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역 두부국
미역국은 조리과정은 비슷하지만 음식의 용도와 사용대상이 바뀜으로 음식의 의미도 함께 달라진다. 미역국은 자고로 조선반도 음식문화가운데서 홀시할 수 없는 음식중 하나이다. 과거에서의 미역국은 대체로 생일에 먹는 음식, 산모보신용 음식이였고 ‘군일‘ (잔치나 손님접대) 에 많이 찾는 음식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생활수준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미역국의 역할 역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되였다.
함경북도 태생이 절대 다수인 연변을 실례로 들어보자. 이민초기, 연변으로 정착한 대부분 사람들은 가난고에 시달리면서 생일상에 미역국 같은 것을 올리는 ‘사치‘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였다. 그러다 1992년에 중한수교가 이루어진 후, 한국과의 래왕이 빈번해져서야 점차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전통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가 살고있는 연변지역에 미역국이 등장한 시기는 바로 60~70년대 (당시 연변농촌인구가 90% 이상) 였다. 그때에는 애들의 백일잔치나 결혼식, 마을 년장자들의 생신잔치, 가족들 중 누군가 군대를 가거나 제대하여 돌아와서 벌이는 잔치 그리고 자식들의 출세로 열리는 마을잔치같은 그런 경우에만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다.
기억이 뚜렷하게 남는 어린시절 60년대말경에 시골의 결혼이나 환갑생일에 부모님 따라 참가하면 팥고명을 묻힌 하얀 찰떡에 돼지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먹으면 최고의 향수였다.직경이 거의 0.6메터 되는 큰 쇠가마솥에 뽐프로 자아올린 맑은 물을 부어넣고 뼈다귀 붙은 돼지고기를, 거기에 미역과 두부, 집에서 오랜 세월 숙성시키고 발효시켜 만든 토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춰 장작불에 푹 끓여 큰 대접에 밥 말아 먹으면 천하의 별미였다.
보통 잔치상에 오르는 주식들로는 찰떡이고 부식으로는 각종 야채, 두부지짐 같은 것들과 콩나물무침 혹 고사리 무침이 고작이였다. 영양가로 따지면 현대 영양학자들은 미역국을 삼계탕, 보신탕에 못지 않은 음식으로 꼽을 정도로, 영양실조로 사람마다 배가 출출했던 그 시기에는 그것만큼 별미인 음식이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간에 이르러 농촌인구의 급감과 보다 다양해진 음식종류들의 출현으로 인하여 지난날 우리가 먹었던 미역두부고기국은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결국, 아기를 낳은 뒤 산모가 꼭 챙겨 먹었던 식습관도 점차 중국식 좁쌀죽, 닭알 고기국으로 대체되고 있는 형편에까지 이르게 되였다.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