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发布时间:21-01-27 03:16  发布人:金卓    关键词:   

학교교육 핵심은 인격체 구축

학생인격 배양에 교사 마음가짐 중요

 

“학교교육의 기본은 지식 전수이지만 핵심은 지식 전수를 바탕으로 한 인격 구축이여야 한다. 학생들의 옳바른 인격 배양에 교원들의 마음가짐이 아주 중요하다. 조선족학교의 생존과 발전의 핵심은 교사의 도덕성 여부다.” 이는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박영림 교장의 지론이다. 그만큼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최근년간 교원들의 도덕교육을 학생교육 못지 않게 중요시해왔다. 박영림 교장에 따르면 학교의 이 한 조치는 학교에 대한 전 사회의 긍정으로 이어졌는바 이는 학교의 안정적인 운영과 발전의 담보로 되였다.

 

교사대오 도덕교육 선행

 

학교교육에서 교원의 본보기 역할은 홀시할 수 없다. 교원의 일거수 일투족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가히 평생 간다고 할 수 있다.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교원들의 도덕교육을 학교교육의 중요한 일환으로 간주하고 여러가지 구체적인 조치들을 취하고 일상화했다.

 

박영림 교장에 따르면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매달마다 당원대회를 소집하고 매계도 한차례 당과를 개강, 청취하며 상하반년 각각 조직생활회를 가지고 매년마다 민주평의를 진행하는 ‘네개 하나’ 제도를 실시했다. 결과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당지부가 중공영구시직속기관사업위원회 선진당지부로 평선되고 정영자 서기가 우수당무사업자, 김영란이 시교육국 우수공산당원으로 표창받음으로써 학교의 명망이 주류사회에도 널리 알려져 대외 홍보효과를 톡톡히 하고 있다.

 

검사제도의 투명성을 높여 매주, 매월, 매 학기 매 교사의 사업량, 출근상황, 교학성적, 담임교사성적 등을 공개하고 우수한 교원은 표창하고 문제점이 있는 교원에 한해서는 개진의견을 제출함으로써 교원들의 사업적극성을 불러일으켰다. 현시점에서는 검사가 무의미할 정도로 교원들의 사업완성도가 완미에 가깝다고 박영림 교장은 흐뭇해했다.

 

박영림 교장에 따르면 우수한 담임교사대오 건설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반주임 임용에서 ‘학생사랑’, ‘과학적 관리사유’, ‘확고한 교육리념’ 유무에 초점을 맞추었다. 박영림 교장의 말을 빌면 학교지도부의 허다한 결책들은 반주임을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구체적 실천에 옮겨지기에 훌륭한 반주임대오는 학교운영의 핵심력량이다.

 

분조수업으로 교수효과 극대화

 

“학교교육의 기본은 지식 전수다. 학생이 주체고 교원은 주도다.”,“소학단계에는 열독분석능력 배양이 주목표다. 초중단계는 자주학습, 학습방법 터득을 중요시한다. 고중단계는 대학입시에 초점을 맞춘다.”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이 한 원칙에 따라 한족학교에 비해 반급마다 학생수가 적은 실정에 근거하여 교수개혁을 효과적으로 진행했다.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2012부터 ‘분조교학모식’을 보급했다. 박영림 교장이 십수년간의 교수경험을 총화하여 고착시킨 교수모식으로 반급마다 학생들을 4명 내지 5명으로 분조하여 교학하는 것을 일컫는다. 학과마다 구체적 교학모식은 다르나 분조모식은 같다. 분조모식의 우월성은 조별 경쟁에 따른 학생들의 학습흥취 유발과 학습적극성 고양이다.

 

다른 한면 조선어문과 시험내용과 시험형식을 개변하여 학생들의 조선어문수준이 내려가는 추세를 철저히 막았다. 현재 조선어문과의 시험내용은 주요하게 열독과 분석에 한하고 있으며 시험형식은 이전의 필답 위주에서 필답과 구답을 병행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구답의 비중을 늘린 것은 학생들의 언어표달능력을 제고시키는 데 모를 박은 것이다.

 

소학부와 초중 3년간 한어문 교과서를 한족학교의 어문교과서로 대체하여 학생들의 한어수준을 대폭 제고시켰다.

 

‘적합성 교학’은 학생들이 선호하고 있다. 고중 2학년에서 문과반과 리과반을 가른 후 어문(조선어문, 한어문)과는 문과반, 리과반 각각 수업하지 않고 문과반과 리과반 학생들의 수준과 요구에 따라 새로 반을 편성하여 수업한다.

 

수업준비와 청강제도를 엄격히 하고 과당감독기제를 도입하였다. 수업시간에 학생 자주활동을 강조하고 수업 하루 전 이메일형식으로 교수안을 교무처에 바치도록 하였으며 청강이 끝난 후 퇴근 전에 청강기록 복사본을 교무처에 바치도록 하였다. 동시에 교장, 교학 부교장, 교무주임을 3개 청강소조 조장으로, 각 교연조장을 성원으로 하여 예고 없이 매 교원의 과당을 청강하고 청강 상황을 교사평가에 관철시켰다. “언제, 어느 과당을 청강하는지 알지 못한다. 청강하든 안하든 언제나 청강한다는 생각으로 교수안을 짜고 수업한다. 청강하든 청강하지 않든 교수효과는 차이가 없다.”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교원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그만큼 교원들이 항상 사명감을 갖고 교학에 림한다는 얘기다.

 

개혁의 성과는 긍정적이다. 2009년 김동매 학생이 영구지구 문과장원의 신분으로 북경대학에 입학하며 영구지역에서 북경(청화)대학에 입학한 첫사람이 되였다. 2012년,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에서는 38명 학생이 대학입시에 참가, 그중 5명 학생이 600점 이상의 좋은 성적을 따냈으며 리금진 학생이 청화대학에, 전태명 학생이 북경대학에 입학하였다. 그후 2013년 문호학생의 뒤를 이어 지난해 정지연 학생이 또 북경대학에 입학하며 교수개혁의 단맛을 톡톡히 보고 있다.

 

특색교육으로 학생들의 심신건강 보장

 

영구시교육계에서 ‘체육’ 하면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를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의 체육교학은 성적이 돌출하다. 지난해 영구시 교육국과 체육국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영구시소학생축구시합에서 우승한 후 영구시를 대표하여 료녕성소학생축구시합에 참가, 준우승을 차지하는 실력을 과시했다. 영구시교육국에서 해마다 조직하는 교직공배구시합에서도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교직공팀은 항상 1, 2등을 다툰다.

 

박영림 교장은 이러한 성적은 십수년간 해마다 5월과 10월 교내 축구, 배구, 롱구 시합을 조직하고 9월 중순 체육예술절을 진행해온 것과 갈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단순히 체육행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박영림 교장의 견해다.

 

“오후 세시 이후부터 학교 운동장에는 축구하는 학생, 배구, 롱구를 하는 학생들로 활기가 넘친다. 매주 1, 2차 체육선생과 담임교사선생의 조직하에 초중부와 고중부의 축구대항시합, 초중부 3개 학년간의 축구대항경기 또는 배구경기가 진행된다. 몇년 전에는 학생들이 운동중 다칠가 근심하는 선생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런 근심을 하지 않는다. 운동이 그만큼 학생들의 심신건강에 좋고 과당교학에도 적극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박영림 교장은 이런 전방위적인 체육운동을 영구지역 기타 한족학교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학생수에 비해 운동장이 작은 것은 말치 않더라도 소학교와 중학교는 중점학교 진학압력에, 고중은 대학입시 압력에 될수록 운동시간을 줄인다는 것. 심지어 대학가기 전 축구 한번 차보지 못한 학생들도 있다는 것이다.

 

박영림 교장은 “현재 우리 학교는 고중3학년을 제외한 아래 학년급에 한족학교로 류실된 조선족학생은 한명도 없다.”면서 “이는 최근년간 출중한 대학입시 성적과 교육교수질의 영향도 있겠지만 마음껏 웃고 운동하면서 공부하는 학교환경이 주요 원인이다.”고 못박았다.

 

되돌아보는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 발자취

 

현재 영구지역 조선족교육을 대변하고 있는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1978년 11월에 설립되였다. 해방초기 영구지역에 조선족소학교 졸업생들은 안산 등 외시의 조선족고중에 입학해야 했는데 가정조건이 좋은 몇몇 학생만 진학하고 대부분 어린이들은 학업을 포기해야 했다. 당시 영구지역 21개 조선족생산대대 당지부 서기, 대대장과 중소학교 가장 대표들은 영구시 유관 부문을 찾아 조선족고중 설립을 호소했다. 1977년 나라에서 대학입시제도를 회복한 후 조선족군중들의 이 한 목소리는 더욱 높아졌다. 당시 영구시위통전부, 영구시정부문교판, 교육국 등 유관 부문의 적극적인 협상하에 1978년 8월 24일에 소집된 영구시위상위회에서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를 설립할 데 관한 결정을 토론, 통과하였다. 몇달간의 준비 끝에 1978년 11월 25일, 료녕성‘5.7’간부학교(대와현에 위치한) 교사를 빌려 고고성을 울렸다. 이로써 영구시는 소학교로부터 고중에 이르기까지 조선족교육체계를 완벽하게 갖추었다. 당시 학생수는 2개 반 111명이고 교원은 9명이였다. 이듬해인 1979년말, 영구시교육국은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의 겨울철 난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영구시16중의 부분 교사를 빌려 학교를 영구시내로 옮겨온 동시에 60만원을 투입하여 교사 신축에 들어갔다. 1980년 새 교사가 락성돼 새 교사로 입주하였다.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는 설립되여서 몇차례 통합사건을 맞는다. 1981년 개현서해농장조선족소학교와 로변구로변공사쌍하조선족소학교의 초중부가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에 통합되는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 대석교시수원진신광조선족소학교, 대석교시수원진신건조선족소학교, 로변구쌍하조선족소학교 등 3개 소학교, 2001년 개주시쌍천안조선족소학교가 학생수의 급감으로 통합되면서 명실상부 영구지역 유일한 민족학교로 부상하였다.

 

박영림 교장은 “학교가 설립초기에 비해 거족적인 발전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현시점에서 많은 문제점에 봉착하고 있다.”고 했다. 우선 교원대오문제다. 반급과 학과에 비해 교사가 턱부족이다. 교장을 비롯하여 교직공 전원이 교단에 오르는 상황에서 교사들의 사업량을 증가하고 대과교원을 초빙하는 등 방법으로 정상교학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며 국가적 측면에서 소수민족학교의 소수민족교사 배양을 의사일정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피력했다.

 

다음은 영구시조선족교육체계에 문제점이 있다. 이는 2000년대 영구지역 조선족학교들을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에 통합할 당시 발생한 페단이다. 통합 전에는 각 조선족학교에 학전반 혹은 유치원반이 있었으나 조선족고급중학교에 통합하면서 유치원을 배제시켰다. 결과적으로 지방의 조선족어린이들이 집과 가까운 한족유치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최근년에 유관 부문에서 영구시조선족고급중학교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는 것을 비준하면서 상황이 다소 완화되기는 했지만 제 궤도에 들어서기까지는 시간적 재정적 지원이 필수다.

 

시급한 것은 현 교수청사의 불안요소 해소다. 학교 주 교수청사는 1980년에 지은 건물로 현대화교수요구에 부합되지 않는 동시에 학생안전에 영향주고 있다. 박영림 교장은 “학교 건축물중 숙사와 식당 서쪽부분이 항진강도 D급 이외 중학부 교수청사, 소학부 교수청사, 식당 동쪽부분은 위험건물에 속하기에 상급부문에 수건 혹은 신축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창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