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두루미의 고향 짜룽을 찾아서
发布时间:25-02-21 09:17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두루미의 고향 짜룽을 찾아서

              (심양) 김희자

8월의 끝자락에 접어드는 어느날 남편이 뜬금없이 짜룽(扎龙)으로 유람가자고 제의해왔다. 언젠가 “두루미의 고향 짜룽”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두루미는 세계적으로 2천여마리밖에 되지 않는 희귀성 동물이라고 하여 호기심이 잔뜩 부풀어있던차라 동을 달며 선뜻 따라나섰다.

    심양에서 떠나는 렬차는 새벽이 되여서야 치치할에 도착하였다.  역전식당에서 대충 조식을 때운 후 관광버스로 짜룽국립공원을 찾았다.

    비록 이순을 훨씬 넘긴 나이에 처음으로 흑룡강성에 발을 들여놓는다만 사람들의 말에서 많이 들었고 글에서 많이 읽어보던 곳이라 마냥 낯설지만은 않았다. 기나긴 겨울철과 매서운 추위, 일망무애한 벌판이나 습지는  “눈발이 창살을 두드려댄다. 이따금 늑대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미구하여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빠그작- 빠그작 출입문 긁어대는 소리가 들린다”고 박경리가 소설에서 묘사한 공포스러운 정경이다. 그러니 이 땅은 나에게 있어 한낱 거칠고 살벌스런 곳으로 각인되여 왔던 것이다.

   어느새 공원의 정문에 도착하였다. 

   두 문설주는 멀리 떨어져있었고 문짝은 가림막이 없어 어설퍼 보이기는 하나 그만큼 이 고장 사람들의 후한 인심과 여유작작한 삶의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대문 안쪽에는 목을 한껏 빼든 두마리 두루미가 힘차게 하늘을 날아예는 조각상이 있었는데 《학려운천(鹤唳云天)》이라고 씌여져있었다. 두루미가 하늘을 날아예면서 노래한다는 뜻으로 자유분방한 기백과 진취적 기상을 선양하기에는 더할나위없는 훌륭한 예술품이라고 생각된다. 기실 두루미는 학과(鹤科)에 속하며 한어에서는 단정학(丹顶鹤)이라고 부르는데 예로부터 도고하고 우아한 자태로 하여 선비를 련상하였고 수명이 길다고 하여 십장생(十长生)의 일원에 넣어 장수를 상징하였으며 일부일처를 따르되 어느 한쪽이 먼저 죽으면 남은 녀석은 식음을 전폐하면서 그 뒤를 따른다고 하여 순애보(殉爱谱)로 일컬어왔었다. 이렇듯 두루미는 예로부터 좋다는 것을 다 가진 길조로 되여있었기에 여러 문학장르에서나 미술, 음악, 조각 등 허다한 예술품에까지 자주 등장할 수 있었고 옛날 문관들이 입는 관복의 흉배(胸背)에도 큼직하게 새겨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고보니 두루미가 더없이 정겹게 느껴지면서 존경심까지 가게 된다.

   《학려운천》을 등뒤로 하자 일망무제한 갈대습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이 세계 최대 갈대습지라고 하지 않는가?  “일망무제”라는 단어는 책에서나 볼 법 하지만 정작 한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게 멀었고 망망한 갈대의 군락지 속에 이렇게 서있다는 내 자신도 가슴 뿌듯하게 벅차오르기만 하다. 늦가을이라 갈대머리의 솜털은 이미 불그스름하게 익어갔고 처녀의 꼬리눈섭같이 길게 드리운 갈잎들에서는 풀내음이 간간히 묻어난다. 때때로 불어오는 한줄금 마파람에 갈대들은 혼신을 다하여 몸을 젓어대는데 혹여 서로를 비벼대며 싸르륵 소리를 내기도 하였고 혹여 바다를 휩쓸며 밀려오는 파도인양 굉음을 내기도 하였는데 빈의 오페라극장에서 울려나는 예술의 향연같이 귀맛이 여간 좋지 않았다. 습지의 중간으로는 푸른, 아니 더 이를데 없는 쪽빛의 늪이 잔잔하게 여울치면서 외로이 떠있는 한척의 쪽배를 가볍게 흔들어놓는다. 와!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유토비아적 환상- 말레이시아의 센모토나(仙本那),  “쪽배와 녀인”이라는 한폭의 그림이 현실로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공중에 들떠있는 듯한 저 배우에서 빨간 장포를 입고 빨간 장건을 걸친채 조용히 배머리에 앉아있는 그녀, 한줄금 쏟아지는 아침 해살은 그녀에게 긴 그림자를 던져주었고 잔잔한 파도는 부채살처럼 펼쳐진 한줄기 해볕에 반사되여 반짝거린다. 마치 내가 화폭 속의 주인공으로 되기나 하듯 현실과 상상이 뒤죽박죽하면서 선경에 처해있는 행복감에 도취되고 말았다.

갈대밭우에 둥둥 떠있는 꽃구름도 매력적이고 량안의 갈대밭을 주름잡으면서 유유히 흐르는 푸른 강도 매력적이였고 갈대밭사이로 우불구불 뻗어진 잔도(栈道)도 매력적이였고 푸른 언덕 푸른 강을 마주한 넓다란 관학대(观鹤台)도 매력적이였다.

미구하여 “뚜루룩 뚜룩” 두루미 몇마리가 앞으로 날아왔고 그 뒤를 이어 수백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오더니 환성을 올리는 관광객들의 머리우를 빙빙 날아옌다. 높이에 있는 녀석은 열십자 《+》가 된 채로 “뚜룩 뚜루룩”을 웨치며 고도를 낮추었고 높이를 낮춘 녀석은 다리를 내려 기윽자 《ㄱ》가 된 채로 “뚜루룩”을 웨치며 착지한다. 참으로 장관이다! 두루미는 손이 닿을듯 날개를 낮게 드리우며 날아예는 모습도 아름다웠고 장성처럼 서있는 모습도 멋지고 아름다웠다. 흰머리에 빨간 벼슬, 목줄기는 먹물을 풀은듯 까맣게 그을렸고 곡선으로 흘러내린 몸둥아리는 백설같이 흰데 날개의 후미진 뒤부분은 흑단같이 까맣게 물들어있었다. 그러니 두루미야말로 상충되는 흑과 백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조합시킨 걸작이 아니런가!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채는 흑과 백의 조화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의 참뜻을 이제야 알겠다.

    두루미의 하늘을 날아예는 모습을 두고 가관이라고 한다면 날개를 추스리며 착지하는 여유의 모습은 장관이라 해야겠다. 그 녀석들은 공중에서부터 빨간 벼슬을 갸우뚱거리며 앉을 곳을 찾았고 착지할 때는 온 몸을 잔뜩 움츠리면서 흑백의 날개를 곤두세워 부채처럼 힘차게 젖다가 날개를 접는다. 이럴때 주위에서는 화답이나 하듯 “뚜루룩”을 웨쳐대며 반기였는데 어떤 녀석은 요란한 날개짓으로 “뚜룩 뚜루룩” 웨쳐댔고 어떤 녀석은 머리를 분주하게 찧어대며 “뚜룩뚜룩”을 웨쳐댔고 어떤 녀석은 긴 다리를 날렵하게 높뛰며 “꾸룩 꾸루룩”을 웨쳐댄다. 참으로 두 눈이 모자라 안타까울 정도였고 두 귀가 모자라 한스러울 정도였다.

    졸지에 한 청년이 물통을 들고 호각을 불며 늪 건너편의 언덕을 넘어오면서 바가지로 물통에 담긴 물고기를 뿌리고 또 뿌려준다. 찰라 두루미무리에서는 난리가 났다. 먹이를 두고 푸드득 날개를 치며 공중에서 나꾸어채는 녀석, 강물에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하면서 부리로 단번에 찍어내는 녀석, 두 발을 엇바꾸며 먹이를 집어내면서 쫗아대는 녀석, 말그대로 아수라장이였다.

    미구하여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두루미들은 배불리 먹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노래판을 벌리는 것이였다. 제법 큰 녀석이 목을 길게 뻗으며 부리를 하늘에 대고 “뚜루룩”을 선창하자 모두들 머리를 방아찧듯 찧어대더니 역시 목을 있는대로 빼들고는 “끼루룩 끼루룩”을 합창하지 않겠는가! 소개에 의하면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십리를 간다고 하였는데 수백마리가 동시에 울어댔으니 그 굉음 알고도 남음이 있을지어다. 뒤이어 두루미들은 춤판을 벌이기 시작했다. 한 녀석이 두 발을 가볍게 올리뛰며 힘차게 날개짓을 하자 어떤 녀석은 두 다리를 쭉 펴면서 날개를 쳐댔고, 어떤 녀석은 짧은 거리를 줄달음치다가 서로를 마주하고 빙빙 돌아댔고, 어떤 녀석은 서로에게 절을 하다가 긴 목을 활등처럼 휘여놓기도 하고 깝쳐놓기도 하고, 어떤 녀석은 작은 나무가지를 물어서는 높이 던져도 보고 재롱을 부리듯 발꿈치를 살짝살짝 앙금앙금 걸음마를 타기도 한다. 아,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클레식이 어디 있으며 이보다 아름다운 발레가 또 어디 있으랴!

    두루미 무리는 수십에서 수백을 헤아린다지만 행동단위는 가족이라 하였고 일반적으로 아빠새가 리더를 하기는 하지만 가족의 의견이 하나로 모여져야 행동하는 특성이 있다고 하였다. 자세히 보니 큰 무리 속에는 작은 집단이 있는데 제법 커보이는 암놈과 수놈 사이에는 좀 작은 한 두마리가 썩여있지 않겠는가. 그러니 두루미는 가족을 중히 여기고 약자를 아끼며 가족에서도 철저하게 “민주”를 체현하는 대형 조류라고 해야겠다. 참으로 얼굴이 뜨거워난다. 우리의 실생활에는 거짓과 기만, 폭력과 행패로 얼룩져있고 공노를 초래하는 부정부패도 비일비재인만큼 두루미 앞에서 한낮 부끄러운 존재로만 되여있지 아니 하겠는가! 개탄할 노릇이다.

    별안간 두루미무리는 물을 차면서 날개를 푸덕였고 힘차게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매양 관광객들의 머리우를 몇바퀴 돌면서 작별인사라도 하듯 사람들에게 신심과 용기와 희망을 불러주는 “뚜루룩”을 구성지게 부르며 저 멀리로 사라진다.

귀로에 선 나는 여흥에 못이겨 장건을 어깨우에 걸쳤다. 두루미처럼 날아보려는 욕망이 솟구친다. 그리고 가볍게 가볍게 두 팔을 놀리며 푸른 하늘, 푸른 습지, 푸른 물결을 바라보노라니 어쩐지 나도 두루미처럼 순결해지고 버젓해지고 도도해진 사람으로 변한듯 한가슴 벅차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