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수기
길
심양시화평구서탑조선족소학교 김미자
은행나무가 한창 자태를 뽑내는 가을 오후였다. 퇴근하면서 접어든 골목은 노오란 은행나무잎으로 깔려있고 그 량쪽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여러가지 포즈를 취하고 찰칵찰칵 사진찍는 플래시소리가 가을바람과 조화를 이루었다. 바람에 휘날리며 은행나무잎이 그 화려함을 한껏 빛나게 장식해주었다.
그 사이로 조용히 걸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길이 이렇게 예뻤었던가? 매일 다니던 길이지만 한번도 걸음을 멈춰본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잠간이면은 이렇게 아름다운 정경을 맘껏 흔상할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더러 또 얼마나 많은 행복한 순간들을 놓쳤을가!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들어선 이 길, 교단에 서서 교편을 잡은지도 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들 스치며 지나가고 지친 발걸음으로 긴 하루 하루를 매일과 같이 걸어왔다. 길 따라서 걸어온 그 자리마다 때로는 눈물 때로는 웃음들로 가득 채웠다. 아스팔트길에 수북히 쌓여있는 은행잎마냥.
내가 쪽 견지해서 걸어온 이 길도 그 골목처럼 예뻤었던 길이란건 분명하다. 2학년 때 ‘수수께끼야 함께 놀자’라는 활동이 생각난다. 아이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모여앉아 수수께끼를 맞추는 그 장면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교연조 선생님들과 같이 수수께끼를 수집하는데로부터 편집하고 활동설계까지 참 오랜 시간 같이 하면서 힘들지만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겼다. 너도 나도 고사리같은 손을 서로 질세라 쭉쭉 들어서 서로 정답이라고 자신있게 웨치는 모습, 골든벨 못지 않게 심사숙고하여 정답을 적어주는 기특한 모습들, 그림 보고 새로운 수수께끼 만들기 역시 남다른 아이들의 상상력에 저절로 엄지척을 해준 것도 너무 기억이 생생하다. 그간 힘들게 활동을 조직한 보람도 느끼고 보다 더 재미난 활동형식을 개발해 우리 아이들이 우리말 우리글을 더 많이 습득할 수 있도록 쭉 견지해 온 내 자신도 너무 고맙고 뿌듯하다. 우리말 우리글을 더 많은 아이들이 습득하고 남부럽지 않은 한가지 재능을 더 갖추주는 게 내 자부심이였으니까.
허나 이런 저런 원인으로 우리 민족 언어문자 사용이 많이 줄어들고 우리 아이들이 이제는 우리말로 입 열기도 어려운 상황이 너무 안타까운 요즘이다. 온갖 자원개발, 멀티미디어 사용을 총동원하며 수업진행을 하는 이 길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불보듯 뻔하니 말이다. 그래도 애들이 퀴즈 맞춘다며 고개를 갸우뚱해주고 동화이야기 장면에 피씩 웃어주고 동요 부르며 신나게 박수치는 모습을 보면 그 동안 기울인 노력에 한번씩 위로를 받군 한다. 내가 가는 이 길이 맞는지도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려질지 확신이 없지만 애들의 표정을 보면서 그냥 앞만 보고 가고 있다.
걷다 보니 이 황금빛갈 물든 길도 끝이 보인다. 그러나 이 길 끝에는 더 번화하고 다양한 민족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곳곳에서 몰려 온 유람객들로 밤낮으로 더 북적이는 서탑거리였다. 경제위기 속에서 몇년을 허우적대던 서탑거리도 이젠 인터넷에서도 뉴스에서도 클릭하면 나오는 손꼽히는 스타거리로 자리매김을 하였던 것이다.
내가 가는 이 길도 그렇지 않던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이게 맞는 길인지 이 길의 끝에서 내 꿈은 이뤄질지 답을 내릴 수 없지만 오늘도 걷고 래일도 난 분명 또 걸어갈 것이다. 의심도 하고 흔들림도 많겠지만 걷다 보면 답이 나오고 답이 없을지언정 또 새로운 시작이 찾아오겠지. 올해의 은행잎이 다 지면 래년에 또 찾아오듯이. 그렇게 자신있게 내 길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렇게 믿고 후회없이 쪽 걸어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