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절에도 돈 바람은 부는가
发布时间:25-03-18 07:54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절에도 돈 바람은 부는가

(봉성)장문철

불교는 고대 인도에서 시작돼 동한 시기에 중국에 전해지면서 점차 중국 문화와 결합하여 중국 특색을 지닌 불교 문화를 형성했다.

2 년 전에 력사상 아홉 황제가 출가를 하여 중이 되였다는 천여 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운남의 대리 숭성사(崇圣寺)를 다녀왔다. 숭성사는 불교의 성지일 뿐만아니라 력대 황실의 사찰로서 많은 신도들이 찾아와 경배를 하는 유명한 곳이다.

고풍스런 숭성사는 국가 5A급 관광지인 대리 숭성사 3탑문화관광구에 소속되여 있었다. 관광지이므로 입장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가이드는 대웅보전 앞에서 이곳의 부처님은 참배자의 소원을 잘 들어주기로 유명하니 무슨 소원이 있거든 서슴치 말고 빌라고 했다. 하지만 그냥 말로만 하는 것보다 얼마간의 성의를 베풀어야 더 령험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더니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도 거저는 없는 모양이였다.

나는 모든 종교를 존중하지만 그 어느 종교의 신도도 아니다. 내 눈에 보이는 절은 크고 작음의 구분이 있을 뿐 다 비슷해 보였고 보살은 모두 엇비슷한 것이 거기서 거기였다.

근래 춘절을 맞아 료동의 명산인 봉황산의 절에 갔다. 봉황산의 절은 도관과 사묘로 나뉘며 규모로 보나 지명도로 보나 숭성사와는 비교가 안 된다.

고구려 때 봉황산은 오골산(烏骨山), 웅산(熊山)이라 두루 불렀다. 그러다가 당 정관 18 년에 태종 리세민이 친히 출정하여 군신들을 거느리고 산속에 이르렀을 때, 동굴에서 고운 새 한 쌍이 날아 나와 너울너울 춤을 추며 태종을 향해 절을 하니, 태종은 봉황이라 여겨 대단히 기뻐하며 웅산을 봉황산이라 봉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말 그러한지는 고증할 방법이 없으나 그때로부터 1300여 년 흘렀으니 력사가 유구하다 하겠다. 지금은 국가 4A급 관광지여서 해마다 찾는 유람객들이 부지기수다.

내가 무슨 간절한 애원이 있어서 부처님을 찾은 것은 아니다. 그냥 소풍 겸 구경을 간 것이였다.

해마다 정월 초하루는 봉황산을 개방하는 날이여서 입장권 무료였다. 이날은 온 시내가 총 출동한듯 입산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며 산 전체가 명절의 분위기로 들끓는다.

절에서는 신자들이 새해를 맞으며 각자 자기의 꿈과 희망을 품어 신불에게 참배를 했다. 그들은 향을 피워 부처님께 올리는 것을 신들과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실타래처럼 비비꼬며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연기에 자기의 기원과 경건한 마음을 담아 천지신명의 보우와 복을 빌었다. 평소에는 분향하지 않다가, 급하니까 부처님 다리를 끌어안는다는 말이 있다. 병이 낫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약왕묘앞에서,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재원전 앞에서, 승진을 바라는 사람들은 문창제군 앞에서, 대학입시에 합격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문괴각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며 배알을 했다. 

어떤 신자들은 첫번째 향을 피우기 위해 엄동의 추위를 무릅쓰고 자정에 입산하는가 하면 돈 있는 부자들은 거금을 시주하는 대가로 특수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그야말로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너며 제각기 신통력을 발휘하는 격이다.

절마다 공덕상자가 버젓이 놓여 있었고 안에는 액수 부동의 지페가 듬뿍했다. 모두 참배자들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향로에 빼곡히 꽂은 향대들이 짙은 연무를 내뿜으며 타고 있었고 탁자우엔 굵고 가는 향이 가득 놓여있었다. 참배자들은 일률로 절에서 제공하는 향을 써야 했는데 한 쌍에 적어서 백 여원이니 이 절 저 절 다니며 기원을 드리려면 여건이 여이치 않은 참배자들에겐 만만찮은 경제적 부담이라 사료됐다.

소설가 류진운은 “부처님을 숭배하는 것이 유용하다면 당신은 사원의 문에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을 것이다”고 했다. 이 말은 허무맹랑한 기도에 희망을 거는 사람들에게 성공과 행복은 기원하고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과 분투에서 얻어진다는 도리를 예시한 것이였다.

민간에 “진흙으로 빚은 보살이 강을 건너가듯이 제 몸도 보존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진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자기의 몸도 건사를 못하면서 산 사람의 일을 도와준다는 것부터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봉황산 절들의 부처님들은 대부분이 풍채가 름름하고 배가 불룩했다. 참배자들의 시주로 자기를 살찌우면서도 오히려 구세주 노릇을 하면서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중생들을 호시탐탐 내려보고 있었는데, 모조리 원칙이 없고 호오나 애증도 없으며 령혼도 없고 인정머리도 없는 미라 같았다. 흑백을 가리지 않고 입을 짠뜩 벌리고 아무의 돈이든 주는대로 덥석덥석 다 받아 챙기며 다다익선이였다. 문득 백성의 피와 땀으로 모은 재물을 갉아먹으며 호의호식하면서도 죄송함을 모르는 무치한 탐관오리들를 보는 것 같아 량미간이 절로 찌푸러졌다. 따라서 여기에다 시주하는 것은 고기만두로 개를 때리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봉황산의 절은 불교나 도교의 수도자들이 도를 닦고 수행하는 청정한 곳이였으며 속세인들이 마음을 비우고 신불에게 도움과 복지를 기원하는 참하고 신성한 곳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업리익을 추구하는 돈냄새가 물신 풍기는 범잡한 저잣거리가 되였고 시끌벅적한 관광 명소로 되였다. 우리 나라 명산치고 절이 없는 곳이 없으며 절이 현지의 돈줄이 되였다. 듣자니 아미산과 구화산이 이미 시장(上市)에 나왔다고 한다. 그러니 태산, 화산, 무당산과 같은 유명한 산들이 시장에 나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다.

신앙은 종교의 핵심이며 령적 또는 초자연적 힘에 대한 숭배이다. 프레드리히 니체는 “철학자가 정의한 신앙은 강한 신념으로, 증거가 부족한 사물에 대한 고집스러운 믿음으로 표현된다”고 했다. 신앙은 삶의 정신적 의탁, 정신적 지주, 정신적 원동력으로서 절대 돈을 주고 흥정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장사하는 것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신앙을 잃게 만든다. 만일 당신이 신앙을 매매한다면 당신은 령혼이 없는 산송장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의 절 문화가 초심을 잃고 잘못 계승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바 사회단결의 힘으로 될 수도 있고 사회충돌의 근원으로 될 수도 있다. 이는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이므로 어디까지나 사회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종교조직은 종교활동을 관리하고 조률하는 기구이다. 나는 조용히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절의 혼란한 현황을 효과적으로 정돈하고, 종교활동의 정상적인 질서와 종교장소의 합리적인 사용을 하루빨리 수호했으면 하는 소박한 마음을 담아 천지신명께 삼가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