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텃밭이야기2
发布时间:20-09-21 08:57  发布人:金卓    关键词:   

수필

텃밭이야기2

   (심양) 서정순

 “이 동네 참 사람 사는 동네 같네요.” 집을 임대하러 왔던 어떤 조선족 아낙네가 우리 집 앞 뜰안에 있는 텃밭을 보며 했던 말이다. 그 텃밭이 내 것도 아니건만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 어깨가 으쓱해났다. 별스레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아늑하고 정감이 넘치는 동네 같아보였다. 다시 가만히 생각해보니 ‘같아 보이는것’이 아니라 확실히 아늑하고 정감이 갔다. 내가 우리 동네를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데는 우리말을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환경 외에도 뜰안의 텃밭도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나는 참 그 텃밭을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이 동네에 정착해 산지도 벌써 20년이 되여온다. 흘러가는 세월만큼 건물도 낡아가고 마음의 격정도 사라져간다. 그러나 가을밤 밤풀벌레소리를 들으며 무디여진 감성이 노긋노긋 녹아내리는 것은 단연코 이 텃밭 때문이리라.

  그 동안 이 텃밭은 나에게 무한한 상상의 공간을 안겨주었다. 밤이슬 내린 새벽이나 달뜨는 밤, 이 텃밭을 보고 있노라면 웬지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 어떤 말 못할 달콤한 정서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어느 한 여름밤에는 달빛 비친 텃밭에 반해 시 한수까지 지은 적이 있었다. 달빛이 은은하게 비쳐드는데 미동도 없이 고요하게 서있는 텃밭의 고추들과 접시꽃이 견디지 못할 정도로 아련하고 신비로운 미의 세계를 펼쳐주었던 것이다. 텃밭은 나의 심령을 정화시키는 치유의 무대였고 내 마음과 교감하는 소통의 공간이였으며 나에게 아름다움을 펼쳐주는 마당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 텃밭주인에게 언제나 감사한 마음이다. 오늘 아침도 밖을 나서다 텃밭 가장자리에 피여있는 국화꽃을 보며 3층 아주머니에게 텃밭에 꽃을 심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그동안 불모지 같았던 이 공간을 아름다움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든 것은 모두 3층 아주머니의 덕분이다.

  해마다 기나긴 겨울이 가고 봄 오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3층 아주머니가 이 텃밭에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해마다 조금씩 변화가 생기니 말이다. 지난해에는 오리오리 실실이 피여난 노오란 국화꽃을 텃밭 가장자리에 심어 오가는 길손들을 경이롭게 하더니 올봄에는 피를 토하듯 진붉은 양귀비꽃을 텃밭 가장자리에 심어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텃밭의 이랑들도 그 옛날 조선시대 처녀들의 가리마마냥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반듯하게 줄이나 있다. 텃밭의 남새잎들도 유난히 반들반들 윤기가 돈다. 나는 그 텃밭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한 폭의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모든 예술품들이 장인의 피타는 노력으로 이루어졌듯이 이 텃밭 역시 아주머니의 땀과 정성의 결실이다.

백프로 유기농 채소를 가꾸느라 아주머니는 지극정성이다. 비가 오면 스륵스륵 비물을 쓸어담는 소리가 들려오고 벌레를 방지하느라 마늘즙을 만들어 새벽이면 식식 분무기를 눌러댄다. 그리고 오고 가는 사람들 기분 좋으라고 가장자리 빈 공간에 철따라 꽃들을 심는다. 조그만 텃밭이지만 봄, 여름, 가을 꽃들이 비여있를 새가 없다.

  올봄 꽃을 심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내게 아주머니는 “여긴 사람 다니는 골목이라 내가 꽃을 더 심어. .꽃을 보면 사람들이 기분이 좋아지잖아. 이제 저 양귀비꽃이 지면 노오란 원추리꽃이 필거야. 그리고…” 텃밭 이야기만 나오면 온 얼굴이 웃음으로 넘치는 아주머니는 그 자그마한 텃밭이 마치 하나의 사업이라도 되는 양 자기의 구상을 이야기하였다. 아주머니의 그 구상대로 텃밭에는 양귀비꽃이 지자 여린 상추, 쑥갓과 더불어 노오란 원추리꽃이 피여났고 원추리꽃이 시들어가자 울긋불긋 앙증맞은 채송화들이 피여나 뜨거운 여름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자주빛 도라지꽃도 질세라 모습을 드러냈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는 지금 텃밭 가장자리에는 국화꽃이 만개해있고 봄 한철 피였던 홍매나무와 무궁화나무에는 줄을 타고 올라간 잔잔한 빨간꽃들이 피여있다. 내 눈에 이 텃밭은 그냥 하나의 박물관이고 예술품이다. 그리고 아주머니는 그 박물관을 주관하는 관장이고 예술품을 만드는 장인이다. 모든 장인의 기쁨이 바로 자기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아름다운 미의 세계를 감상하고 마음의 힐링을 얻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 누가 텃밭을 구경하거나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누구보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아주머니가 그래 정녕 장인이 아니란 말인가.

  살아가다보면 커보였던것들이 작아보이고 작아보였던것들이 커보이는 경우가 많다. 자라나는 마음과 더불어 생각도 달라지고 가치관에도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든 창출하지 않든 장인의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할때 일은 고상해지고 신성해지며 즐거워진다. 애를 키워야 하고 재산을 늘궈가야 하고 사회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무슨 진부한 소리를 하냐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설사 그것이 하나의 공상이나 바람과 같은 소망이라도 모든 일에 장인과 같은 사람들이 많아질 때 사회는 안정되고 생활은 아름답고 즐거워진다고 믿고 있다. 나는 아주머니의 텃밭과 같은 공간이 우리 주위에 점점 많아졌으면 좋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아빠트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이 모두 아주머니같다면 우리 아빠트 전체 동네가 사람 사는 맛이 나지 않을가. 내가 아빠트 관리인이라면 아주머니와 같은 사람에게 아빠트 전체를 맡기고 싶어진다.

아주머니의 텃밭이 있어 오늘도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