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귤빛 겨울
发布时间:25-12-23 09:11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귤빛 겨울

(청도)리화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으레 하얀 눈을 떠올리지만,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주황빛 귤이 함께 피여오른다. 하얀 겨울이 찾아올 때마다, 동그란 귤들은 마치 어둠 속에 켜진 등불처럼 내 마음에 따스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삼십년 전의 어느 겨울이었다.

제주에 계시는 큰고모는 중국으로 오는 큰고모부에게 무거운 짐을 하나 둘씩 정성스럽게 꾸려서 보내주었다. 크고 작은 가방에는 비단 치마저고리를 비롯한 옷가지와 한국 음식이 가득 들어있었고, 제철을 맞은 신선한 귤 한 박스, 나아가 귤이 주렁주렁 매달린 귤나무 가지까지 꺾어 보냈다. 게다가 그 시절, 제주에서 김포로, 김포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심양을 거쳐 연변까지 오가는 려정이 얼마나 힘들었을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때 큰고모가 보내준 그 귤나무 가지는 아직도 눈 앞에 생생하다. 남자의 팔만큼 긴 가지에는 작은 가지들이 몇갈래로 뻗어있었고, 싱싱한 귤들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제주는 이미 귤빛으로 물들어 있었지만, 귤나무를 본 적 없는 가족들에게 그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던 큰고모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그 마음을 큰고모부는 고스란히 짊어지고 먼 길을 오셨던 것이다.

그해 겨울, 처음으로 맛본 제주 귤은 몸과 마음을 모두 달콤하게 적셨다. 그 귤 한알 속에는 제주의 해살과 바람의 상큼함, 큰고모의 정성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겨울, 다시 제주를 찾았다. 다른 계절과는 달리, 11월의 제주는 귤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야트막한 돌담 안으로, 주황빛 보석처럼 매달린 귤들이 해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그 풍경은 마치 큰고모의 따스한 마음이 수많은 등불이 되여 켜져 있는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만난 큰고모는 너무나 야위어 있었다. 나는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큰고모의 작아진 뺨을 두손으로 살며시 만졌다.

"고모... 왜 이렇게 야위셨나요? 이제 좀 쉬셔야겠어요."

"괜찮아. 그런데 너는 왜 벌써 머리가 이렇게 하얗게 섞였니?"

오직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큰고모였다. 가난했던 시절, 온 가족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희생하며 살아오셨다. 그런 큰고모가 이제는 "지나간 것은 다 잊어라", "나는 아무 것도 없어도 괜찮아", "나는 행복해"라고 말씀하신다.

귤밭에 서있는 큰고모의 모습은 탱글탱글 익어가는 귤들 사이에서도 유달리 작아보였지만, 그 안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낸 위엄과 따스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제는 제주에서 달리고 있는 나에게 큰고모가 전화주신다.

“차에 밀감(귤) 싣고 다녀라. 와서 가져가거라.”

큰고모는 귤 한주머니를 차에 실어주신다.

"차에서 귤 먹으면 갈증도 풀리고 비타민도 보충된다. 잊지 말고 다 먹어야 한다. 운전도 천천히 하고."

후시경으로 멀어져가는 큰고모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귤 하나를 까서 입안에 넣는다. 해빛을 가득 머금은 주황색 쪼각들이 입안에서 톡톡 터진다. 상큼함이 입안에서 온몸으로 퍼진다. 귤빛이 나의 온몸을 감싼다.

아, 이 겨울도 귤빛으로 물들어 더욱 따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