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할머니의 사랑
发布时间:25-02-21 09:00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할머니의 사랑

      (통화) 리미옥

아침산책하느라 강뚝길로 향하는 도중에 수수한 옷차림을 한 할머니 한분이 10원짜리 한장을 손녀의 손에 꼭 쥐여주며 뭐라뭐라 말씀하시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순간 나는 그 장면이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직관적으로 잘 보여주는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나는 그 할머니의 기대에 찬 눈길을 쳐다보면서 저도 모르게 뼈가 저리도록 그립고 사랑하는 나의 할머니를 머리 속에 떠올렸다.

할머니는 인내심이 무척 강하셨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뒤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친구들과 휩쓸려서 놀아보지 못했기에 나는 학교 갈 나이에 아침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매일 울며불며 떼질을 썼다. 이런 나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에도 할머니는 한번도 화를 내지도 않고 꾸지람도 하지 않았으며 손을 댄 적은 더구나 없었고 항상 참을성 있게 매일 아침마다 머리를 곱게 빗어주고 누룽지 한줌을 손에 쥐여주며 나를 학교로 데려다주군 하였다. 학교갈 때는 누룽지를 먹느라 별생각 없이 할머니를 따라 갔지만 할머니가 나를 학교문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순간부터 나는 대성통곡을 하며 할머니를 찾았다.

그 당시 내 기억 속에 나는 한시도 할머니와 떨어지질 못했다. 할머니가 내 눈앞에서 보이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지는듯 무서웠다. 이런 나를 반주임 선생님은 생일이 섣달이라 너무 어려서 그런다며 일단 지켜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31명 학생중 키가 제일 작은 나를 맨 뒤줄 키가 제일 킨 꺽다리옆에 앉혔다. 간이 콩알만한 나는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도 감이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달 남짓 울던 어느날이였다. 나는 슬프게 우는 와중에도 할머니가 되돌아서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하엿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린 나이에도 나는 아픈 충격을 느꼈다. 나는 내가 제일 믿고 좋아하는 할머니가 또 눈물을 흘릴가봐 이튿날부터 학교 갈 때 다시는 울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러는 나를 머리를 다독여주며 맨 앞줄에 않게 자리를 조절하여 주었다. 글자도 3자를 기러기 날아가는 모양으로 쓰던데로부터 반급의 학습위원까지 되였다. 이 모든 것은 담임선생님의 관심과 갈라놓을 수 없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의 결과라고 나는 믿는다.

나의 할머니는 나를 무척 사랑하셨다. 내는 태여나서부터 소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이 할머니의 손에서 컸다. 비록 엄마 아빠랑 같이 살았지만 엄마 아빠는 생산대 일이 바쁘셔서 나를 돌 볼 겨를이 없었다.

내가 소학교를 졸업하고 시내 학교로 전학을 했을 때였다. 시내의 중학교에서 기숙사생활을 해야 했기에 한주일에 한번 혹은 두주일에 한번 집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집에 가건 가지 않건 매번 토요일 저녁이면 할머니는 변함없이 뻐스정류소에 나오셔서 나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시군 하셨다.

할머니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몰래 감추었다 내가 집으로 올 때야 꺼내놓군 하셨다. 내 아래 동생이 셋이나 있었기에 일찍이 꺼내놓으면 내몫이 남아있을리 만무하니까 할머니는 언제나 감추었다가 내가 집에 올 때야 내놓군 하였던 것이다.

한번은 내가 집에 갔을 때 할머니는 부랴부랴 김치움으로 들어가셨다. 나는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에 호기심이 생겼다. 한 여름에 왜 김치움으로 들어갈까? 이윽고 할머니는 한 작은 양재기를 들고 나오시며 “에그, 아까운거 다 변질됐구나. 쯧쯧......”하며 몹시 아쉬워하시는 것이였다. 다가가 보니 양재기에는 이미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돼지고기 한 덩어리가 들어있었다. 그제야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돼지고기를 먹이려 김치움에 숨겨놓았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과자, 과일, 통졸임 같은 것은 괜찮았지만 랭장고가 없는 그때 무더운 한여름에 돼지고기를 보존한다는 건 참으로 하늘에 별따기였다. 고기 한번 먹기가 힘들었던 그 시절 할머니가 나를 생각해주는데 가슴이 뭉클했지만 철없었던 탓으로 할머니의 소행이 조금은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할머니가 나를 얼마나 생각해주고 아껴주었으면 한여름에 무더움도 아랑곳 않고 이런 일을 하셨으랴!

어찌 이뿐이랴! 할머니는 물고기비린내를 몹시 싫어했다. 물고기비린내만 맡으면 알레르기가 생겨 토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가 물고기 반찬을 특별히 좋아하기에 알레르기가 생기는 것도 아랑곳 않고 물고기를 깨끗이 손질하여 집간장에 꼬돌꼬돌하게 졸여주군 하였는데 그 물고기맛은 나에게 천하일미였다. 한 여름밤 잠자는 나에게 달려드는 모기떼들을 쫓느라 잠못든 밤은 얼마였던가!

할머니는 내가 고중 2학년 때인 1985년 65세의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앞에 나는 온통 미안함 투성이였다. 병세가 악화된 상황에서도 토요일만 되면 지팽이를 짚고 마을 어구에까지 나와 나를 기다리는 할머니를 무시하고 현성에서 영화를 보거나 로라스케트를 타러 다닌 것도 그렇고 커서 할머니에게 맛있는 음식을 많이 사드리겠다고 노래처럼 불러왔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그렇고 모두 후회막급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어느덧 40년이 지났다. 그 4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서도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절절한 그리움은 더해만 간다. 이제 할머니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을 내 가족과 자식들에게 할머니가 우리에게 쏟아부은 것과 같은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그 그리움을 달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