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명해(李明海, 1900-1935)는 항일전쟁시기 남만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견지한 우수한 공산당원이고 걸출한 군사지휘원이다.
리명해는 1900년에 조선 충청도에서 태여났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완전히 강점하여 식민통치를 실시하자 그의 부모는 망국노의 설음을 안고 리명해를 데리고 산설고 물설은 길림성 반석현으로 이주해왔다. 리명해는 혁명투쟁에 적극 참가했으며 많은 공산당원들과 접촉하는 가운데서 그들의 영향을 받아 점차 공산주의자로 되였고 1932년 봄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그 해 그는 반석항일유격대에 참가했다. 당시 금방 조직된 유격대는 무기가 부족했으며 특히 탄알이 모자랐다. 리명해는 낡은 장총 한자루를 가지고 있었으나 탄알이 없었으므로 적들의 손에서 탄알을 뺏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리하여 리명해는 유격대원이 된 지 얼마 안되여 지혜롭고 용감하게 맨주먹으로 한간지주의 권총 2자루, 장총 3자루를 탈취해 명성을 크게 떨쳤다. 어느 하루, 리명해는 상급 당조직으로부터 유격대 내부의 변절자를 처단하라는 임무를 맡았다. 리명해는 변절자가 일제한테서 받은 포상금으로 산성진에서 정미소를 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후 청원중심현위와 련락을 취하여 반석을 떠나 정미소에 변장하여 들어가 변절자를 처단했다.
1932년 12월 반석유격대가 남만유격대로 개편된 후 리명해는 교도대 대장으로 임명됐고 1933년 9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독립사가 건립되자 제3퇀 제8련 련장을 맡았다. 그 해 11월 동북인민혁명군 제1사가 건립되고 리명해는 제5퇀 퇀장으로 임명됐다. 리명해는 양정우, 리홍광, 리동광 등의 지도하에 부대를 거느리고 청원, 흥경, 류하 접경지대에서 100여차의 크고 작은 전투를 벌였다. 1934년 겨울 리명해는 제5퇀을 인솔하여 통화 소황구(小荒沟)전역에서 매복습격을 진행하여 적 10여명을 사살했다. 그는 또 청원현의 남산성, 대소하, 대고자, 흥륭대 등지에 들어가 치렬한 전투를 벌였다. 리명해는 어느 곳에 가든지 짬만 있으면 당지 농민들의 농사일도 도와주고 물도 길어주고 땔나무도 해주었으며 군중들에게 중국공산당의 항일구국주장을 선전했다. 그가 거느린 제5퇀은 기률이 엄격하고 군중사업을 실속있게 진행하여 군중들의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