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수필 두견화는 생소한 꽃이 아니였다
发布时间:22-06-24 08:32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기행수필

두견화는 생소한 꽃이 아니였다

(안산) 김성철

삼월의 끝자락을 타고 찾은 곳, 그곳은 운남이였다.

 “꽃구름 남녘땅(彩云之南)”이라는 상서로운 이름을 가진 운남은 구경거리가 넘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익히 알려진 샹그릴라와 려강(丽江)의 옛성, 대리(大理)의 이해(洱海), 시솽반나 같은 쟁쟁한 명소외에도, 어디에 내놓아도 한치 모자람이 없을 관광지가 부지기수이다.

엄청난 해발의 차로 생겨난 다양한 지형과 기후대, 그리고 여러 민족이 어울려 살면서 스스로 지켜온 다양한 풍속이 운남의 볼거리를 풍성하게 해주고 있다. 고원과 분지, 설산과 평야를 아울러 품고 사계절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이 곳은 명실공히 “려행의 천당”이다.

이런저런 명소를 다 제쳐놓고 우리 일행은 이 계절에 마침한 두견화 꽃구경을 위해 곤명 주변의 교자산(轿子山)을 찾아떠났다.

뻐스로 한시간 가량 달렸을 무렵, 경유지인 아자영(阿子营)습지공원에 이른다. 이곳은 곤명의 식수를 담당하는 수원지이다. 초라하고 오염이 심했던 여기 시골은 하천과 늪을 정비하고 친환경시설도 갖추고 대대적인 식목을 단행하면서 아름답고 쾌적한 습지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크고 작은 늪 사이의 오솔길을 걷다보면 길섶에서 연두색으로 봄 단장을 한 수양버들과 하얀꽃을 겅중 치켜든 토끼풀을 만날 수 있다. 늪의 가장자리는 갈숲으로 빼곡히 채워졌고 바늘잎 수초가 투명한 수면 우에 느긋하게 누워있다. 정자(亭子)나 루각도 없고 화려한 꽃밭도 안 보이는 이 곳은, 그러나 자연 그대로의 초목과 그 것들을 자양(滋养)하고 있는 울창한 산과 깨끗한 물이 있다. 아자영의 신록은 상큼하고 청정했다.

점심 예약이 되여있는 근처 동네에 들어서자 드문드문 붉은 흙과 빨간 벽돌로 쌓아올린 담벽에 청기와를 떠인, 북방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전통가옥이 오래동안 수선(修缮)의 손길이 닿지않은 듯, 초라함으로 다가온다. 청기와로 비가림을 하고 있는 목조대문은 토담으로 이어졌고 집과 집 사이의 공터는 무더기로 피여난 유채화와 자주개자리꽃, 그리고 싱싱한 잠두로 채워졌다. 이러한 재래식 가옥의 쇠락과 더불어 면면히 이어져오던 전통은 하나하나 무너져내리고 획일한 건축양식으로 바뀌여 가는 현실이 아타깝기만 하다. 옛 건물을 허물어버리기 전에 거기에 오롯이 담긴 력사와 전통의 소중함을 한 번쯤 짚어보는 건 어떨가 싶다.

정성을 담은 소박한 밥상이 오래된 시골식당에 차려졌다. 일행은 일여덟 명씩 식탁에 둘러앉아 메인인 양고기 탕과 토종닭 백숙, 게다가 선지 두부찌개, 간 볶음, 잠두 무침, 매운 맛 감자튀김까지 제법 다양하고 특별한 시골음식을 맛 볼수 있었다. 넉넉한 시골밥상을 물리고 우리는 다시 뻐스에 올라 두견화 탐방길을 이어갔다.

교자산으로 가는 내내 평탄치 않은 산간도로를 달렸다. 육중한 뻐스는 드릉드릉 오지의 정적을 가르며 고도를 높혀간다. 산과 산사이의 낮은 평지에는 갓 모내기를 한 듯한 논배미로 이어졌고 산세따라 한 층 한 층  잘 정비된 다락밭에는 노릇노릇 익어가는 겨울밀과 푸릇푸릇 생기 가득한 잠두, 그리고 자주꽃 만발한 개자리가 주역이였다. 푸른 숲 사이로 아직 작물이 심기지 않은 남방지역 특유의 붉은색 뙈기밭이 띄엄띄엄 상감되여 유난히 시선을 끌고 있다. 산이 높아질수록 푸른 숲으로 뒤덮혔던 산등성이가 조금씩 암릉으로 바뀌여갔다.

아자영에서 교자산 산문까지는 두어 시간으로 충분했다.

산문 좌측의 암벽에는 한어와 이문(彝文)으로 교자산이란 커다란 글이 박혀있고 그 아래는 이족(彝族)의 전통명절이나 경조사에서 빠질수 없는 악기—장호(长号)가 하늘을 우러러 하나같이 고개를 잔뜩 쳐들고 있다.

이족의 전통 건축양식을 본떠 세운 으리으리한 돌기둥모양의 산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방경(四方景) 서비스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해발 3147메터였다.

온 몸을 스치는 산들바람에는 봄날의 부드러움과 고원의 썰렁함이 적당히 섞여있고 산림의 촉촉함도 스며들어 있었다.

사방경 주변은 두견화 개화철이 한창이라 해발이 높은 편인 산중턱의 언덕서부터 마영화(马缨花) 군락이 무더기로 꽃을 피우고 있다. 삼사 메터정도 키가 껑충한 마영화 나무가지마다, 버들잎처럼 걀쭉한데 그 보다 훨씬 두툽한 잎새로 빽빽히 채워졌고 나무가지 끝머리엔 큼지막한 진홍빛 꽃떨기가 등롱처럼 걸렸있다. 그 꽃떨기는 십여개 종모양꽃부리(钟状花冠)가 둥그스름하게 무리짓고 있어 각별히 눈부시게 다가온다. 몇 가닥의 가느다란 꽃술 끝에 달린 거뭇한 꽃밥은 깊숙한 꽃부리 밑둥서부터 바깥 쪽으로 고개를 쑤욱 내밀어 매개충을 유인하고 있다.

고산의 갖은 풍상을 이겨낸 흔적이 력력한, 굵직한 나무줄기에서 가지가 뻗고, 그 가지 끝머리마다 검붉은 꽃을 피우고, 그 꽃들이 나무를 벌겋게 뒤덮어버린다. 빨갛게 단장한 수많은 꽃나무들이 무리지어 고원의 꽃바다로 일렁인다.

동일한 높이의 산자락에 마영화 꽃보다 자잘하고 촘촘한 핑크빛 두견화가 나름대로 군락을 지어 마영화 사이사이에서 이른 봄의 고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이러한 고산두견은 해발이 높고 기후가 서늘한 운귀고원이 주 서식지라고 한다.

해발이 높아지면서 개화기가 조금씩 늦어지는 두견화는 고산지역의 렬악한 환경에 적응하느라 표고가 높아질수록 나무의 키도 피우는 꽃도 점점 작아진다. 산중턱서부터 개화를 시작한 두견화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시나브로 고도를 높혀가며 개화를 이어갈 것이다.

노오란 유채화가 지천에 깔린 무원(婺源)도, 향기 가득한 장미밭으로 유명한 영등(永登)도, 여름철 야생화 꽃바다가 펼쳐지는 장백산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충분했지만 여기 두견화만큼 모든 에너지를 끌어올려 정열로 불태우고 생소한 것 같으면서도 친근한 꽃은 없었던 것 같다.

사방경에서 환승한 친환경 셔틀뻐스는 급커브로 이어지는 에움길을 타고 힘겹게 언덕을 톺는다. 이리저리 굽이를 돌 때마다 차창너머로는 거듭 새로운 화면으로 바뀐다. 힌 구름 몇점 떠있는 투명한 하늘, 침엽수와 꽃나무로 어우러진 울창한 숲, 그리고 산아래쪽에 봄의 생기를 되찾은 다락밭이 번갈아 나타나면서 무엇부터 봐야 할지 몰라 시선을 자꾸 가다듬게 한다.

하평자(下坪子)에 내리니 3533메터 해발표지판 너머로 우리가 하루밤 묵을 숙소가 엿보인다. 화계초로(花溪草庐)라는 로맨틱한 이름을 가진 목조별장 양식의 산장이다. 산장 바로 뒤로는 웅위하고 험준한 교자산 주봉이 우뚝솟아 있다. 교자산이란 이름은 봉우리의 모양새가 가마와 흡사하다고 해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고즈넉한 산과 잘 어울리는 산장이였다.

원목판재로 지은 정갈하고 검박한 하우스에 행장을 풀고 잠깐 침대에 몸을 붙혔는데 갑자기 어지럼증이 나고 금세 경미한 두통으로 이어진다. 고산증세였다.

다행이도 시간이 좀 흐르자 증세가 많이 누그러져 숙소 주변의 산책로를 찾았다. 대나무숲을 스치는 바람소리와 바위 사이로 내처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나무데크 조망대까지 닿는다. 골이 깊어 유난히 웅대해 보이는 뭇산들이 겹겹이 줄을 지어 섰고 바로 눈앞의 검푸른 산과 푸른색이 점점 희미해지는 그 뒤쪽의 산들이 류려한 능선으로 잔잔히 넘실댄다. 저녁나절이 되자 깊은 골짝에서부터 차오르는 옅은 안개구름이 산비탈의 묵은 나무와 들꽃들을 서서히 휘감는다. 개화 전성기를 맞은 두견화는 고원의 해살을 한몸에 받고 촉촉한 산안개를 흠씬 마시며 강인하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해질무렵, 저 멀리 하늘가에 락조가 지면서 석양은 구름사이로 부드러운 해살을 쏟아낸다. 고원의 느긋함을 닮아서일가 지는 해도 구름속에서 숨박꼭질하면서 느릿하고 여유로웠다. 시원하고 촉촉한 물기가 얼굴을 스쳐간다.

석식시간에 맞추어 산장에 들어서자 벌써 식당 문틈 사이로 장향저(藏香猪)를 조리하는 고기향이 은은하게 풍겨나온다. 장향저는 저지방성 방목형 토종돼지인데 서남고원이 원산지이다. 우리를 위해 특별히 샹그리라에서 준비해 온 것이라고 한다.

식당문을 열고 발을 딛는 순간, 선반에 간잔지런하게 줄지은 큰 약주병들이 주저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송이술과 송로주, 모과주, 마카주, 거기다 양매주, 장미주까지 평소에 보기 드문 귀한 술들이였다.

조금 거친 느낌의 외모에 마음씨 따뜻한 장족 사내가 돌아가며 술잔을 채웠고 순박하고 소탈한 젊은 녀성 두 명이 반찬도 나르고 차도 따르면서 분주하게 돌아친다.

인적도 드문 오지에서 특별한 저녁상이 푸짐하게 차려졌다. 약주잔이 두어 순배 돌아가자 장족 사내의 호방한 노래와 시골 녀성의 구수한 권주가가 이어지고 여럿이 줄을 지어 장족 사내한테 배운 춤에 빠져보기도 한다. 고원증세 따위는 도망간지 오래다.

그렇게 술에 취하고 노래에 취하고 봄에 취하다보니 썰렁한 고산의 밤은 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숙소밖에서 청량하게 들려오는 시내물소리에 눈을 뜨고보니 다음날 이른 아침이였다. 산정에서 쉬임 없이 내리 쏟는 수십 개의 크고 작은 폭포가 갈래갈래 시내물 줄기를 타고 흐르고 흐른다.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자 자그만한 폭포를 만날 수 있었고 빨갛고 푸른 이끼로 덮힌 바위 사이로 시내물이 콸콸콸 흐르고 있었다. 내가의 산책로는 침엽림과 바위를 거쳐 저 멀리 산정까지 어어졌고 머지않은 곳에는 고지로 통하는 케이블카가 흐릿하게 다가온다. 촬영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청신한 아침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산꼭대기의 고산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폭포가 되여 낮은 곳으로 시원하게 쏟아져내리고 그 물은 또 시내물 줄기를 타고 더 낮은 데로 흘러 계곡 따라 강에 합류하고 마침내 낮은 바다의 품으로 들어갈 것이다.

두견화는 그러나 정반대이다. 계절따라 낮은 데서 부터 먼저 꽃을 피우고 다음은 좀 더 높은 데서 개화하면서 산자락타고 릴레이하듯 바통을 이어가며 높이높이 톺는다.

아침을 먹고 어슬렁거리다나니 산장을 떠날 시간이 되였다. 이색적인 생경함이 좋아서, 고원의 봄이 훈훈해서, 산자락에서 노을처럼 불타고 있는 두견화가 매혹적이여서 자리를 뜨기가 못내 아쉽다.

몸을 맡긴 하산 뻐스 차창으로 두견화가 언듯언듯 스친다. 멀어지는 고산두견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두견화, 언제나 처절한 리별의 애환과 고향을 그리는 향수를 뇌리에 떠올리게 하는 두견화가 아니였던가.

춘삼월을 맞는 선성(宣城)에서 두견화를 바라보면서 향수에 못 이겨 애간장을 저몄던 시선 리백이 있었고 리별의 애잔함을 진달래 꽃에 가득 담아 사랑과 한을 토로했던 시인 김소월도 있었다. 두견화는 그 토록 향토적인 포근함과 서글픈 애환으로 그득하다.

이 즈음에서 리백의 <선성에서 두견화를 보다(宣城见杜鹃花)>를 다시 음미해본다.

촉나라에서 소쩍새 울음소리 들은지도 옛날 / 선성에서 오늘 다시 두견화 보는구려 / 울음소리 마디마디 애간장 저미고 / 삼춘 삼월에는 삼파가 그립구나

(蜀国曾闻子规鸟,宣城还见杜鹃花。一叫一回肠一断,三春三月忆三巴。)

달포 쯤 지나고 나면 내 고향에도 의레 새봄이 찾아올것이고 떨기떨기 진달래가 필것이다. 연분홍 향수의 꽃 한아름 안고 고향의 오솔길을 달리고 싶어진다. 고향의 봄에 고향의 내음에 푸욱 취해보고 싶다.

향수는 어떻게 보면 단순히 고향에 대한 추억이나 그리움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초월한 내심세계의 회귀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아마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롭고 지치고 방황할 때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자유롭고 포근한 영혼의 고향이 필요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알고보면 고향의 진달래를 닮은 이 곳 교자산의 두견화는 결코 생소한 꽃이 아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