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왜 단풍 구경을 떠날가
发布时间:23-11-21 08:23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왜 단풍 구경을 떠날가

   (심양) 서정순

본계 록석곡(绿石谷)에 가서 단풍 구경을 하고 온 이튿날 위챗 모멘트에는 단풍 기행 사진들이 많이 올라왔다. 사진들을 보면서 나는 이 사람들 나와 같은 곳을 갔다 온 사람들이 맞나 싶었다. 나도 나름대로 이번 단풍 기행에서는 어떻게 사진을 좀 찍어볼가 해서 스마트폰을 들고 사진을 잘 찍는다는 사람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 사람들이 찍으면 나도 그 자리에서 찍군 했는데 효과는 영 천양지차이다. 스스로 이 사람들은 단풍을 마음으로 감상했는데 나는 그저 단풍만 보고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의 선택과 명암 구도의 배치가 기가 막힐 뿐만 아니라 사진 속의 풍경이 눈앞에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파란 잎들에 둘러싸여 있는 빠알간 단풍은 잘 익은 단풍이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말을 실감나게 했고 까아만 바탕에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미는 빠알간 단풍은 세련미를 갖춘 도고한 녀자의 교태스러운 멋 같았으며 푸름을 배경으로 빠알간 단풍들이 한겹 한겹 층층이 배렬된 것은 마치 계단을 타고 하늘로 오르려는 마음인 듯, 단풍의 마음이, 사진작가의 의지가 보여지기도 했다. 길지도 않은 짧은 폭포수가, 아니 폭포수라고 하기엔 좀은 과분한 생각이 들 정도인 그 조그만 폭포수 앞에서 사진사들이 찰칵 찰칵 하기에 나도 덩달아 여기 섰다 저기 섰다 하며 각도를 맞춰가며 찍어보려고 했는데 나온 사진을 보니 폭포수 실물에 훨씬 못 미쳤다. 그런데 위챗 모멘트에 올라온, 바로 그 하찮아보이는 폭포수 사진이 완전 멋진 예술로 승화되여 있었다. 실안개를 풀어놓은 듯, 선경 속의 구름 속을 거니는 듯 몽환과도 같은 모습이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사진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단풍 기행을 오기 전 내가 가장 많이 생각했던 화두는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왜서 단풍 기행을 떠날가 하는 것이였다. 가을이 되면 아빠트의 나무들에도, 길가의 가로수들에도 단풍이 곱게 내려앉는데, 그것도 아니면 가까운 공원을 가도 단풍의 자태를 쉽게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멀리 몇시간을 달려 단풍 구경을 떠날가. 이 의문은 단풍 기행을 떠나면서 안개처럼 서서히 걷어지기 시작했다.

2023년 10월 4일 6시 20분, 파르스름한 아침을 가르며 지하철역으로 달려가면서 나는 오랜만에 아침의 신선한 공기에 마음이 젊어지는 느낌이였다. 이른 시간이라 지하철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어 단풍 기행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한결 개운해졌다. 소란스러움을 싫어하는 나는 국경 련휴 기간에 떠나는 단풍 기행이 살짝 우려도 되였다. 언젠가 국경 련휴에 관문산 단풍 유람을 떠났다가 관문산 대문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발이 꽁꽁 묶여 한시간도 넘게 답답한 차안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아찔해나기도 하였다. 다행히 이번의 단풍 기행은 아주 순조로웠다.

심양 서탑에서 출발한 뻐스가 본계 경내에 들어서자 느긋하게 펼쳐진 가을산들의 모습이 안겨왔다. 겹겹이 포개져 멀리 저 멀리로 아득하게 펼쳐져가는 산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편안하고 풍요롭게 해준다. 영근 햇살 아래 비스듬히 누워있는 산들은 도심의 소음과 매연에 시달린 마음을 풀어주기에 족할 것 같았다. 아마도 단풍 기행을 하는 리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속으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하는 사이 뻐스는 벌써 우리의 목적지 본계 록석곡풍경구에 도착하였다.

대문으로 들어가니 양지 바른 쪽에 있는 나무들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있었지만 음지 쪽에 있는 나무들은 아직도 푸른빛 위주였다. 사진작가들은 일주일 정도 더 지나면 단풍이 한껏 물이 오를 것이라고 했다. 나는 산에 올라가 유희를 논다고 하기에 일행이 가는 대로 따라 올라갔고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덩달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사진사들이 사진을 찍으면 나도 그 자리에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도 보았다. 돌아올 때 디카시 응모도 있다고 해서 꽤 그럴 사한 사진을 찍으려고 무척 왼심을 썼다. 그러다 보니 봄꽃보다 아름답다는 단풍도, 만추의 하늘 아래 원숙미를 자랑하는 가을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단풍과 눈길도 마주치지 못한 것 같다.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파아란 하늘을 보고 그 아래서 말없이 익어가고 있는 단풍들도 보고 산 그림자를 태우고 말없이 흘러가고 있는 시내물의 모습도 보아야 했을 텐데 단풍 감상보다는 사진 찍는 것에 비중을 두다 보니 귀로에 올랐을 때는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을 꾼 듯 희미하기만 하였다.

다행인 것은 이튿날 위챗 모멘트에 올라온 사진들이 있어서 단풍 기행의 기억이 오히려 또렷해졌다. 려행하면 남는 것이 사진 밖에 없다더니 사진을 보니 떠들썩하고 열렬했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이번 단풍 기행에는 명랑하고 상쾌하고 약동하는 기운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으면서도 많이 웃었던 것 같다. 울긋불긋한 등산복 차림의 녀자분들과는 다르게 남자분들은 좀 점잖은 색상의 옷들을 입고 있었다. 날아갈 듯 두팔을 벌리고 다리를 들고 목수건을 리봉처럼 머리에 감았다 목에 감았다, 하트를 날렸다, 먼 곳을 응시하며 예술가의 포즈도 취했다 여하튼 녀자들의 포즈는 패션모델 울고 갈 지경이였다. 그만큼 젊었다는 표징이다. 그만큼 예쁘다는 표징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있다는 표징이다. 그 싱싱하고 패기있는 기운들은 주파수가 되여 주위로 넓게 넓게 퍼져가고 있었다. 아, 나만의 착각인가. 어떨궁하고 기웃거리고 좀은 엉큼하게 은근슬쩍 끼여보는 남자들의 모습이 … 아, 롱담, 주위에 유람객들이 있었는지 기억에 가물한 것을 봐서 그날 록석곡의 중심은 우리들이였던 것 같다.

유희 놀 때 찍었던 사진을 보니 재미있었던 정경들이 떠올라 저도 몰래 웃음이 난다. 아무리 어른이 되여도 마음은 순수한 동년에 머물러 있는 듯. 세월의 두께가 깊어지면서 깊숙이 감춰졌던, 잊어졌던 그 맑고 천진했던 마음들은 유희놀이에서 남김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촐랑촐랑, 깡총깡총, 나풀나풀 다들 잘도 뛰고 해맑은 얼굴로 풍선을 불어 고뿌 들고 잘도 뛰는데 … 부러웠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하는 말이 있지만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띠를 감아 뛰다가 다른 사람한테 넘겨주고, 오자미를 두 무릎 관절 사이에 끼고 달리기 등 유희 준비를 넘치도록 많이 한 것 같은데 점심을 고려하여 적당한 선에서 그만두었다. 유희를 놀 때만은 몰입하고 행복해하는 모습들, 개구쟁이들의 모습과 다를바 없었다.  

돌아오는 뻐스에서는 디카시 응모가 있었는데 심사 결과 디카시를 별로 써보지 않았던 신진들이 상을 많이 탔다. 젊은 사람들답게 기발한 착상들이 절묘했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었다. 더구나 다원화적이고 열려있는 지금 자기만의 개성있는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다. 저 세상으로 간 대학교수이며 동창이였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누구나 문학을 할 수 있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발견하는 순간이였다.

양탕집에서 상기된 얼굴들을 바라보며 나는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왜 단풍 구경을 떠날가? 하는 나의 이 화두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같은 산이라도 산 밑에서 보는 풍경과 산 우에서 보는 풍경이 다르듯 어디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같은 단풍이라도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화끈하고 활력있고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과 함께 해서 많은 에너지를 얻은 오늘의 단풍 기행, 그래서 사람들은 멀어도 기어이 단풍 구경을 떠나는 것이다. 고여 있지 않고 움직이는 것, 떠나는 것, 그것은 새로운 바람과의 만남이고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며 새로운 자기와의 만남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