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바위 그리고 바다(외3수)
(대련)박정화
흰 거품 물고 으르릉거리며
버릇없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뺨을 후려갈겨도
차마 외면할 수 없었지
갈 때는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한번 뒤도 보지 않고
쌩 찬바람 일구며 가버렸건만
감히 밉다는 소리 내뱉지 못했지
뭐가 그리 좋았을가
평생 한 자리만 지키며
오시나 오시나 하얀 가슴 까맣게 타도록
기다림이 덩이로 굳어진 단단한 소망
다시 태여난다면
사랑한다는 말
쉽게 내뱉지 않으리
산딸기
동실한 빨간 머리가
남실남실 내리는 비에
촉촉 촉촉히 젖는다
비 속에서도 자기만의 세상인듯
도리반도리반
상상도 못했다
그 짙푸름 속에 톡 불거져
일점홍으로 도도한 사랑
차마 차마
그대로 둘 수 밖에 없었다
비물에 목욕을 시원히 하고
고개 갸우뚱 하는 걸 보며
그 사랑스러움을
눈동자에서 가슴으로
옮겨와버렸다
이제 누가 뭐래도
넌 내 사랑
영원히 이 가슴에서
보내주지 않을 거야
양파
사계절 꽁꽁 여미고
싫증도 나지 않는가봐
봐도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인데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한층 더 껴입고
속살 보일까봐
부끄러웠나보다
네가 아무리
꽁꽁 무장하여도
모두들 궁금해서
널 가만 두지 않더라
봐 봐
한겹 한겹 벗겨낼 때
그저 묵묵히 순종하건만
누구에게든
눈물범벅 만들어주었지
아
뒤늦게야 알았다
아픈 상처 씻어주려는
너의 그 속 깊은 마음을
삼복
누구나 미워한다
눈치코치 없는 무더위야
모두들
아니꼽게 널 바라보는
그 기미 못 알아차렸나봐
막 정신없이 몰아올 땐
바람도 선풍기도
너 앞에선 막무가내더라
삼복아
누구나 널 보면 얼굴 찡그리는데
언제까지 버틸 작정이냐
뒤꽁무니 졸졸 따라다니며
너는 한마디 툭 던진다
땀방울 흘리지 않고
무르익은 열매 맛볼 수 있냐고
차갑게 굴수록 치근덕거리며
또 한마디 내던진다
나를 넘어서야
시원한 인생길이
열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