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혜정이
发布时间:23-10-26 04:17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단편소설      

혜정이

(철령) 박병대

혜정이는 태환령감의 외손녀이다. 초중을 졸업하고 고중에 입학한 혜정이는 학생숙사에 들어가지 않고 외조부의 집에서 주숙했다. 외조부가 정년퇴직전에 고중의 이름난 수학교원이였으나 혜정이는 과당수업에 집중하고 자체로 연찬했지 할아버지한테 도움을 청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매 번 월고를 치고 나면 걔가 받은 수학점수는 학급의 중등수준을 넘은 적이 별로 없었다.  혜정이가 고중 3학년에 오른 뒤 외조부는 외손녀가 과외시간을 과학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달아났다. 학교에서 저녁자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외손녀를 본 외조부가 말했다.

“혜정아, 고3에 올라와선 시간을 각별히 아껴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수학문제풀이를 할 때 인차 풀리지 않는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선생님이나 할아버지한테 물어서 제때에 알고 넘어가야 한다.  한문제에 매달려 몇날 며칠씩이나 금싸락같은 시간을 허비해서야 어디 될 일이냐?”

 “예, 예! 할아버지, 알았습니다.”

혜정이는 시원스레 대답하면서도 할아버지한테 수학문제풀이를 물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고중 3학년 하학기 중반의 어느날 저녁이였다.

“할아버지, 저는 이제야 수학문제를 풀이하는 기본요령을 터득하기 시작했어요. 지금 수학은 배우면 배울수록 재미있어요.”

혜정이는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면 말하였다.

 (대학입시가 코 앞인데 이제 와서 수학에 취미를 붙혔다면 행차뒤 나발이지!)   

태환령감은 바른 말을 한마디 내뱉고 싶었으나 손녀애의 정서에 찬물을 끼칠가봐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켰다.

대학입시성적이 발표되였다. 기타 과목 성적은 모두 전교 수험생중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수학성적만은 150점 만점에 96점밖에 얻지 못하였다. 비록 총점수는 중점대학 록취선에 들었으나 자신있게 지원할 만한 대학교가 없었다. 고민끝에 혜정이는 M대학 문학계를 지원했고 드디어 입학통지서를 받았다.

“그만하면 잘됐다. 너의 장점인 글쓰기 재주를 익힐 수 있는 문학계에 들어가게 됐으니 문학공부를 착실히 해서 장차 작가로 될 꿈을 키워라.”

“예, 그러겠습니다.”  

할아버지한테 아니 불자를 한번도 써보지 않은 혜정이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대학교에 입학하여 세학기 공부도 못했는데 코로나사태가 터졌다. 외손녀가 집에 돌아와 원격교수를 받는다는 말을 들은 태환령감이 속이 참으로 말이 아니였다. 어느날 혜정이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걔가 공부하는 책을 번져보니 문학강의를 들은 게 아니라 문학과는 거리가 먼 <<회계학강의>>를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였다.

“얘야, 오늘 네가 강의받은 게 무슨 내용이냐?”  

밖에서 돌아온 외손녀를 보자 태환령감은 급히 물었다.

“할아버지, 오늘은 <<회계학강의>>를 들었어요.”

“뭐어? 네가 무슨 회계학을 배운다고? 문학만 전공하려 해도 쉽지 않을텐데...”

“할아버지, 지금 대학교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본전업을 전공하는 외에 다른 전업을 한가지씩 더 배우고 있어요.  저는 본전업외에 회계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졸업한 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라 여러가지 가능성을 대비해서 한가지를 더 전공하고 있어요.”

“오냐, 알았다.”

대졸생이 온 나라안팎에 넘쳐나는 지금의 형세에선 직업을 찾기 위해 한 나무에만 매달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든 태환령감은 외손녀의 선택에 수긍하지 않을 수 밖에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두 학위를 받고 집에 돌아온 혜정이는 날마다 컴퓨터 앞에서 무슨 공부를 하는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았다.

“다른 애들은 졸업하고 직업을 찾느라 집에 돌아오지도 못한다던데 너는 날마다 집 안에서 컴퓨터하구 씨름만 하니 도대체 어쩔 작정이냐?”

“저는 이미 취직통일시험을 치르고 집에 돌아왔어요. 지금은 면접준비를 하는 중이예요.”

“뭐라구? 회사에서 면접통지를 보내오면 그때 부랴부랴 떠날려고 그러느냐?”

“할아버지, 그런 걱정은 붙들어매세요. 지금은 인터넷시대라 발로 뛰여다니며 직업을 찾는 그런 세월이 아니예요. 저는 집에 오자마자 필기시험 합격통지를 받았어요. 저는 지금 여러 회사의 면접통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예요.”

“그래? 듣고보니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나는 너만 믿는다.” 태환령감의 얼굴에 서린 안개가 말끔히 사라졌다.

며칠이 지나자 혜정이는 고중동창생모임이 있다면서 집을 나섰다. 집에서 면접준비는 착실히 하지 않고 애들과 히히락락하면 면접준비는 누가 대신 해준다더냐? 태환령감은 눈에 넣어도 아프잖을 손군의 심기를 건드릴가봐 입에 자물통을 채웠으나 가슴 속은 기름가마마냥 부글부글 끓었다.

“얘야, 혜정이가 면접준비는 안하고 애들한테 놀러 갔구나. 이를 어쩌면 좋나?” 태환령감이 위챗전화로 현성에서 근무하는 딸한테 한바탕 푸념했다.

“아버지, 우리 혜정이도 이젠 성년이 되였으니 걔를 믿어보세요. 걔한테 너무 독촉하지 마시고 걔가 하는대로 가만히 놔두세요.” 손녀를 두둔하는 딸의 말에 태환령감이 발끈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애더러 무리지어 돌아다니며 놀게 하는거야? 너는 새끼를 속으로 고와해야지 겉에 드러나게 고와하면 전도를 망친다는 도리를 모르느냐?”

“아버지, 우리 혜정이는 어제 회사의 면접합격통지서를 받았어요. 회사도 생각보다 좋은 곳 찾았고요. “

“뭐라구? 면접하러 가지도 않았는데 합격통지를 받았다니 어디 말도 안되는 소릴 하는 거냐?” 태환령감은 딸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릴 치는 것만 같아 어의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 지금은 인터넷시대라 발로 뛰여다니며 면접을 보지 않고 인터넷을 리용해서 화상면접을 하기때문에 혜정이도 집에서 면접을 보고 합격통지를 받았거든요. 말이 퍼지면 아직 통지서를 못받은 애들한테 미안하다면서 아직 누구한테도 알리지 말라고 걔가 신신당부했어요.”

태환령감은 손녀애가 좋은 직업을 찾았다니 속으론 웃음주머니가 흔들거렸다.

저녁 여덟시가 좀 지나자 동창모임에 갔던 혜정이가 집에 돌아왔다. 태환령감은 도도한 흥이 채 가셔지지 않은 손녀애를 보니 귀엽기 그지없었다.

“혜정아, 네가 좋은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니 참으로 기쁘구나. 그런데 회사에선 네가 배운 문학지식은 아무런 쓸모가 없겠으니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인 것 같아 나는 그게 걱정이구나.” 태환령감은 몇해전부터 마음 속에 자리밥은 고충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혜정이는 할아버지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본 듯 자신있게 말하였다.

“할아버지, 저는 회사에 입사하여 회계사업을 하더라도 문학의 꿈을 접은 것은 아니예요. 저는 맡은 사업을 열심히 해서 훌륭한 회계사로 될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 풍부한 견문을 쌓아 창작의 밑거름을 만들고 훌륭한 업여작가로 성장하려고 합니다. 할아버지, 저를 지켜봐주세요.”

태환령감은 혜정이의 속깊은 말을 들으면서 언제나 철부지 어린애로만 생각해왔던 혜정이가 의젓한 젊은이로 되였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고 이제부턴 혜정이가 하는 일에 손끝만치도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