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련못의 향연
发布时间:22-11-21 09:45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련못의 향연

(봉성)장문철

2022년 8월 10일 료녕성조선족문학회로부터 8월 17일과 18일 1박 2일로 철령에서 료녕성조선족문학회 2022년 문필회 및 료녕성조선족문학회 2021년 문학상 시상식을 거행한다는 통지를 접했다. 5박6일로 갓 연변을 다녀온지라 갈지 말지 망설이는데 마침 60 여 성상을 철령에서 뼈를 굳혔다는 문학선배 례호형이 “가급적이문 오시구래. 그래야 얼굴 한번 보디요." 했다. 나는 대학동창 윤회장에게 전화하여 어쩔거냐고 물어보았다. 연변에서 심양으로 오는 렬차안에서 전화를 받았다. “나도 소식을 접하고 지금 갈가말가하는 중인데 별 일 없으면 함께 가지뭐!”하는 것이였다. 그래서 오케이를 했다.

17일 아침 내가 봉성에서 고속렬차를 타고 심양으로 오고 있는데 윤회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권회장께 허락을 얻었으니 차에서 내리거든 서탑으로 가지 말고 곧장 택시를 잡아타고 동북빌딩으로 오라는 것이였다. 나는 심양정거장을 빠져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동북빌딩으로 직행했다. 9시 10분에 도착하니 이미 윤회장과 전상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윤회장의 차에 올랐다.

동북빌딩은 윤회장이 사는 아파트에서 멀지 않으며 고속도로입구와도 가까웠다. 그래서 우리는 얼마 가지 않아 사람과 차량으로 북적이는 소란스런 도시속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질주할 수 있었다.

도로 량켠에 무연한 벌판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벌판엔 검푸른 옥수수와 누르스름한 벼들이 잘 자라고 있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전상무는 무슨 별천지를 보는 것처럼 연신 야~야~하며 감탄을 쏟아냈다. 농촌에서 잔뼈를 굳혔지만 오랜만에 낯익은 모습을 목격한단다. 일찍 고향을 떠나 대학을 나오고 줄곧 도시에서 바삐 보내다보니 멀어진 고향, 그러니 정다울 수밖에 없는, 고향길로 착각하는 모양이였다. 나는 봉성에서 자주 보았기에 별로였으나 이렇게 허허벌판을 직접 보기는 실지 말해서 쉬운 일은 아니였다.

차창밖으로 비치는 초가을의 벌판은 점차 익어가는 벼들로 황금색을 띄기 시작했다. 몇 떨기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있는 담청색 하늘과 황금벌판이 조화되여 한폭의 수채화를 그려놓았다. 농민들이 땀과 정성으로 가꾼 작물들은 한창 알찬 결실을 맺으며 풍년을 기약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철령시내에서도 꽤 멀었다. 윤회장은 네비게이션의 지시에 따라서 골목길을 요리조리 몰면서 용케도 직방 찾아갔다.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10시가 좀 넘어서였다. 버스를 타고 오는 분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지라 우리는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몽땅 련못이라 마치 련화도에 온 듯 했다. 나는 대번에 련못의 아름다운 경치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연변의 비암산에 올라 산 한 면이 전부 백일홍으로 도배된 것을 보며 입이 딱 벌어졌었는데 여기서 련화도를 마주하니 또 한번 입이 딱 벌어지며 감탄이 절로 났다. 말이 무딘 나로서는 무슨 말로 느낌을 표현할지 몰라 연신 야— 소리를 반복했다. 우산같이 넙적넙적한 련잎들이 기지개를 쭉쭉 펴며 고고하게 날씬한 몸매를 뽐냈고 그 가운데서 련의 결실인 련밥들이 잔뜩 키돋움을 하며 자기의 고귀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련못은 온통 푸른 색이여서 비취색 주단을 펼쳐놓은 듯 하였고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잔잔한 물결처럼 남실댔다.

련못하면 자연히 주자청의《하당월색》이 떠오른다. 주자청은 이 글의 마지막에 강남의 "채련"에 대해 말한다. 채련은 곧 련밥을 채집하는 것을 가리킨다. 나는 북경에서 공부할 때 해마다 자죽원에 가서 련꽃을 구경하였는데 련꽃이 지면 밋밋한 줄기끝에 달린 원추형 련밥송이가 바람에 한들거리였다. 하지만 련밥맛을 본 기억은 없다.

마침 그늘진 곳에서 련밥을 파는 것이 눈에 띄였다. 밋밋한 줄기에 달린 채로 갓 채집한 련밥송이도 있고 련밥송이를 쪼개여 발가놓은 알갱이도 있었으며 알갱이의 껍질을 벗겨놓아 그대로 먹으면 되는 것도 있었다. 나는 련밥 파는 한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이 것 한 송이에 얼마예요?”

”5원이예요.”

”어떻게 먹죠?”

”빠개고 알을 뽑아내서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돼요.”

마침 그 옆에 발가놓은 알이 있기에 “이것이 알입니까”하며 한 개를 집어서 껍질을 벗기려 하니 벗겨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미 껍질을 벗긴 것이어서 그냥 먹으면 되요" 하며 아주머니는 련밥먹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5원을 주고 한 송이를 사서 윤회장과 반씩 갈라 아주머니가 가르쳐준대로 실천에 옮겼다. 별로 맛있다는 감은 없었지만 먹을 것이 부족한 시기에 이곳 주민들에겐 아주 훌륭한 간식거리가 아니였을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그사이 버스를 타고 오는 회원들이 모두 도착했다. 마중가서 낯익은 회원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초면인 아릿다운 미향 회원이 환하게 웃으며 회원들에게 오상순교수의 평론집 《시대의 변화와 문학적 대응》을 나누어주었다.

인사가 끝나자 다 같이 미니 생태원을 돌아보면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작지만 아담하고 생기가 넘치는 것이 강남멋이 제법 풍겼다. 생태원을 참관하면서 김창영시인은 갑자기 시흥이 일어나 어느새 즉흥시 한 수를 지어 위챗방에다 올렸다.

철령 련못 생태원에서

무더위가 한창인 8월

동북에서 비교적 큰 도시 철령에 가면

꿈 속인듯 무연히 펼쳐진 련못에

련밥 따는 처녀들 웃음소리 넘쳐난다.

북방사람들 강남 그리는 마음 가긍히 여겨

옥황상제 내려준 하늘주전자

요술부려 밤낮으로 옥수 부어

생겨난 천상의 련못이라

은총이네 천하 민생이 복받는.

점심을 마친 후 오후 3시까지 자유활동시간이였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경치좋은 곳으로 찾아가 사진을 찍기도 하고 사면이 열린 시원한 정자에 쉬면서 회포를 나누기도 했다. 녀성회원들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맑은 하늘과 푸른 련못과 구름다리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배경도 화려하지만 인물도 나무랄데 없었다. 여기저기서 연신 찰칵찰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수필가 문운룡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미향회원의 사진에 디카시를 남겼다.

 

미향 

 

새파란 하늘과

청자빛갈의 련못과

청초함을 비기네

미와 향을 비기네

 

이어 수필가 서정순은 문운룡수필가에 화답하듯 이렇게 시를 달았다.

 

미향

 

옥색치마에 색동저고리

옷고름 얌전한데

해맑게 해맑게 웃고 있는

저 저 저 유혹

나도 맑은 하늘처럼 웃고 싶구나

 

말이 련못이지 아득히 펼쳐진 련밭은 련의 호수였다. 그속에서 일엽편주가 손님을 태우고 유유히 오가는 풍경은 완연한 강남이였다. 그런데 “진흙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고 맑은 물로 씻었으나 요염하지 않다"는 련꽃이 모습을 감춘 후여서 약간 아쉽기도 했다. 이에 대한 김창영시인의 안목은 남달랐다.

“저는 지금이 젤 좋은 때라 보는데요.”하며 반죽좋게 싱글벙글했다.

그렇다. 오늘이 젤 좋은 날이다. 암, 그래야지요. 푸른 주단을 펼쳐놓은 듯한 련잎의 호수가 산들바람에 물결치듯 일렁이는 대자연의 조화만으로도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기에 족했다. 나비와 잠자리들이 련잎과 련밥 사이를 오가며 자기네들만의 세계에서 즐겁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련은 사람들에게 미적 향수를 선사할 뿐만아니라 사람들에게 가져다주는 경제적 효익도 만만치 않다. 련밥, 련잎, 련뿌리 모두가 보배다. 련못가에 비닐로 바자를 쳐놓은 것이 보였다. 례호형은 련못에 게를 기르는데 게가 밖으로 새여나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친 것이라고 했다. 련숙해비였다.

높고 맑은 하늘에서 솜뭉치같은 흰구름이 둥둥 떠있어 기분도 둥둥 떴고 초가을 한낮의 해볕이 따가웠으나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 온몸이 후련했다. 이때 어디선가 느닷없이 구성진 조선노래가 귀맛좋게 들려왔다.“중조부녀우의저수지간사관”에서 울려펴지는 노래가락이였다.

1952년부터 우리 나라 정부에서 조선전쟁에서 부모를 잃은 고아 2만 여명을 접수하여 동북 삼성 47곳에 나누어 안치하고 생활하고 학습하게 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철령의 조선초등학원이다. 1958년 4월에 귀국을 앞둔 520명의 조선녀학생과 30 여명 교원들이 본지의 건설을 돕고 철령현 정부의 은혜에 조금이나 보답하고저 철령현기관과 기업의 2000여명 부녀들과 힘을 모아 중조우의부녀저수지를 건설했다. 간사관에는 조선학생들이 료서성인민정부에 헌사한 페넌트가 걸려있었는데 중조 량국의 글로 “우리들은 중국인민의 친절한 양육에 춤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씌여있었다. 간사관 마당에는 이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었으며 비면엔 한자로《중조부녀우의저수지》라고 적혀있었다.

간사관을 참관하고 나니 오후 3시가 거의 됐다. 나는 윤회장과 함께 회의장으로 돌아왔다. 회의장에는 문학후배들이 선배님에게서 열심히 조언을 구하고 있는 장면과 여러 선배님들이 둘러앉아 문학토론에 열을 띄우고 있는 장면이 연출돼 문학회분위기가 자못 짙었다.

드디어 료녕성조선족문학회2021년 시상식이 시작되였다. 먼저 료녕성조선족문학회 권춘철회장의 인사말과 지난 한해 문학회의 사업총화가 있었다. 이어 국가급 판소리전승인 김례호회원의 판소리 공연과 철령시 조선족문화예술관, 료녕성 조선족문학회예술단의 정채로운 공연이 있어 행사의 분위기는 더 한층 고조되었다.

이번 시상식에서 모두 12명 회원이 응모에 입선되어 수상의 영예를 받아안았다. 나도 우연히 이 반렬에 있었다. 실은 수상을 하고 안 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참여가 아닌가 한다.

나는 이번 걸음에서 알찬 결실을 한아름 안고 돌아왔다. 문우들도 만나고 문학공부도 하였으며 수상도 하고 아름다운 련못의 경치도 흔상하였으며 중조인민의 우의를 보여주는 중조부녀우의저수지의 력사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