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생과 사 그 사이에 걸터앉아 그리움이 되여
ㅡ 정희정의 수필에 빠져보다
(할빈) 한영남
시를 썼고 소설을 썼고 수필을 써온 정희정은 조선족문단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이다. 현재 문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는 애초부터 감성적인가 하면 포스트모더니즘 기법들을 잘 수용해 미문들을 발표해왔지만 그러나 공부에 전념하느라 작품량은 많지 않다. 이번에 내놓은 수필 <그리움은 때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는 생과 사의 경계에서 인간의 흔적은 과연 세상에 얼마나 오래 남아있을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사고를 던져주고 있다.
수필은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문득 할아버지의 림종과 그 여운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그려보이고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은 결코 여러 사람들에게 남지 않게 된다. 다만 가까운 친인척이나 친구들의 기억 속에 가끔 떠올라 그리움을 자아낼 뿐이다.
그러나 정희정은 그 것을 놓치지 않고 수필의 소재로 삼고 있다. 수필이 생활 속에 투영된 인간의 삶을 통한 반성 내지 비판 및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문학의 한 장르라고 할 때 상기 수필은 누구나 어차피 겪게 되는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또 다른 심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데서 누군가에게는 후회를, 누군가에게는 참회를, 누군가에게는 반성을 반추해보게 만들므로써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지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태여나서 죽는 순간까지를 일생이라고 일컫는다. 우리는 바로 그 과정에서 웃고 울고 왁작지껄 떠들고 명상하며 한생을 보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총명으로 수재로 불리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부를 창조해 부자로 불리우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이상하게 탈리면서 허탈하고 허무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순풍에 돛단 격으로 탄탄대로를 달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누구나 자의에 의해 태여난 사람이 없듯이 죽음 역시 예측불허의 실재이고보면 산다는 것이 참 얼마나 순간적인 삶이고 얼마나 안타까운 죽음인지 체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사람은 나이가 들면 철이 들고 철이 들면 삶을 허무하다고 여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없이 사는 삶은 허무할지 몰라도 미래지향적으로 참되고 바른 삶을 사는 사람들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의미로운 일이고 얼마나 벅찬 일인지 잘 알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건전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참다운 삶의 자세가 요청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필은 이와 같은 삶과 죽음을 둘러싼 문제를 간과할 대신 그 속에서 철학적인 사고를 길어올리면서 과연 무엇이 바른 삶인지를 사색하게 만드는 의미로운 사색거리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인간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므로 그에 대한 그리움조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인생에서의 욕심 같은 것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수필은 사소한 일상에서 제법 묵직한 테마를 발견해서 생과 사라는 중대한 문제를 독자들한테 던져주면서 보다 바르게 살 것을 주문하고 있다.
수필에서는 정희정 특유의 섬세하고도 디테일한 묘사와 감성이 묻어나면서 뭉클함과 더불어 사색의 여지를 충분히 남겨주고 있다.
일찍 연변대학 재학시절에 벌써 연변일보 해란강문학상을 수상하리만치 문학적 감수성과 범상치 않은 필력을 과시해온 젊은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이 기다려지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