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청소를 하면서
发布时间:24-02-20 08:59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청소를 하면서

(청도) 김신자

또 한해가 기웃기웃 저물어가고 있다. 하루의 태양이 서산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듯이 올 한해도 어느새 먼 수평선에 거의 다달았다. 이제 태양이 두번만 지면 일년이 수평선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년말이 되면 웬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허전해지고 쓸쓸해지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나이도 한살 더 먹고 일년 동안 보고 듣고 겪은 일들이 더 많아졌으니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마치 모래시계처럼 쉬지 않고 조금씩 흘러내려서 남은 모래가 점점 적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아쉬움을 느끼는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년말이면 집안 밖 대청소를 한다. 엄마한테서 배운 것이다. 내가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년말이 되면 엄마는 비자루 손잡이에 긴 막대기를 동여매고서는 천정부터 바닥까지 집안 구석구석을 쓸면서 먼지털이를 했다. 그리고는 물건들을 뒤집고 털고 닦고 다시 정리정돈하느라 우리한테 잔심부름을 시켰다. 잔심부름이라도 시키면서 대청소에 가담시켜준 덕분에 대청소라는 일이 머리에 각인되였다.

청소를 하면 버릴 것이 있어야 하는데 엄마는 무엇도 버리지 못했다. 헐어서 못쓸 것 같은 물건들도 “이게 다 돈이다”라면서 닦아서 다시 보관하군 했다. 엄마가 우리를 키우던 시절에는 옷 한견지도 맏이가 입고 나면 둘째가 입고 둘째가 키가 커서 못 입으면 헐어진 구멍을 기워서 셋째한테 입히던 가난한 시대였으니 무엇이든 차마 버릴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는 엄마를 보아온 내 몸에도 버리지 못하는 습관이 배여버렸다. 한번씩 대청소를 하면 쓸모없는 물건들을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하고 자꾸 쌓아두기만 하니 집은 창고처럼 변해간다.

지금은 가난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욕심일까? 집착일까? 아니면 단순히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습관일까?

아무튼 올해는 대청소를 하면서 몇년씩 만져보지도 않은 물건들을 필요한 사람들한테 나누어주거나 버릴 것은 버릴려고 큰 맘 먹었다.

지금은 대청소라해도 비자루에 나무막대기를 동여매고 먼지털이를 하지 않고 빗자루로 바닥을 쓸지도 않는다. 청소기를 돌리면 한번에 해결된다. 어릴 적에 “4개 현대화를 실현하자!”는 구호를 부르면서 그것을 리상목표로 공부했는데 그 리상이 실현되여서 엄마 시대와 비교하면 우리는 지금 현대화한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대청소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일이 먼지털이보다는 물건들을 정리정돈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정말로 큰 맘 먹고 버리기로 작정하고 쌓아둔 물건들을 들추어 보니 이렇게 쌓아놓고 살아온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산더미같이 물건을 쌓아두면서 내가 오백년이라도 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가?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장수하기보다는 사는 동안 생활을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 바램이니까. 아니면 왜 그랬을가? 옛날 가난했던 시대에 부모들이 우리를 키울 때 무엇이든 부족했던 기억이 싫어서, 마음 속에 결핍했던 기억이 도사리고 앉아서 수요 이상으로 자꾸 사서 쌓아두라고 시킨 것일가? 언젠가 누구한테 비교당하여 입었던 상처가 내 마음 속에 꿈틀거리면서 다시 상처라도 받을가봐 불안해서 물건들을 쌓아두는 것인가? 아니면 물건마다 추억이 배여있어서 추억이 도망갈가봐 그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일가?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집안 먼지털이가 필요없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우선은 내 마음을 먼지털이 해야 될 것 같다. 내 마음은 여전히 옛날 감정에 얽매여 살고 있는 모양이다. 비자루에 막대기를 동여매고 마음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아쉬움과 불안감과 질투와 분노와 같은 불편한 감정들을 털어버려야 할 것 같다.

아쉬움을 털어버리면 더 잘하지 못하는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으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을 것 같고 불안감을 털어버리면 더 잃을가봐, 옛날처럼 가난할가봐, 무슨 안좋은 일이 생기면 감당할 능력이 없을가봐 미리 걱정하지 않고 오늘날에 충실하면서 웃으며 살 수 있을 것 같고 질투심을 털어버리면 더 멋있고 잘 사는 사람을 보면서도 부러워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고 박수를 쳐줄 수 있을 것 같고 분노를 털어버리면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일을 겪어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원망과 질책 대신에 더 나은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심방을 청소하여 마음을 비우고 나면 지나친 경쟁도 욕심도 욕망도 스스로 사라져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생활도 가벼워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마음에서 너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추억의 그림자도 털어버릴 것이다. 비워진 공간에 매일매일 변해가는 새로운 시대를 담을 것이다. 버릴 수 없는 추억들은 글에 담고 사진에 담아서 서재에 보관할 것이다.

털어버리고 쓸어버려서 마음을 비우고 나니 무겁고 갑갑했던 가슴에 바람과 해살이 들어온 것처럼 밝고 상쾌해졌다. 마음을 청소하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서 기분이 좋아지니 화분도 손질해주었다. 누런 떡잎을 뜯어주고 혼자서 길게 자란 가지들도 싹둑싹둑 잘라버렸다.

아쉬움과 불안함을 털어버리고 나니 지는 해를 보아도 사라져가는 한해를 보아도 더는 서운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을 것 같다. 모든 것을 접수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겼으니까 그럴 것이다. 저기 화분들도 가볍게 정리되여 거뿐해졌으니 이제 새해 봄이 오면 부담없이 고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