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길에는 행복이 널려있다
(대련) 박정화
투명한 새벽공기를 깊이 들이키며 뻐스정류장으로 향한다. 곧이어 시내뻐스가 도착하고 마침 빈자리가 차례져 창가에서 느긋하게 창 밖 풍경에 심취할 수 있다.
역에서 내리면 바로 카페 앞이다.
머그잔에 살며시 입술을 대인 그 아침의 첫 입맞춤이 따스하고 산뜻하다.
학교까지는 30분이면 충분하다. 천천히 걸어가며 하늘에 뜬 구름도 보고 길가의 가로수들도 바라본다. 그 30분이 그대로 아침 산책이 된다.
요즘 나무들은 초록의 언어를 배우느라 열심이다. 여리디 여린 연두빛 나무잎사귀들이 아기처럼 순수하다.
여유가 생기면 익숙한 풍경도 때론 낯설게 다가오게 된다. 왜 여태 이런 아름다움을 몰랐을가 하는 자책 속에서도 자연의 산물이 더욱 고맙게 여겨진다.
봄은 우리 가까이 분명 와있다. 올해는 절기를 늦춘다고 하지만 차가운 바람 속에도 봄은 분명 와있었다.
가로수길 끝머리에는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거기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씩씩한 모습이 더없이 활력으로 넘친다. 수염 하얀 할아버지의 태권도에서도 강한 힘을 느낄 수 있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수다가 싫지 않다. 그럴 때니깐! 말똥이 굴러가도 까르르 웃을 때니깐! 참 좋을 때다!!
공원은 이제 꽃들이 제법 다부지게 피여있다. 달콤쌉쏘름한 봄향기가 그대로 페부 속 깊은 곳까지 어루만져준다.
예전에는 꽃이름을 전혀 몰랐는데 요즘 스마트폰으로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정말 많은 꽃이름을 알게 되였다. 못보던 꽃을 보면 대뜸 검색해보는 것이 일상으로 되였다. 그 재미가 또 그렇게 쏠쏠할 수가 없다.
나무 하나를 통째로 렌즈에 담다가 꽃 하나를 클로즈업해서 담아본다. 꽃잎의 주름까지 선명하게 찍혀진다. 맑은 날씨라면 쪼그리고 앉아 그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꽃사진을 찍기도 한다. 그러면 꽃은 고마운듯 고개를 까댁거려준다.
오늘도 꽃에게 수작을 걸어본다.
ㅡ 왜 널 보면 내 마음이 즐거울가?
꽃은 온몸을 배배 탈며 대답해준다.
ㅡ 우린 피여날 떄 모든 걸 남에게 주는 성격이거든요. 후회없이 눈물없이 그렇게 피였다가 그렇게 지는 걸요.
꽃인들 늘 순탄할 리가 없겠지. 사나운 바람에 흔들릴 때도 있었을 거고 떨어질 각오도 단단히 해야 했을 것이고 어느 개구쟁이한테 툭 꺾이울 수도 있으니깐.
그러나 꽃은 지는 순간까지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마치 운명처럼 숙명처럼.
꽃이 진다는 것, 그 것은 다시 피여나기 위한 준비이리라.
땅에 떨어진 꽃잎은 흙과 한몸이 되여 명년 봄을 기약할 것이다.
꽃은 한번도 내게 눈물을 보인 적이 없다. 꽃은 피여날 때는 타오르듯 뜨거운 정열을 불태우다가도 떠날 때는 요란 한번 떨지 않고 수줍게 져버린다. 그게 꽃의 미덕일 것이다.
이제 나이를 먹어서인지 사물을 보면 그 사물의 문법을 읽게 된다. 요즘은 봄을 맞아 꽃이 한창이라 꽃의 문법을 열심히 읽고 있다. 자연의 가르침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였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꽃은 몸소 가르치고 있다. 또 행복은 스스로 피는 들꽃이 아니라 마음의 정언에 매일 물을 주는 정성의 결과물임을 가르쳐준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사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일깨워주고 있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 밥이 내게 밥으로 오기까지 고마운 분들한테 감사를 드리듯이.
어제도 오늘도 출근길에서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만긱한다.
맑고 푸른 하늘, 해빛에 유난히 반짝이는 나무잎들, 화사하게 피여서 웃어주는 꽃들… 자연이 내게 스스럼없이 가슴을 열어 보여주는 그 아름다움에도 감사해야겠음을 깨달아본다.
자연의 문법을 읽으며 자연의 호흡법을 익힌다.
행복 그거 실로 별거 아니라는 것도 깨달아간다.
따뜻한 커피 한 잔, 지나가는 사람이 떨군 미소 한 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휘파람소리, 아이들의 캬르르 웃음소리, 누군가의 발밑에서 부서진 자다만 유리족가의 다이아몬드 빛갈… 행복은 그랬다. 그런 것이 행복이라고 꽃들은 알려주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출근길에서 길에 널린 행복을 줏고 있다. 아주 사소한 행복을 줏는 일 자체가 곧 행복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던 것이다.
아침 집문을 나서면서 내딛는 그 첫 발걸음에서 피여나는 행복, 그 행복을 다른 누군가도 주었으면 좋겠다.
해살은 어제처럼 찬란하고 바람은 그저께처럼 솔솔 불어오는데 행복은 언제나 저렇게 길 우에 널려있는 것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