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심지역 조선족 혁명인물(17)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경위려 참모장 최윤구
发布时间:21-08-27 02:33  发布人:崔秀香    关键词:   

최윤구(崔允龟, 1903.8-1938.12)는 조선 평안북도 초산군 선천면에서 태여났고 원명은 최승팔이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그는 아버지 최순경과 함께 큰아버지 최선경의 집에서 생활했다. 최윤구는 17세 때부터 의병과 독립군 활동에 참가했다. 그러다가 일제의 통치와 등살에 더는 살길이 없게 되자 1923년 관전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 당시 흥경 립취(砬嘴)라는 촌에 정착했다. 20세기 20년대초부터 항일단체 통의부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했다. 1933년 1월, 량세봉이 왕청문에서 조선혁명당과 국민부, 조선혁명군의 주요 지도부회의를 열고 조선혁명군 명칭을 회복하고 대오를 개편할 때 최윤구는 제2방면군 사령관이 됐다.

1934년 5월, 최윤구는 자위군과의 련합작전으로 통화에 있는 위보갑의 자위단, 파출소를 습격하여 총기와 권총 50자루를 로획했다. 또 왕봉각부대와 련합하여 통화현의 일본수비대와 격전을 벌여 적군으로 하여금 80여명의 사상자를 내게 했다. 1934년 9월 조선혁명군 총사령 량세봉이 희생된 후, 최윤구를 비롯한 조선혁명군은 량세봉의 유지를 계승하여 항일무장투쟁을 계속 견지했다. 1935년 9월 20일 조선혁명군 제1방면군 사령 한검추, 제2방면군 사령 최윤구 등은 왕봉각부대와 회의를 소집하고 ‘중한항일동맹회’를 결성, 동맹선언을 발표했다. 1938년 10월, 조선혁명군 부사령관 박대호와 함께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총지휘 양정우를 만나 련합 항일할 것을 서명하고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소속으로 설립된 한인독립사 사장, 동북항일련군 제1군 교도려 참모장으로 활약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는 양정우와 함께 항일 최전선에서 적들과 용감히 싸웠다.
1938년 12월 27일, 양정우 사령이 인솔하는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경위려와 소년철혈대가 화전현 소류수하자에서 야밤에 위정안군을 섬멸하는 전투를 벌였는데 최윤구는 그 전투에서 적의 총탄에 맞아 장렬하게 희생됐다. 그 때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중공료녕성위 당사연구실은 "최윤구는 18년 동안 항전을 견지해온 위대한 애국자이며 불굴의 항일지사이다. 그의 일생은 위대한 일생, 영광스러운 일생, 전투의 일생이다"라고 평가했다.
1990년 5월 1일 길림성 화전시는 '동북항일련군소류수하자전적지' 기념비를 세웠고 료녕성동북항일련군사및항일전쟁사연구회 산하 료동항일영렬연구실은 2016년 8월 23일 료녕성 신빈현 백기촌 야산에 최윤구장군기념비를 세웠다.제공: 료동항전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