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하강반에 피여난 아리랑꽃 -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
发布时间:20-01-21 03:29  发布人:金卓    关键词: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의 전신은 1979년 11월 16일 설립된 영구시조선족문화이다. 1975년 11월 반금지구가 영구시에 병합되며 영구시 조선족인구는 1만 7,000명에 달했다. 영구시위와 시정부는 날로 높아가는 조선족군중들의 민족문화생활의 수요에 따라 조선족문화관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1979년 10월 ‘영구시조선족문화관을 설립할 데 관한 청시보고’를 료녕성문화청에 제출, 비준을 받아냈다. 그해 11월 16일, 영구지역 광범한 조선족군중들의 환호 속에 영구시조선족문화관이 정식 설립됐다.

설립 초기 영구시문화국 간부였던 리창영이 부관장에 부임되여 사업을 주도, 인원 편제는 9명이였다. 모든 신생사물이 그러하듯 당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관사가 없어 영구시가극단의 방치된 방 한칸을 얻어 ‘세방살이’를 해야 하는 여건 속에서도 문공대를 조직하고 다양한 전통민속활동과 새해맞이, 3.8절, 단오절, 국경절맞이 등 행사들을 조직, 진행하며 조선족군중들의 호응과 지지를 모았다.

1985년 9월 료녕성문화청, 영구시정부, 영구시문화국은 각각 20만원, 15만원, 5만원을 투입하여 영구시 역전구 동창리 9호에 건축면적이 1,063평방의 관사를 신축했다. 당시 이 관사는 전 성에서 1류에 속했다. 1986년 3월 문화관은 업여문예대를 조직, 20여세의 문예골간 30여명이 망라되였는 바 1991년 8월까지 영구지역 조선족사회의 문예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92년 3월 영구시조선족문화관은 영구시조선족문화예술관을 개칭하였다가 이듬해인 1993년 10월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으로 이름을 고쳤다. 현시점에서 영구지역의 적지 않은 조선족유지들이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으로의 개명에 대해 석연치 않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은 설립되서부터 현재까지 ‘제1기료녕성아리랑음악회’를 비롯하여 선후로 ‘중국영구중한가무절’ 7차, ‘영구시아리랑문화예술절’ 24차, ‘영구시소수민족중소학교문예공연’ 9차 조직, 진행했으며 동북3성을 포함한 전국성적인 문예공연에 20여차 참가했다.

1981년 8월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문화관은 212구락부에서 ‘영구지구제1기조선족문예공연’을 진행했다. 12개 대표팀의 228명의 업여문예골간들이 참가한 공연은 대성황을 이루었다. 문화관은 그중 우수한 절목을 추려 각 조선족촌에 내려가 21차례 순회공연을 진행, 공연을 관람한 관중이 1만 2,000명에 달했다. 이듬해인 1982년 중국공산당 창립 61주년 경축행사로 7월 1일부터 17일까지 영구, 개현, 대와, 반산 등 현의 조선족촌에 내려가 순회공연을 진행, 조선족관중이 1만 2,500명을 웃돌았다.

이외에도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은 ‘과룡(科龙)여름의 밤’ 음악회, 영구시홍루컵민족민간악기성악시합, 영구시교향악음악회, 영구망아산어머니절소수민족문예공연, 영구시새해맞이음악회 등 다양한 문예행사를 조직, 진행하였다.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은 영구지역 소수민족의 문화사업을 규범화하기 위해 2010년 ‘영구지구소수민족업여문예단체련계망’과 ‘영구시조선족주민구역련계망’을 건설한 동시에 ‘영구지구소수민족업여문화단체 및 예술인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은 설립되서부터 시종 업여예술단체 설립과 부축에 심혈을 기울려왔다. 영구시조선족성광아동예술단은 영구시조선족소학교 예술훈련반을 기초로 2001년 5월에 설립된 예술단체이다. 예술단은 설립 초기 단원이 30여명으로부터 현재의 5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무용, 성악, 합창, 관현악, 가야금, 사물타악, 전자풍금 등 7개 팀을 둔 비교적 전업적인 예술단체로 거듭났다.

2010년 문화관의 주도로 설립된 영구발해조민족합창단은 영구지역 뿐만 아니라 한국, 조선에서 공연을 펼침으로서 영향력을 국외에까지 파급시켰다. 국외와의 문화교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03년 문화관은 한국 강원도연예협회 춘천지부와 ‘문화예술교류을 진행할 데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총 7차례 ‘중국영구중한합동공연’을 진행한 동시에 문화관 문예일군들을 주축으로 7차 한국 방문공연을 진행했다.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은 영구지역 조선족문학창착의 발전에도 큰 공헌을 하였다. 문화관은 1988년 조선문 문학지 《갈피리》를 창간, 성내 뿐만 아니라 동3성 조선족작가들의 소설, 시가, 산문, 민간문학을 실었다. 《갈피리》는 창간된 지 3년 만인 1991년 이런저런 원인으로 폐간의 운명을 피치 못했으나 현재까지 영구지역에서 유일한 조선문 간행물이였다는 점에서 특수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무형문화재 발굴사업에서도 문화관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문화관은 2008년부터 개주시 서해판사처 쌍천안촌에 내려가 ‘탁주빚기’와 ‘아리랑’노래 발굴에 온갖 심혈을 몰부었다. 10년 후인 2010년 11월 19일 《영구일보》에 공시된 영구시 시급무형문화재 명단에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에서 신청한 ‘영구시조선족민간전통수공예—탁주’와 ‘영구시조선족민간전통음악—아리랑’이 이름을 올렸으며 최종 ‘영구시조선족민간전통음악—아리랑’이 영구시 시급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였다. 문화관은 향후 ‘탁주’의 무형문화재 등록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근 40년 동안 리창영의 뒤를 이어 리원필, 리금보가 선후로 관장직을 담당했으며 리금보가 퇴임한 후 관장직은 지금까지 공석으로 남아있다. 현재 문화관의 전반 사업은 현임 당지부서기 곽해군이 이끌어나가고 있다. 인원 편제는 10명이다.  

최근년간 영구시소수민족문화예술관은 커다란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쾌적한 사무환경과 현대화한 사무설비를 갖추고 다기능홀, 무용실, 성악실, 기악실, 미술실, 로년활동실을 완벽하게 구비하고 있다. 매주마다 문예애호자들을 대상으로 성악, 기악, 무용 보도를 하고 있으며 조선족학교, 개발구, 조선족촌 등 조선족문화특색기지와 기타 조선족단체에 대한 예술보도를 통해 우리 민족문화의 계승발전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민족문화의 선전을 위해 상기 훈련보도는 우리 민족에게만 제한하지 않고 만족, 장족, 회족 등 민족에게도 미치고 있다.

문화관은 최근년간 영구시조선족로인협회에 넓은 활동실을 마련해주고 로인들이 활동에 필요한 모든 설비와 시설을 무료로 제공하여 로인들이 근심걱정없이 모여서 각종 활동을 하면서 즐길 수 있도록 하였다. 로인들이 활동여가에 독서를 할수 있도록 《로인세계》,《료녕조선문보》등 조선어 잡지나 신문을 장기적으로 주문하고 정기적으로 합창시합, 문구시합 윷놀이시합 등 다양한 행사를 조직하고 있다. 윷놀이시합은 앞으로 규모를 확대하여 로인들 뿐만 아니라 조선족어린이들과 중년층도 포함시켜 영구지역의 특색있는 민족민속놀이로 계승, 발전시킬 계획이다.

영구시소수족문화예술관은 료하강변에 자리잡고 있는 영구라는 도시에서 영구시 조선족사회의 대단결, 대번영, 대발전을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우리 민족 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김창영 기자, 량순화 특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