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해전부터 텃밭을 가꾸고 있다. 대학생활 4년을 제외하곤 20대 후반까지 시종 태여난 농촌고향에서 생활하여 온지라 도시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도 농촌정서를 버릴수 없었다. 생활에 얼마간 여유가 생겨 몇년전 텃밭이 있는 살림집을 마련하고 겨울 한철을 내놓곤 아침저녁으로 텃밭과 씨름하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군 한다.
어느날 우연히 우리 집에 들렸던 친구가 내가 가꾸는 텃밭이 신기하다며 내 모르는 사이 사진을 찍어 위챗에 올렸다. 사진을 본 대부분 친구들이 먹고푸다는둥, 가지고싶다는둥, 부지런하다는둥 등등 호기심을 나타내는 와중에 그만한 채소를 사는데 돈 몇푼 드냐며 고생을 사서 하는가고 롱을 거는 친구도 있었다.
전혀 악의없는 친구의 롱을 접하고 오랬동안 잊고 있었던 어렸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소학교 5학년이였으니 내 나이 열한살 때의 일이다. 당시 내가 사는 마을의 공소합작사에서는 겨울철에 당년짜리 물푸레나무를 한근에 2전씩 수구했었다. 어느 일요일, 나는 부모 몰래 동네 형아들의 뒤를 슬금슬금 뒤쫓아 그 물푸레나무를 하러 갔었다. 부모 몰래 가느라 점심을 챙기지 못한 나는 형아들이 나누어주는 점심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오후 세시쯤 내 힘에 버거운 물푸레나무단을 메고 공소합작사까지 왔다. 형아들이 다 팔고 마지막에 내 차례였다. 14근, 28전이였다. 나에겐 큰 "목돈"이였다.
헌데 내가 물푸레나무를 파는 장면을 한반에 다니는 애가 목격했었다. 그 애는 아버지가 공소합작사의 간부라 아버지한테 놀러왔다가 면바로 나를 발견했던 것이다. 산에서부터 물푸레나무단을 메고 공소합작사까지 오느라 땀에 흠뻑 젖은 나를 보고 그 애는 그 28전 땜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며 동정어린 눈길을 보냈다. 그리고 그 동정어린 눈길은 내가 심양에 정착하기전까지 나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었다.
친구의 롱을 접하고 어렸을 때의 그 일이 떠오름은 무었때문일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으나 문득 생각히운 것을 보면 텃밭과의 씨름은 계속될 것이 뻔한 노릇이다. 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