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팥떡
(무순)신석운
겨울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집 안의 공기는 유난히 낮고 느리게 가라앉는다. 해는 이른 오후에 이미 기울고, 창밖 골목에는 찬 기운이 먼저 자리를 잡는다. 이런 날이면 사람의 마음은 자연스레 따뜻한 곳을 찾는다. 난로의 불기운, 부엌에서 피어오르는 김, 그리고 오래전 기억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음식냄새 같은 것들이다. 음식은 배를 채우기 전에 먼저 시간을 데운다. 팥떡은 나에게 그런 음식이다.
저녁 무렵, 안해는 시장에 다녀오더니 찹쌀가루와 맵쌀가루를 담은 비닐봉지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여보, 쌀가루 사왔어요.”
“왜요?”
“오늘은 팥떡이 먹고 싶네요.”
사실 나 역시 얼마 전부터 팥떡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러나 출근준비로 분주한 안해를 보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마음 속에만 담아두고 있었다. 어릴 적에는 떡을 유난히 멀리하던 나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시장에 들르면 찰떡이며 송편, 절편을 사다 먹곤 했다. 그러나 팥떡만큼은 오십년 동안 입에 대지 못했다. 먹지 못했다기보다, 그 떡에 매달린 시간이 너무 무거워 선뜻 다가서지 못한 세월이였다.
“여보, 내가 반죽을 할게.”
은근히 설레는 마음에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호호, 정말이에요?”
“두말이면 잔소리지.”
아내는 팥을 씻어 가스난로 우에 물을 담은 솥을 올렸다. 팥물이 바르르 끓어오르자 첫 물은 버리고 찬물에 헹군 뒤 다시 불을 지폈다. 중간중간 물을 보충하며 팥을 삶자 솥 안에서는 팥이 숨을 고르듯 포실포실 풀어졌다. 부엌에는 서서히 달큰한 김이 차올랐다.
나는 양재기에 쌀가루를 쏟고 처음에는 뜨거운 물을 조금 부어 반죽을 잡았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가 사라질 즈음 찬물을 더해가며 반죽을 다듬었다. 밀고, 접고, 다시 밀며 반죽은 점점 탄력을 얻었다. 손끝에 달라붙는 감촉이 오래된 기억처럼 익숙했다.
밥상을 가운데 두고 안해는 떡을 빚고, 나는 가스레인지 우에 프라이팬을 올려 떡을 굽기 시작했다. 먹고 살기 위해 고향에서 십년 동안 떡장사를 했던 안해의 손놀림은 여전히 매끄러웠다. 동그랗게 빚어진 떡 하나하나에 크기와 두께가 고르게 담겼다. 손자, 손녀도 부엌으로 모여들어 익어가는 떡을 기웃거렸다. 프라이팬 우에서 떡이 노릇노릇 익어가며 “치익” 소리를 냈고, 집안에는 고소한 냄새가 천천히 퍼졌다. 그 순간, 우리는 말이 많지 않아도 충분히 같은 시간을 살고 있었다.
떡을 뒤집는 손길 사이로 문득 오십년 전 풍경이 겹쳐졌다. 초겨울이면 우리 동네 가가호호는 팥떡을 구워 독에 가득 채워넣었다. 우리 집도 례외가 아니였다. 어머니는 일부러 일요일을 떡 굽는 날로 정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둘레상을 놓고 묵묵히 떡을 빚었고, 형수님은 허리를 약간 굽힌 채 솥 앞을 지켰다. 나는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꽃이 사그라지면 벼짚을 쑤셔넣었다. 불길이 다시 살아날 때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형수님은 한솥, 한솥 구워낸 떡을 광주리에 담아 뜰에 내놓아 식힌 뒤, 독에 차곡차곡 쌓아넣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구운 팥떡은 겨울 내내 우리 집을 지켜주는 군음식이 되였다.
결혼후 도시생활을 하면서 나는 그 동그란 팥떡을 다시 먹어보지 못했다. 삶이 바빠서였을가, 아니면 그 떡 속에 담긴 어머니의 시간이 너무 선명해서였을가.
그러다 오늘 저녁, 김치 국물에 팥떡을 찍어 입에 넣는 순간, 나는 어머니를 만났다. 쪼글쪼글한 얼굴에 맑은 미소를 담고 불 앞에 서있던 어머니의 모습이였다. 당신은 늘 먼저 우리 네 남매 손에 떡을 쥐여주고는 “나는 괜찮다” 하며 끝내 자신은 드시지 않던 사람이다. 그 말 한마디 속에는 당신의 몫을 늘 가족에게로 밀어주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어머니의 팥떡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였다. 그것은 계절을 견디는 지혜였고, 가난을 버티는 방식이였으며, 가족을 한자리에 묶어세우는 질서였다. 불 앞에서 하루 종일 서있던 그 손길 속에는 말보다 깊은 가르침이 들어있었다. 팥이 설익지 않게, 떡이 타지 않게,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의 겨울이 비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였다.
이제 그 솜씨를 이어갈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그 손끝에서 태여나던 팥떡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 팥떡이 사라진다는 것은 한끼의 음식이 없어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고향이 희미해지고, 불 앞에 둘러앉던 기억이 자취를 감추는 일이다. 언젠가는 ‘팥떡’이라는 이름조차 낯설게 들리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무엇으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가. 어머니가 평생 빚어온 것은 떡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오늘 팥떡을 씹으며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 맛을 잊지 않겠다고, 이 솜씨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겠다고. 비록 완전하지 않더라도 불 앞에 서서 떡을 굽는 이 시간이 이어지는 한, 어머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팥떡이 남아있는 한, 나의 고향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는 지금도 저 하늘나라에서 부엌 앞, 불 앞에 서 계신다. 말없이, 묵묵히, 팥떡 하나를 뒤집으며 우리에게 묻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