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풍채ㅣ'료양시화원식마을' 신광촌의 리더
发布时间:21-09-10 01:59  发布人:金卓    关键词:   

 

[김연혜 기자] 농촌 기계화 생산이 화두였던 2000년대 후반, 과감한 개혁으로 락후한 조선족촌에 발전과 희망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 있다. 바로 등탑시 대하남진 신광촌 촌서기 겸 촌주임 김철남(1968년생)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 이를 좌우명으로 그는 다년간 광부로 일하며 강인한 의지를 련마했고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다부져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5년, 등탑시 대하남진 신광촌 촌민위원회 선거에서 촌민들은 김철남을 주임으로 선거했다. 그의 강인하면서도 선한 이미지가 촌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촌주임으로 발탁된 지 1년여만인 2006년에 김철남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료녕성 중부에 위치한 신광촌은 과거 경제상황이 매우 락후했다. 하루 빨리 촌을 빈곤에서 해탈시키는 것이 김철남의 어깨에 떨어진 무거운 짐이였다.

 

수없는 불면의 나날을 보내던 그는 기계화를 도입해볼 생각이 굴뚝같아 등탑시농업기계관리국을 찾아갔다. 그렇게 2008년 6월, '등탑시대하남진신광농기전문합작사'가 정식으로 설립됐고, 김철남은 리사장이 되여 합작사의 모든 일들을 밀고 나갔다. 하지만 경험부족에 락후한 설비 등 수두룩한 문제들이 대두되였다. 젊고 패기있다고 김철남을 선택한 촌민들도 합작사가 난관에 부딪치자 기대감이 실망으로 바뀌면서 의심과 불만이 커졌다. 온갖 압력을 홀몸으로 견뎌내야 했지만 김철남은 포기를 몰랐다. 기존 경험을 밑거름으로 삼고 끊임없이 실천하며 재배방식을 개진했다. 전 과정 기계화 생산으로 고품질 농경지를 조성하는 데 착안점을 두고 대안을 모색했다.

 

김철남의 리드하에 합작사는 드디어 2015년 땅을 갈고, 고르고, 모내기를 하고, 수확을 하고, 말리고 저장하고, 재벌가공까지 전 과정의 완정한 농업산업체인을 형성했다.

 

 

또한 신광촌의 쌀 브랜드 '신광'을 육성하여 촌의 발전과 경쟁력을 부단히 높이였는바 현재 촌경제 고정자산은 800여만원에 달한다.

 

2015년 한해동안 김철남은 선진 설비와 기술을 인입하기 위해 무려 8차례나 한국을 드나들었다. 2016년부터 한국의 선진 기계설비를 투입해 모내기과정에서 물절약, 에너지절약, 해충방지 등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여 합작사 발전을 힘있게 추진했다. 합작사는 심양농업대학 공정학원의 학습실천기지로, 쿠보타농업기계회사(农机久保田公司)의 신기술실험기지로 선정되며 영향력을 과시했다.

 

 

합작사는 정부, 사회의 긍정과 지지하에 '료양시시급시범사', '료녕성성급시범사', '전국농기시범사' 등 영예도 획득했다.

 

또한 민족음식점을 유치하여 조선족촌으로서 우리 민족 특색을 돌출시켜 '료양시화원식마을(辽阳市花园式村庄)'이라는 타이틀도 따냈다.

 

김철남 개인도 선후하여 등탑시우수공산당원, 료양시로력모범, 자선사업선진개인, 등탑시우수소수민족간부, 료양시민족단결진보모범개인, 료녕성사상정치사업선진개인 등 영예를 안았다.

 

 

한편 김철남은 료양시조선족학교와 협업하여 '농업교정진입' 활동을 몇차례 벌이며 현장체험과 더불어 농업 관련지식을 보급하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합작사의 관리, 판매, 온라인 플랫폼 구축에 젊은 인재들이 수요된다고 했다.

 

"촌서기로 되고 당에 가입한 것이 제 사업의 가장 큰 동력이자 응원이였습니다. 당원본색으로 촌민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한몫 할 수 있다는 것에 더없는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낍니다." 당령 15년 김철남 서기가 전하는 진솔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