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은 어디에
发布时间:24-07-17 08:25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일본의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하루키 월드의 시작을 세계에 알렸던 그의 네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전혀 상관없는 듯한 두 줄거리로 구성되였는데 서로 교차하면서 평행으로 전개된다. 홀수 20장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짝수 20장은 ‘세계의 끝’이라는 두가지 이야기를 따로 풀어나가고 있다. 두 세계는 ‘나’를 주인공으로 1인칭으로 펼쳐진다.

홀수 장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죽은 ‘나’는 머리속에 있는 이면세계인 ‘세계의 끝’으로 넘어간다. 짝수 장 ‘세계의 끝’에 등장하는 ‘나’는 기억을 상실한 상태이다. ‘나’는 ‘기억’을 품고 있는 자신의 분신인 ‘그림자’와 그 마을에서 나가기 위해 시도한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림자’만 탈출시키고 ‘세계의 끝’에 남는다.

이야기의 시작은 자신의 잠재의식을 리용해 데이터 암호화를 처리하는 계산사와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마을에 도착한 남자라는, 언뜻 보면 전혀 공통점이 없는 두 세계이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의 계산사는 의문의 연구소에서 늙은 천재박사에게 일을 의뢰받았다가 갑작스레 영문 모를 습격을 받고 쫓기는 신세이다.

찢어진 양복, 부서진 비디오, 깨진 꽃병… 거기에 그들은 칼을 꺼내 ‘나’를 결박하고 배를 긋고 간다. ‘나’는 대체 무슨 일에 휘말린 것일가?

기호사는 계산사를 넘으려 하고 계산사는 기호사를 배제하려고 하는데서, 박사의 연구는 둘을 암호에 가두는 방식을 선택해 혼동 속으로 몰아가는 구성은 긴장감을 부여한다.

소설의 또 다른 주선은 조용하고 평온한 모습이다.‘세계의 끝’속에서는 주인공이 절대 뚫을 수 없는 견고한 벽으로 둘러싸인 세상과 고립된 마을에 도착한다. 이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림자를 잘라버려야 한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곧 마음이 없다는 것, 즉 이 마을 사람들은 망설임도, 모순도, 후회도, 약함도 없이 순수하고 평온하다. 잘려나간 그림자는 마을의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하며 은밀히 나에게 탈출을 제안한다. 하여 나는 마을 사람들 몰래 장대한 벽안에 멈춰버린 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정체를 파헤쳐나간다.  주인공은 이곳에서 온갖 이상한 생물들과 신비한 힘을 만나게 되고 세계의 과거와 그 뒤에 숨겨진 음모를 알게 된다.

이 작품의 서사방식은 허와 실이 결합되고 두 단서가 동시에 전개된다. ‘하드보일드’는 첫번째 단서 즉 현실사회이다. 또 다른 단서는 허구적인 ‘세상의 끝’이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은 각각 하루키가 정교하게 설계한 외부 세계와 정신세계 두 측면을 대표한다. 이야기에서 그들 사이의 관계는 줄곧 가장 큰 수수께끼이다. 또 독특한 서사구조를 사용해 과거와 현재가 서로 교차하고 병행을 진행하며 하드보일드 즉 랭혹한 선경의 끝은 바로 세계의 끝의 시작이 된다.  

이 작품에서 모체에서 분리된 ‘그림자’는 상징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으며, 전체 이야기에서 거대한 자기 최면의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문장의 말미에서 저자는 모체의 상징인 ‘그림자’를 생명감 넘치는 세계로 되돌리고 자의식의 상징인 본체는 의식형태를 벗겨내여 허무할 정도로 완벽한 그 세계의 끝에 남게 하는 수법을 선택했다.

한편, 독자들로 하여금 ‘세계의 끝’에 들어가는 절차에서 나와 그림자에 두개의 생명을 부여한 서사는 이 책의 별미가 아닐가싶다.

“내게는 그림자가 없고 그림자에게는 본체가 없었다.”

“타인에게 배운 것은 그저 배움으로 끝나지만 스스로 익힌 것은 스스로를 도와준다.”

“뛰여난 음악가는 의식을 소리로 환치하고, 화가는 색과 형태로, 소설가는 스토리로 환치한다.”…

이 작품은 스타일리시하며 랭소적인 세계,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환상적이고 서정적인 ‘세계의 끝’이라는 판이한 두 무대가 때로는 대비되고 때로는 호응하며 평행으로 이어지다가 도저히 상상하지 못할 전개를 펼쳐보인다.

주인공 ‘나’가 살고 있는 현실세계(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주인공의 또 다른 ‘나’가 살고 있는 비현실세계(세계의 끝)가 존재한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눈에 띄는 작품이다. 얼핏 두 세계는 서로 무관하고 단절된 듯 보인다. 하지만 하루키 특유의 치밀한 구성력은 두 세계를 고리로 련결한다. 하루키만의 기발한 발상은 독자를 이야기 속에 한껏 빠져들게 한다.

“두 이야기가 어떻게 합체되는지 써나가면서도 전혀 알 수 없었다. 소설의 구성에 대한 사전 계획이 조금도 없는 상태에서 기분 내키는대로 썼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무모한 일이였는데 그런데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락관적인 자세는 잃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두 이야기가 절묘하게 하나가 되였다. 량쪽에서 파들어간 긴 터널이 한가운데서 만나 길이 뚫린 것처럼. 이 소설을 쓰는 작업은 무척 스릴있고 즐거웠다. ”

이 작품의 머리말의 한단락이다.

  시대나 장소의 분위기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쭉 평행선을 이루며 흘러가다가 서서히 맞닿는다. 그 충격적인 결말은 다시 읽어도, 그가 서문에 쓴 것처럼 독자들에게 잘 만들어진 장편소설의 재미를 흠뻑 안겨준다. 하루키 작품 대부분이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였고 몇 백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였다. 이 소설은 《노르웨이의 숲》,《댄스 댄스 댄스》와 함께 하루키의 3대 걸작으로 꼽힌다.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