에서 원나라가 프리미족 형성의 중요한 시기로 알려져 있다. 원나라 군은 많은 ‘서판’인을 군에 징용해 운남 일대에 출정시켰다. 원나라가 멸망한후 운남 서북지역에 남은 ‘서판’인이 바로 지금의 프리미르족의 주요한 구성원이 되였다. 13세기 이후, 프리미족은 운남의 녕랑, 려강, 유서, 란평 일대에 정착하며 떠돌이 유목생활을 접고 농사일에 종사하기 시작했으며 가축을 기르고 수렵하며 수공업도 발전시켰다. 명나라 때에는 프리미족이 현지의 토사(土司)직을 맡기도 했으나 후에는 나시족 토사의 지배를 받았다.
1949년, 중국인민해방군이 려강, 란평, 녕랑 등 현을 잇달아 해방하면서 프리미족은 사회주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프리미족의 생활수준도 제고되고 프리미족 지역에도 새 국면이 형성되였다. 정부는 1954년에 프리미족 지역에 민족향을 세웠고 1987년 11월에는 란평바이족프리미족 자치현의 설립을 정식 허가했다. 프리미족중에서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도 배출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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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족은 노래와 춤에 능한 민족이다. 프리미족의 무용은 종류가 많고 내용도 풍부하다. 오락적이고 사교적인 무용이 있는가 하면 모방 위주의 무용, 례의 무용도 있고 영웅과 자연, 조상, 신령 숭배에서 비롯된 제사 무용과 장례 무용도 있다. 프리미족의 무용은 손에 손잡고 원을 지어 추는 것이 특징이다. 그중 경작과 수렵, 방직 등 생산로동 정경을 담은 무용이 다수인데 조롱박 생황(葫芦笙), 피리의 반주에 맞추어 춘다. 춤의 스텝은 힘있고 명쾌하다. 부뚜막 타기(跳锅庄)는 프리미족의 전통적인 무용으로 보통 저녁 무렵 마당이나 제방 근처에서 춘다. 춤을 출 때에는 항상 가운데 불을 지피는데 그 불 무더미의 모양새가 집안의 부뚜막과 비슷하다 하여 부뚜막 타기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그 외 집단무용도 있는데 남녀로소가 한데 모여 전혀 지칠 줄 모르는 듯 저녁내내 춘다. 또 프리미족의 종교 무용은 원시종교 무용으로 신령에 대한 숭배를 표하고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춘다. 종교 무용은 특정 종교 행사 때만 출 수 있고 무용 자체에 대한 전문성 요구가 높아 훈련을 거친 무당만이 출수 있다. 프리미족의 종교무용은 전부 남자들이 추며 법기나, 칼, 방울 등을 소품으로 한다. 동작이 힘있고 패기 있어 남성미가 철철 넘치는 이런 남성 무용은 프리미족의 강인하고 용감한 기질을 다분히 보여준다.
프리미족의 무용은 음악과 불가분의 련계가 있다. 시와 가사, 무용이 항상 동반돼 프리미족의 시가는 거의 다 노래로 불리우고 민가 또한 그냥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항상 춤을 동반한다.
/중국국제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