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혜 기자] "처음으로 담임을 맡았는데 북경대학에 2명, 반 이상 학생들이 본과대학에 붙었어요. 젊은 교사인데 너무 대단하죠?" 오장환 교장의 칭찬에 리매향 교사는 "학생들 스스로 열심히 했기 때문이에요. 교사는 보조작용을 해줄 뿐이에요"라며 오히려 학생들에게 공을 돌렸다.
대기업 오퍼, 일본 류학, 공무원시험 등 갈림길에 서있었던 리매향 교사(1988년생)는 교육지원을 나가는 대학교 선배들의 모습에 반해 최종 교사직업을 택했다. 그렇게 철령시조선족고급중학교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10년차, 지금은 학교의 젊은 교사들중 주력으로 립지를 굳혔다.
교학 초기, 그는 20대의 패기와 열정을 안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냈다. 학생들의 상황에 맞게 수업준비를 했고 로교사들에게 허심하게 배우면서 교학방법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초중의 일어과목까지 맡게 되여 수업준비는 배로 늘어났다. 하지만 초중 고중을 막론하고 일어과목에 흥취를 가져야 성적이 오를 수 있다는 점은 같다는 그는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리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강의를 했고 더 정확하게 뜻을 전달할 수 있도록 조선어, 한어를 번갈아 사용했다. 또한 성적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든 학생들을 차별없이 대했다. 어느 반급을 가르치던 특장생도 후진생도 똑같이 가르치고 격려하며 성적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스스로 채찍질하며 지내왔던 그는 2013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되였다. 신혼려행으로 들떠있었던 그 때, 학교측으로부터 고중 1학년의 담임을 맡아달라는 련락을 받게 되였다. 신혼려행을 다녀오면 중도에서 아이들의 담임을 맡게 되였다. 학생들이 새로운 담임교사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다 보면 학생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고 등등 수많은 걱정이 앞섰다. '과연 내가 이 아이들을 잘 케어(照顾)할 수 있을가?' 하는 불안함이 컸지만 그는 결혼 이튿날, 마음을 다잡고 신혼려행을 취소한 채 군사훈련을 시작한 아이들을 찾아갔다.
"하기로 결정했으면 잘 해내야죠!" 한번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끝장을 보는 성격이였기에 담임을 맡은 후로는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반급관리와 교학에 모든 시간과 정력을 쏟았다. 그의 모습에 동료와 학생들은 '워커홀릭(工作狂)'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주기도 했다.
대학교로 향하는 중요한 시기의 담임을 맡게 된 그는 무엇보다 성적을 가장 우선시했다. 하지만 강한 책임감으로 학생들에게 너무 엄격하기만 했던 탓에 이들의 마음을 잘 돌보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조학금을 받은, 하지만 공부에는 뒤전이던 한 아이를 기억했다. 공부가 아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처음에는 타일러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마음을 다잡지 못하자 그는 "조학금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기 위함"이라고 말하며 지금은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니 취소할 것이라고 알렸다. 이후 우연한 기회에 초중담임을 통해 그의 온전하지 못한 가정상황을 료해하게 되였고 고3 크리스마스날, 학생의 마음을 적은 편지를 받게 되였다. "성적만 강조하지 말고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걸..." 담임으로서 일찍 알아차리지 못해 너무 미안했다고 눈물을 보이며 이 일이 자신에게는 교사인생 터닝포인트(转折点)가 되였다고 했다.
'엄한 선생님 밑에 뛰어난 제자가 배출된다'는 말이 있듯이 학생들에 대한 요구도 엄격히 하는 한편 자신에 대한 요구도 높였다. 학교에서 마련해준 각종 학습기회를 놓치지 않고 참가하였고 2019년 1월에는 학교측에서 마련한 기회를 통해 일본에 2개월간 학습을 다녀오며 자신을 부단히 충실히 했다.
리매향 교사는 담임을 맡은 3년간의 시간은 성장하는 시간이였고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였다고 한다. 교사의 가치관이 학생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겪었던 그는 더는 '성적제일'을 강조하지 않고 있다. 성적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각 방면으로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또한 교사로서 꼭 해야 할 일이라는 그는 마냥 엄격한 교사가 아닌 '강함과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