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눈물 많은 사내
发布时间:22-06-10 09:59  发布人:金昌永    关键词:   

수필

눈물 많은 사내

(광주)현춘산

"사내의 눈물은 천금"이라고?

저 주나라 말년에 어리석고 포악한 주유왕이 포사라는 여우같은 계집의 웃는 자태를 보기 위해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길 경우에만 쓰는 봉화를 올렸는데 과연 계집을 웃기는데 성공했다. 왕은 너무도 기뻐 이 계책을 내놓은 대신에게 천금을 상으로 내렸다. 그래서 "일소천금"이란 전고가 생긴건 알겠는데 그것도 녀자에 한한 이야기이고, 남자가 웃음도 아닌 눈물로 천금을 산다는 말은 누가 지어낸 말인지 모르겠다.

"남자는 피를 흘리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이지 아무때나 그렇다는건 아니잖은가. 부모상을 당해도 눈물을 흘리지 말라는 법이 없고 그건 상식이 아니잖은가.

나는 그러니까 남자의 이 두가지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살아왔다. "천금"같이 귀중한 눈물을 가치없게 흘린 셈이고 "피를 흘릴지언정" 흘리지 말아야 할 사내의 눈물을 자주 흘리며 살아온 것이다.

그런 상식대로 보면 나는 남자가 아니거나 뭐가 부족한 남자이다. 그래서인지 남들은 마음이 모질지 못한 사내라고 얕보기도 한다. "무독불장부"라고 하지 않는가고 한다. 대장부는 독해야 한단다.

1972년 겨울 현성에 청년들을 데리고 나가 조선영화 "꽃파는 처녀"를 보았는데 자꾸 울어서 눈언저리가 시뻘개진  나를 보고 친구들이 남자가 아니라고 놀려댔다. 녀자애들은 다 울었지만 남자들중에선 유독 내만 눈이 붓도록 울었기에 놀림을 받을만도 했다. 영화가 아니라 감동적인 소설을 보면서도 나는 자주 눈물을 흘린다.

"당신 남자가 옳아요?'

텔레비 시청을 하면서도 감동적이거나 슬픈 장면이 나오면 꼭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는 나를 두고 안해마저 아니꼬와 한다.

웃기지 마!

내가 남자가 옳기에 당신하고 살잖아?

"그래 녀자로서도 그런 장면을 보고 울지 않는 당신은 랭혈이야?"

그렇게 내쏘려다가 저녁밥도 못 얻어먹을가봐 겨우 참았다.

그런데 그보다도 드라마시청을 류달리 즐기는 안해에게서 축객령을 받을 때도 있다.

"당신 서재에 가서 조용히 글이나 써요. 남도 기분잡쳐 못보게  훌쩍거리면서."

이럴 때면 썩은 새끼줄로라도 목을 매달고 싶다. 뭐 "남"도 못보게 해? 그래 당신이 내게 "남"이야?

뿌옇게 쫓겨나 서재에 들어간 나는 간이침대에 아무렇게나 놓인 "레.미제라블"이나 "안나.까레니나"를 집어들고 벌렁 드러눕는다. 누님이 남기고 간 아홉 조카를 위해 빵하나 훔친 대가로 오랜 세월 무수한 곡경을 치른 쟝 바르쟝이나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 안나.까레니나의 최후를 읽으면서 나는 또 눈물을 흘린다. 내가 쟝.바르쟝을 만나보기나 했나, 안나.까레니나와 련애라도 했나. 그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게 이러는지 스스로도 모른다. 이런것이 문학예술의 감화력일가.

고향마을에서 살 때는 이웃집 딸들이 시집갈 때면 그집 어른들을 따라 눈물을 흘리였고 동네 초상집에 가서도 슬픔을 터뜨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집 상주인가 착각할 지경이였다.

한번 안해가 김소월의 "접동새"를 읊어달라고 했다. 나는 절반도 읊어내지 못하고 말았다. 눈물이 자꾸 흘러내려 읊어낼수가 없었다. 나중엔 울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날마다 이렇게 밤이 깊으면/이산 저산 옮아가며 슬피 웁니다"

나는 장편소설 "호란강반의 비가"를 정말 눈물로 써냈다. 주인공들의 불행을 두고 너무 슬퍼서 필을 놓기도 했다. 그때는 육필원고였다. 원고지우에 눈물이 자주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런데 이상하지? 내가 거의 십년을 두고 무릎에 올려놓고 키운 귀여운 외손녀를 한국에 나간 제 어미에게 딸려보내고 나서는 왜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가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종래로 자기 일신의 아픔이나 불행을 두고 눈물을 흘린 적이 별로 없다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다. 말하자면 나는 내 몸이 아파서 운적은 없고 가난에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이런 경우에 자식의 몸으로서, 부형의 몸으로서, 남편의 몸으로서 나약성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무형의 의무감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결코 눈물을 자제할 능력조차 없는 남자가 아니였다.

보라, 십년가까이 무릎에서 키우던 외손녀를 자주 오가지도 못할 이국 땅에 보내고도 눈물을 속으로만 삼키지 않았는가. 안해는 밤낮으로 울었다. 나는 안해를 안정시키고 위안하기 위하여 눈물을 억제해야 했다. 이럴 때의 나는 의무감이 강한 남자였다. 내가 중병에 걸렸을 때 자녀들이 울고 있었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웃음기를 보이였다.

그런데 이런 의무감에서 자유로와 질 때면 문제가 다르다. 신문에서 재해구의 참상을 읽어도 눈물을 참지 못하고 음료수가 기름보다 귀한 사막지대의 아이들을 생각해도 동정의 눈물이다. 내가 대체 뭔데? 내가 대체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데?

물론 나 혼자로서는 아무 일도 할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 무수한 "내"가, 남의 불행을 보고 동정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무수한 사나이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인간사회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흘린 눈물은 순전히 남을 위해 흘렸다는 말이 된다.

바보같은 남자, 바보같이 늙은 남자가 지금은 더욱 눈물이 헤퍼진다. 60년전의 개구쟁이 동갑친구들 몇이 돌아갔다. 50년전의 중학교동창들 몇이 죽었다. 문단의 거목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그이들이 가고 글만 남았다.

"흐르는 시내물을 찬히 보아라

천리 만리 먼먼 길도 자신 만만타

흐르고 흐르고 내처 흘러서 

한평생 말쑥하게 가는 나그네

고 김성휘시인의 시를 다시 읽으며 나는 또 눈물을 흘린다. 나도 저 흐르는 시내물처럼 한생을 끝까지 깨끗하게 살 수 있을가. 내 회한의 눈물로 자꾸 지난날의 오점을 씻으며 말이다. 내 사내의 눈물을 폭포마냥 쏟아 이 세상의 오염을 씻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