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낡은 편지(외1편)
发布时间:24-03-19 09:33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낡은 편지(외1편)

김성철

당금 예순고개를 바라보는 내가 아직도 어머니의 손편지를 간직하고 있다고 하면 아마 웃을 분들도 계시리라. 허름한 종이장 앞뒤면으로 자식에 대한 걱정과 사랑을 가득 채워 적으신 편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누렇게 색바래졌고 그런 편지를 나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류하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한창 외롭고 고달플 때 받았던 어머니의 손편지이다. 어머니의 향기와 사랑이 오롯이 담겨져 있는.

“이젠 날씨도 많이 쌀쌀해졌는데 추운 사무실에서 기거하면서 혼자 밥도 해먹고 빨래도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나. 겨울옷 잘 챙겨입고 감기들지 않토록 조심하거라. 그리고 물 묻은 손으로 밖에 나가면 손 얼군다. 알았지? ... …”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자식걱정은 하나도 변한 것 없다. 웬만한 병은 자식들한테 알리지도 않고 당신 혼자서 어떻게 해결을 보시고는 나중에 옛말하듯이 덤덤하게 흘리신다. 왜 그러셨냐고 하면 그깟 것이 무슨 병이라고 야단인가고 오히려 당신쪽에서 벌컥하신다. 그래도 보건품은 꼭꼭 챙겨드시는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

“내가 병들어 누우면 니들한테 부담되고 짐이 될끼다. 안 그러려면 이런 거라도 잘 챙겨먹어야지 않겠나?”

시간 날 때 아주 가끔씩 관광지에라도 모시면 그렇게 좋아하실 수가 없다. 모처럼 방구석을 떠나 바깥구경을 할 수 있으니 당연히 기뻐하셨겠지만 자식들과 함께 하는 려행이라 더욱 뿌듯하셨으리라. 그런데 사진 찍는 것 맘큼은 한사코 거절하신다. 이젠 주름살이 너무 많아 카메라에 추한 모습 담기는 게 싫다고 도리머리를 하신다. 이마에 잔뜩 남겨진 세월의 흔적과 자식들이 애먹인 흔적이 괜히 부담스러우셨던가보다.

나는 지금도 어머니께서 늙어가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언제나 젊은 시절의 환한 어머니 모습만 애써 기억속에서 길어올리군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금의 어머니 모습에 오버랩시킨다.

며칠 전 어머니께서 고향방문차 더덕을 가져오셨다.

“이번에 류하서 가져온 더덕 좀 갖다 줄가?”

“아뇨, 나중에 그냥 어머니 해주시는 거 먹을게요.”

나는 거절 아닌 거절을 한 셈이다.

요즘은 별로 바쁘지도 않으면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도 않는 어머니를 찾아뵌지 꽤 오래되였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보고 싶어진다. 그토록 즐기시는 딸기랑 풋강냉이를 들고 어머님 뵈러 가봐야겠다. 오월의 해살같이 따스한 어머니 얼굴도 뵙고 많이 엷어지신 몸도 살며시 안아드려야겠다.

어머니, 우리 이대로 그냥 쭈욱 살아요. 언젠가 보내주셨던 저 낡은 편지에서 풍기는 향기처럼 더 젊지도 늙지도 않은 고대로 살아요 우리!

정원에는 봄이 출렁이는데

올봄은 소풍 즐길 데가 생겼다. 얼마 전, 집에서 멀지 않은 도시 외곽에 고풍스럽고 민족의 멋이 물씬 풍기는 조선족 전통 정원이 꾸며졌다. 그런 특별한 곳에서 훈훈하고 느긋한 한나절을 보낼 수 있게 되였다.

정원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전통 한옥에서만이 찾아볼 수 있는 ‘솟을대문’ 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뜰안에 들어서자 한눈에 안겨오는 목재구조 기와집의 멋스런 맞배지붕이며 봄바람에 하느작대는 처마밑 청사초롱은 우아하고 조화로운 고전미를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초롱이 매달린 처마밑에선 화려한 한복차림의 녀인들이 사진 찍는라 한창 깔깔대며 떠들썩했다. 콸콸거리며 쉬임없이 용솟음치는 샘 덕분에 정원에 널찍이 자리잡고 있는 련못에는 주옥같이 맑은 물이 가득히 채워져 졸랑거리면서 정원의 활력을 더해 주고 있었고 검박하지만 도도한 한옥의 그림자가 잔잔한 련못에 살포시 내려 앉아 정원의 풍치를 잔뜩이나 승화시키고 있었다.

거무스레한 기와장을 이고 있는 하얗고 나지막한 담장과 유난히도 돋보이는 버섯모양의 집들 사이엔 주목나무, 두충나무, 홍송과 철쭉이 봄을 맞아 생기를 되찾고 간잔지런하게 줄을 지은 장독대, 화산석으로 다듬어 진 돌하르방과 아담하게 쌓아 올린 돌탑들이 여기저기 적당히 자리잡고 있었다.

건축미와 자연미가 조화롭게 공존해 있는가 하면 “옷소매에선 향기가 넘치고 뜰안엔 달빛이 가득한” 그런 고요하고 잔잔한 동방의 정취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그 하나하나의 뷰는 감동으로 다가와 한참 동안 정겨운 향수와 상상에 젖어있었어야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원 주변를 둘러싼 산과 들에도 살구꽃, 배꽃들이 울긋불긋 이른 봄을 장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꽃향기가 차오르는 산과 들이 있어 정원의 봄기운은 한결 짙어지고 한적한 산자락에 정원이 있어 산간벽지는 더욱 활기가 넘친다. 

정원의 안팍은 담장이 무색하게 온통 봄기운으로 하나가 되여 꽉 차있었다.

꽃숲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꽃들로 하여금 내 속으로 들어오게 하는 경계 허물기를 즐기고 싶어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모두가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면서 마음의 담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저 넓디넓은 바깥세상과 하나로 된다면 정녕 우리들의 삶은 한결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되지 않을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