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픔의 저편
(청도) 김영분
아들애가 고중 3학년을 다니던 봄이였다.
하루는 집에 오더니 같이 열심히 대학준비를 하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고 식당알바를 하러 다닌다는 것이였다.
그해 그 친구의 아버지는 새 가정을 이루었고 새 엄마가 데려온 동생과 사이가 버성기면서 아버지에게 혼난 것이 화김에 그만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집은 없고 내가 벌어 혼자 먹고 살수 있다며 두눈을 부릅뜨고 아버지와 맞짱을 떴다는 것이였다. 그의 아버지도 불같은 성격이였던지 이젠 정말 너를 더 이상 상관할 수도 설득할 수도 없으니 후회하지 말거라 하면서 두 부자가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만 내고 물 엎듯 학교를 후딱 때려치웠다는 것이였다.
이제 몇달만 지나면 십여년 고심히 준비한 대학시험을 치르고 새로운 인생길에 들어설 시기에 같이 대학시험을 준비하던 아들의 친구가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은 같은 자녀를 키우는 부모 립장에서 너무 충격이였고 말 못할 아쉬움이 먹구름처럼 무겁고 어둡게 가슴 한켠으로 밀려왔다.
고중 3학년 때, 가정의 가난과 불화로 인해 부득이 대학을 포기해야 했던 나 자신이 생각나면서 그 친구를 당장 만나 설득하고 경제적으로도 조금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불붙은 장작처럼 욱욱 일어났다. 알차게 대학준비를 해야 하는 금쪽같은 그해 봄이 지나고 나면 그 친구에게 다시는 싱그러운 여름날의 푸름이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아 조바심이 났다.
종당에는 생각에만 그쳐 후일 그 친구는 여린 뼈를 궂히면서 식당과 퀵 배달 알바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히 아들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해 여름, 아들은 적당히 노력하여 내가 여기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인 대학에 입학했다. 앞으로 아들의 매년 여름은 내내 푸르고 무성하기를 바라면서 인생의 진로를 선택하는 뜨거웠던 계절에 잠간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한편으로 그 친구의 여름이 짠하고 안타까워 드문드문 마음에 돌을 얹은 것처럼 무거워났다.
자신의 고중 3학년 때가 생각나면서 다시 마음이 쓰려나기도 했다. 공부에 저으기 매달렸던 나였는데 부모님의 병환과 그로 인해 서로의 불평 불만이 가득 뒤섞여 가족마다 마음이 팽팽했던 그 여름 나의 대학은 외면당하고 말았다. 세상을 보는 눈이 바늘구멍만큼 좁아 유독 대학만을 선망했던 나였기에 크나큰 좌절을 당하고 유리에 찔린 것처럼 마음을 다쳤다.
그후 일찍 사회에 진출해 여러모로 부딛치며 사회공부를 온 몸으로 한 덕분에 매집이 든든해지고 생각이 더 튼실해졌지만 그 때의 아쉬움은 결핍으로 남아 오래동안 가셔지지 않았다.
지금은 세상물정을 조금 알게 되여 공부만이 출세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대학시험을 쳤던 여름방학은 나로 하여금 벼랑끝에서 쥐고 있던 동아줄을 놓아버리고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깊이 깊이 떨어지는 기분이 들게 하였다.
세상은 누구에게나 문 하나를 닫으면 다른 문을 열어준다고 했다. 상처와 결핍이 있어서였을가. 그 덕분에 일을 시작해서부터 더 노력하고 더 집중했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노력한 결과 저그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직장과 가정에서 안정을 찾았다. 소위 생존을 넘어 생활을 씩씩하게 펼쳐나갈 수가 있었다. 나만의 기준으로 말하면 성공을 한 셈이다.
살아보니 대학공부도 공부이지만 사회 역시 크나큰 학교였다. 사회공부도 대학에서의 박사공부처럼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나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니 사회에서의 매 한가지 몸짓이 모두 공부였고 한발작 한발작 나아갈 때마다 성취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마음이 든든해지고 여유로워지니 옹졸하게 원망만을 하던 그 해 여름을 훨훨 보내줄 수가 있었다.
대학의 응어리가 봄눈 녹듯 깨끗하게 녹아 내리게 한데는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하는 중년이 되여 동창모임에 나간 적이 있다. 그 동창은 천사처럼 마음이 따뜻한 친구였다. 항상 긍정적이고 배려심이 많으며 직장생활도 열심히 하고 영업도 부지런히 뛰여다니는 친구였다. 늘 마음 한구석이 그늘이 져 있던 나는 그의 환한 마음가짐이 항상 부러웠다.
나는 그 동창이 어려서부터 쭉 환하기만 한 줄 알았다. 헌데 속심말을 하던 중 뜻밖의 일을 듣게 되였다.
그는 고중3학년을 3수를 하였다고 했다. 처음에는 리상적인 대학에 붙지 못해서 자신이 한번 더 노력을 해보겠다고 시작했는데 두번째도 리상적이지 못할 줄이야. 살림이 흔하지 않던 세월이였지만 그의 부모는 아들이 3수하도록 묵묵히 지지를 해줬다고 했다. 그는 태산을 이고 서있는 것처럼 압력이 컸지만 주추돌을 삼키 듯 마음을 꾹 눌러앉히고 다시 공부에 매달렸다고 했다. 3년 동안 그는 크나큰 압력에 시달렸고 했다.
대학시험을 친 여름방학마다 농촌 곳곳에서 가까운 친척들이 발품 팔고 와서 대학축하를 해주러 왔는데 실망해서 돌아가는 뒤모습에 어린 청춘은 숨을 쉴 수 없는 압력을 느꼈다고 했다. 온 가족의 기대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가봐 걱정되는 그의 여린 마음이 뒤섞여 고통의 나락에서 허덕였다고 했다.
그후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한 뒤에도 그 조바심과 걱정은 늘 그를 따라다녔다고 한다. 내가 부러워하던 천사같은 마음의 저켠에 이렇게 큰 산이 그늘져있을 줄이야. 모든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애환을 겪는 모양이였다.
이러한 시련은 또 그로 하여금 끈질기게 노력하고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강심장을 지니게 했다. 참말로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결핍을 이겨낸 우리에게 여름은 언제나 푸르렀고 해살과 비는 해마다 모두가 클 수 있게 골고루 쏟아지고 뿌려졌다.
이제는 사회라는 대학에서 잔뼈를 조금 굳혔을 아들의 친구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공부는 끊이지 않는 다는 것을.
자신이 포기하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나 공부는 가능하다는 것을.
대학을 부득이 포기해야 했었던 사람도, 대학을 여러번 도전했던 사람도 모두 내심에는 불안과 고통이 있었다는 것을.
보이지 않는 미래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우리의 미래는 가능성도 많은 것이라고.
그 한때만 잠시 슬퍼하고 뒤돌아서서 앞만 보고 가라고.
한시의 좌절은 영원하지 않으니 또 일어서는데 힘을 모으고 꾸준히 실천하라고.
결핍은 결코 고통만 주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디딤돌이 되여 높이 솟을 수 있게 받쳐주는 것이라고.
아픔의 저편에서 여름이 푸르게 우거지고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