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가을의 농가에 위로가 있었네
发布时间:22-12-01 11:54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기행수필

가을의 농가에 위로가 있었네

   (심양) 전정환

1

지금은 그저 지난 세월의 추억으로만 남아있는 농가의 풍경은 항상 나를 감미롭고 따스한 추억으로 인도한다. 그래서였던가.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심양 변두리에 있는 시골에라도 한번 “락향”하여 그 오매에도 그리던 시골의 따뜻한 정서에, 향촌의 아늑한 품에 푸욱 잠기다 오고 싶었다. 그렇게 향수 한번 찐하게 달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절대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였다. 우리 동아리들 술자리에서도 심심치 않게 말밥에 올랐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자글자글 달아오르군 하던 화두였다. 다들 하나같이 나하고 같은 심정이다! 우리는 하루 빨리 날을 잡아보자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오기를 간절하게 소망하고 념원하였다.

하지만 말이 쉽지 그게 어디 그렇게 례사로운 일이였던가. 아마도 근 10여년동안 군불만 때다가 말았다. 말로만 벌써 수십번 시골에 들렀고, 개오십마리 정도는 잡아먹었다. 따뜻한 구들목에 앉아 개장국 후르륵 떠먹는 정경을 백번도 넘게 련상, 꼴딱꼴딱 목구멍을 통과한 군침은 아마도 한바께쯔는 넘을 것 같다.

뭐가 그리도 바빴던지, 뭐가 그렇게 무거운 걸림돌이 되였던건지, 지금에 와서 아무것도 손에 걸러지는 건 없다. 그저 가지 못했을 뿐이다. 소원을 이루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오늘 그 오랜 숙원이 끝내 이루어지게 되였다. 우리 일행은 저명한 조선족 시인 박만해씨의 농가 저택에 초대되였다.

2

시골려행이라는 간만의 이색적 행차에 아침부터 살짝 들뜬 마음은 심양 시가지를 벗어나 조금 한산한 교외도로를 달리면서 슬슬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단풍든 가로수 너머로 황금의 전야가 시야에 들어왔던 것이다. 천고마비의 계절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향촌의 넉넉하고 기름진 가을 본색이다!

탁 트인 전야에서 벼파도가 출렁이며 풍요로운 곡창을 자랑하고 있었고 개울가에 꽉 들어찬 노란 갈대숲이 잔바람에 살랑이며 추색이 물든 계절의 색채를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해마다 이맘 때면 시골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너무도 평범한 그림들이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들판과 가을을 만난 논밭들만이 단조롭게 중복되고 있었을 뿐이다.

누가 봐도 뻔한 가을 시골의 풍광!

하지만 나는 다짜고짜 흠씬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곧 가볍게 붕 떠버렸다. 단체방을 돌아가며 정신없이 문자를 두드려댔고 눈앞의 풍경을 빨아들인 사진, 동영상을 질정없이 마구 날려댔다. 얼큰하게 취한 사람처럼 허둥거렸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감동 유발의 실체가 너무 빈약하다. 얼핏 누가 들으면 얄팍한 감성팔이로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힐난할지도 모른다. 무슨 명산대천의 기묘한 풍경을 만난 것도 아니고 그저 한낱 시골의 가을 논벌 풍경을 마주했을뿐인데... 그런데 그날 나는 분명 그 시점에서 이미 흥분의 정점에 치달아있었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져버렸다.

뭉클하게 찾아왔던 그 감동은 심후했고 숙연했다. 들판을 가득 메운 가을의 향기에 취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내가 미리 향토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을 꽉 채우고 있었던 것인지? 그래서 그날 그 시각 그저 무턱대고 감동하고 충동하자고 작정했던 것인지? 그것은 지금도 아리송하고 혼란스럽다. 딱 집어서 무어라고 말하기 곤난하다.

3

차창 밖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한 약 반시간 남짓 달렸을가 말가 하는 시점에 우리들의 목적지인 아담한 농가마을이 모습을 나타내였다. 근데 우리가 살던 옛날 시골의 모습이 아니다. 아니 나의 머리속에 저장되여있는, 나의 향수와 련결되여있는 “정든 고향”의 그림과는 겹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강박적으로 느끼고 싶었던 마음속 향촌풍경이 따로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잠깐 왔다가 곧 바람처럼 사라졌다. 눈 앞에서 농가마을의 위용이 압도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동네 가로세로 아스팔트포장도로가 쭉쭉 뻗으며 윤택하고 기름진 향토의 면모를 대신했고, 빨갛고 노랗고 파란 기와집들이 요염한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길가에 버티고 선 가로등에서는 금시라도 눈부신 광망이 쏟아질 것 같았다. 완전 “도시형 향촌”이다! 격세지감이라는 말로는 제대로 형용하기 어려울만큼 현기증이 나는 변화다. 그래도 집터 앞뒤로 자리잡은 터밭, 마당 한가운데 땔감으로 쌓여 있는 건초더미 등이 시야에 뛰여들며 금방까지 도농의 경계에서 잠깐 헤갈렸던 마음을 다시 돌려놓았다.

곳곳마다에서 풍요와 여유가 넘쳐흐른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슨 말씀인지 뼈속까지 전달되는 순간이다.  

“농촌이 몰라보게 변했네!”

그때 내가 이런 소리를 입밖으로 내질렀던지 아니면 그저 속으로 우물거렸던것인지 이것도 지금에 와서 딱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긴 아무렴 어떠랴! 변했다고 소리를 질렀거나 말거나 천지개벽은 눈앞에 있었던 것이오니!

4

만해 시인님의 저택은 마을 동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광경은 여느 농가집이나 별반 다름이 없었지만 집안에 들어서면 사실 전원주택으로 화려하게 둔갑을 한 돈 많은 재산가의 별장 품격을 고스란히 과시한다. 집 안의 인테리어나 가구배치나 집기 등 눈길이 미치는 곳 세부 요소요소에서 도시형 브루죠아의 사치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처처에서 정겨운 시골의 향기가 넘쳐 흐르고 있다. 침대 대신 아담한 구들방으로 꾸며진 침실은 적어도 오백년 전 우리 민족의 풍습을 그대로 벤치마킹했고 부엌에 들어서니 숙성이 잘된 김치내음과 쫄깃쫄깃 입맛을 당기는 장아찌의 매콤한 내음이 향토맛에 길들여진 후각을 정밀하게 자극했다.

그리고 문 밖에 나서면 뛸데 없는 향촌풍경이 한창이다. 뒤뜰 앞뜰 터밭에는 배추와 무 등 야채들이 아직도 파랗게 자라고 있었고 집터 가장자리에 노랗게 말라든 옥수수대와 엉컹귀들이 금방이라도 다시 푸른 모습을 드러낼 듯 가을바람에 서성이고 있었다. 채소들이 커가는 숨소리가 울안에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사랑채에서 금방이라도 시골 할아버지의 따스하고 석쉼한 목소리가 흘러나올 것 같았다. 도처에서 정을 끄는 알뜰한 향토의 맛이 물씬 풍긴다.

5

그리고 그 거룩한 향촌 풍경의 중심에는 안주인의 따스한 모습이 자리한다. 지방정부의 공무원으로 아직 현역으로 근무하시는 만해 시인의 부인님은 관청에 출근하시면 우아하고 격조 높은 백작부인이시고 퇴근하시면 정다운 시골의 아줌마다.

그런 아줌마의 어질고 인자한 품성 덕분에 불청객의 안쓰러움 때문에 쭈빗거리던 우리 일행은 그저 인사수작 1절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어두운 그림자를 일소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그녀의 소박하고 가식 없고 따스한 심성을 간파하는데 딱 담배 둬 모금 빠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말 친정오빠라도 만난 듯 진심으로 반기고 뜨겁게 맞아주었다!

차탁을 둘러싸고 앉아서 아줌마가 울안에서 방금 따온 것 같은 대추를 아삭아삭 씹어먹는 일동의 행복하고 조금 멍청한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곁에 앉아있는 만해 시인님에게 “만해, 자네 정말 장가 잘 갔네!” 하고 “칭찬”하려다가 꿀컥 삼켜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궁색해도 그렇지! 이제는 오십이 넘은 아저씨한테 장가 잘 갔다는 칭찬으로 안주인에 대한 고마움을 대신한다는 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혼자 제풀에 피식 하는데 아줌마의 옥설같이 맑은 녀중음이 터졌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깨여나거든요. 그게 얼마나 좋은 지 몰라요!”

이렇게 말하는 아줌마의 입가에 자부심과 만족감이 흘러넘쳤다

“앞뜰에 있는 사과나무에 주렁주렁 열렸던 사과를 새들이 다 파먹었어요. 그래도 반갑기만 했습니다!”

“새들이 처마밑에 둥지를 틀기도 하죠”

금방이라도 열린 창으로 한 떼의 새들이 방안에 휘익 날아들것만 같았다. 새에 대한 아줌마의 례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이라는 천고불후의 고향 찬사중 아줌마는 유독 새가 우는 쪽으로 일변도다. 울안 도처에 아름다운 꽃들이 가을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었음에도 전혀 몰지각! 하긴 꽃은 어디서도 피고 또 어디에서도 피게 할수 있다. 하지만 새는 어디서나 지저귀지 않는다. 아줌마는 바로 그 점에서 신묘한 자연의 섭리를 발견한 것 같다. 소리없이 묵묵히 존재를 드러내는 꽃보다 소리치며 공격하며 력동하는 생명을 과시하는 새의 지저귐에서 아줌마는 뭔가 더 크고 벅찬 의미를 발견한 것 같다.

아줌마도 시인이다! 나는 이렇게 속으로 엄숙하게 결정했다.

6

이쯤하고 보니, 무엇이 도회지의 자랑스러운 시민인 박만해 시인의 가슴에 시골살이의 불을 지폈을가? 무엇때문에 박만해 시인이 그 안락한 도회지 생활을 접고 호젓하게 락향하여 귀촌 생활을 시작하게 하였을가? 하는 의문이 순식간에 안개처럼 연기처럼 날려갔다.

이제 그가 시시각각으로 만나게 되는 시골의 생활들이 어떻게 그의 시에서 련결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터밭을 일구며 삽질을 하며 시를 지으며... 도회지의 관습이 몸에 익은 부자집 도련님 같은 만해 시인이 쇠스랑을 제대로 다루어낼가? 삽질을 제대로 할가? 호미로 채소밭을 제대로 후벼내기가 쉽지만은 않을텐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지만.

“자연이 있고 예술이 있고 시가 있는데 내가 뭘 더 바라겠습니까.”

기다리기라도 한 듯 만해 시인이 나에게 속삭이는 말씀! 잠깐 스치였던 나의 우려는 분명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기우렸다. 나는 그가 농부의 삶을 그대로 잘 녹여낼 것이며 그 속에서 주옥같은 시어들을 줄줄히 건져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우리는 곧 터밭의 가장자리에서 돋아나는 작은 들풀이 바람에 하느작이는 원리를 깨우치게 될 것이고, 곧 울밖의 버드나무에 내려앉은 참새들이 행복하게 지저귀는 비밀을 해독하게 될 것이다!

문득 쪽마루에 걸터앉아 비파를 타며 거문고줄을 튕기며 사색을 더듬는 시인의 모습이 눈 앞에서 얼른거렸다. 창 밖의 배추이파리에 비방울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시상을 가다듬는 시인의 영상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삶의 품격과 향기 그리고 달관의 경지가 돋보이는 가상의 순간이다.

“시인은 시인은 노래부르네...”

시인은 터밭을 가꾸며 시를 지으며 이 세상 가장 맑은 감성을 수확할 것이다!

7

칠성산 산정상까지 올라 심북 전야의 전경을 둘러보고 돌아오니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언제나 감성을 쫓는 글쟁이들에게 해질녘의 하늘빛은 치명적으로 유혹적이다. 그래서일가. 전야의 풍광 그 리면으로 바싹 다가선 그림이 그리워났다! 차창밖으로 주마등처럼 스쳐간 그 언저리 그림 가지고는 택도 없다. 광활한 들판, 황금의 전야에 한번 풍덩 침몰하여 그 속살을 촘촘하게 들여다보며 이 가을 향촌의 정취를 만끽하고 싶었다!

충동이 금방 꿈틀거렸다. 혼자서라도 나서고 싶었다.

초대된 손님의 립장에서 나 혼자만의 이런 돌출 행동이 살짝 좀 불경스러운 일이지만 나는 그런 범절을 완전 외면하고 마을 구내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일행에게는 조금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개인행동이지만, 그 그리움을 참고 견디다가는 내가 오만상을 찌푸리게 생겼다.

8

마을 구내를 조금 벗어날가말가 하는 데 일망무제한 전야의 풍경이 지척으로 다가왔다. 바람소리 새소리에 젖은 아늑한 고요함이 전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농가에서 피여오르는 저녁연기가 들판 우를 배회하며 향토의 풋풋한 정서를 자극했다. 그리고 논밭에 자욱하게 내려앉은 석양의 아름다운 노을, 농로옆으로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소리...말 그대로 완전 한폭의 그림이다!

가을은 익어가며 깊어가는 계절이라고 했다. 기름진 대지, 무르익는 오곡백과! 시선이 닿는 곳마다 고결한 정토의 순수와 정갈함이 물밀듯이 다가온다.

너무 아름답다! 동행한 시인묵객들이 같이 나왔더라면 벌써 시 한수 뚝딱했을텐데! 감흥을 참지 못하고 뭔가 노래하고 읊조리고 싶었지만 그저 “아아! 오오!” 하고 버벅이다가 말았다.

나는 무작정 논벌안으로 뛰여들었다. 저벅저벅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금방 벼가을 낫질을 한 벼그루에서 오곡 특유의 향이 풍겨온다. 벼파도 살랑이는 소리, 논두렁의 콩이삭 절그렁거리는 소리가 신선하다. 아아, 좋을시구! 웬지 모르게 또 뭉클한 감격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깔따구들이 호사를 만났다고 눈으로 귀로 달려들었지만 조금도 싫지 않았다. 사방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고 여기저기서 살찐 메뚜기들이 튀여오른다. 한때 푸른 초록으로 뒤덮였을 논두렁은 이미 바싹 마르고 오그라들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서 아직 푸른 생명을 지켜내고 있는 파아란 들풀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득 논드렁 어디선가에서 장화를 신고 삽을 둘러메고 물꼬를 보는 농부의 체취가 느껴진다. 살짝 농부의 삶이 그리워났다. 내가 정말 농기계에 기대지 않고 순수 내 육체의 에너지로 감당할 할 체력이 아직 남아있을가 하는 우려는 잠시 뒤로 하고, 조상님의 지고무상한 업적과 광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농부 인생 한토막 연출하고 싶다. 괭이로 찍고 삽으로 파고 호미로 두둑 만들어 씨를 뿌리고 기음을 매고 수확을 하고...

아, 그리고 밤이면 정든 님과 사랑방에서 새끼 꼬고...가마니 짜고...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아롱거린다.

9

  시인묵객들의 만남에서 빠질수 없는 건 술자리다. 초저녁부터 시작된 향토연찬회는 밤이 이슥하도록 이어졌고 고기와 술 그리고 거칠고 투박한 가무가 우리를 동반했다. 권커니 작커니 하는 권주타령과 술기운을 빌어 만들어지는 호언장담, 해어 롱담이 한밤의 시골동네를 떠들썩 달구었다.

그렇게 배속에 산해진미와 향기로운 술로 잔뜩 채워졌건만 기어코 또 만해 시인의 저택으로 가서 2차 술까지 치렀다. 2차라는 건 어느 술자리를 막론하고 기분을 끌어올리는 하나의 통과의례이다. 2차까지 했다고 해야 비로소 어디 가서도 자랑거리로 내세울 만한 제대로 된 술자리가 된다. 그건 시골에서도 례외가 될수 없었던 것 같다.

   너무 늦은 때인지라 조금 주저했지만 결국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차가 없었다면 큰 유감이 생길 번 했다.

시골 아줌마의 알뜰한 손맛이 담긴 배추 풋저리가 밥상 우에 올랐던 것이다. 텃밭에서 금방 수확한 순수 유기농 채소다. 그걸 보는 순간에 갑자기 기름진 음식으로 가득 차있던 배속에서 허기가 산악같이 올라왔다. 허겁지겁 집어먹었다. 일동이 술과 고기에 집착하는 틈을 노려 한사발을 거의 혼자서 다 입안에 욱여넣었다. 풋저리만 우물우물 이겨먹기도 했고 풋저리우에다 비게가 살짝 덮인 살코기 한점 얹어서 먹기도 했다. 식도를 타고 올라오는 향토풍미의 신선함에 비로소 오늘의 식도락까지 완벽해진 느낌이다.

그렇게 2차에서 또 한동안 혀꼬부라진 소리로 왁자지껄이며 맥주 수십병과 돼지 뒤다리갱이 하나 정도 도륙을 내고 일동은 마지못해 일어났다.

10

자리를 털고 문밖에 나섰는데 아하, 이건 또 무슨 형국인가! 문밖에 나서서 우리 일동은 다시 한번 한결같이 아아! 하고 감탄을 퍼부었다.

11

가슴 떨리게 하는 시골의 밤 고요와 정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혼뿌리에까지 전달되는 그 만뢰구적의 장엄한 무게에 짓눌리고 압도되는 순간이다!

한치앞을 가려볼 수 없는 짙푸른 먹빛의 농담이 내려앉았지만 추호도 어둠의 색갈을 느낄 수가 없었다. 숨 막힐 듯한 고요가 흘렀지만 거기에는 적막이 없었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없었다. 사람들의 마음과 령혼에 그윽한 고요와 안식만 부여하는 신령스러운 힘이 있을 뿐이다.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영영 헤여나오고 싶지 않았다. 그 먹빛의 농담속에 푹 잠겨있고 싶었다. 그러면 내 몸에 켜켜이 루루이 쌓인 탐욕과 위선, 교만과 건방, 추하고 어리석은 갈망들이 자연의 거역할 수 없는 무궁한 리치 앞에 숨을 죽일 것 같았다. 그러면 내 마음속 구석구석에 스모그처럼 남아서 배회하는 루추한 찌꺼기들이 깡그리 세탁이 될 것만 같았다.

향촌의 밤, 령혼까지 치고 들어오며 저릿저릿 녹아내리는 사상의 물줄기! 나는 그 자리에 아예 뿌리를 내리고서 추야장장 긴긴 밤을 함께 하고 싶었다. 푸른 밤하늘에서 깜빡이며 반짝이는 별들과 하나가 되여 끝없이 속삭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속삭임소리들을 몸과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저장해 두고 싶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