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나는 특별히 조선어문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즐겼다. 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족학교에서 30년간 조선어문을 가르치면서 학생들과 함께 잡지를 읽군 했다. 편집선생님들이 알심들여 편집한 글들을 읽으며 우리 말과 글의 매력에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였다.
지난해 9월 22일, 사업상 수요로 타민족학교에 와 조선어문을 가르치게 되였다. 낯선 환경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조선어문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기대와 설렘도 컸다. 학교에 도착하자 교장선생님께서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시며 말씀하셨다.
“최선생, 우리 학교를 원래 다니던 학교처럼 생각하고 마음 편하게 일하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제때에 말하오.”
교장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에 긴장이 한결 풀렸다. 마침 그날 오후부터 수업을 할 수 있겠느냐는 교무주임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선뜻 대답했다. 타민족학생들에게 조선어문을 가르쳐본 경험은 없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수업 준비에 정성을 쏟았다.
오후 첫 수업이 시작되자 나는 1학년 교실에 들어섰다. 새로운 교실과 설비, 낯선 학생들 앞에 서니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교단에 섰을 때보다 더 긴장되였다. 그러나 ‘하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학생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하나같이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새 힘이 솟구치는 것이였다. 그 순간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라는 말의 함의를 다시 한번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말을 잘 가르쳐야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첫 시간에는 모음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은 따라 읽고 쓰면서 수업에 잘 참여하였다.
전교에서 조선어문을 배우는 학년은 1학년뿐이고 교원도 나 하나였다. 40여명 학생 가운데 조선족학생은 몇명 되지 않았다. 발음 요령이며 수업의 환절 등을 대부분 한어로 설명해야 했기에 줄곧 조선어로 수업해온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나는 매 수업마다 교수안을 참답게 작성하고 재미있는 수업 활동을 조직하기 위하여 여러모로 애썼다. 우리 말을 정확하게 가르치기 위해 발음 하나, 자모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였으며 학생들의 발음이 틀리면 인내성 있게 바로잡아주었다. 글자 한획도 정성껏 쓰도록 이끌었다. 자모음카드와 단어카드, 표양카드를 직접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고 규률을 잘 지키거나 표현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예쁜 표양카드를 선물했다.
집중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수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준비됐나요? 네, 네, 선생님!”, “자세는~ 똑바로!”, “누가 누가 듣기 짱? 내가 내가 듣기 짱!”과 같은 재미있는 구령도 활용했다. 이러한 구령은 아이들의 집중력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 말 단어를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되였다.
수업하러 가는 나를 보던 5, 6학년 학생들이 종종 다가와 “선생님, 무슨 학과목을 가르치십니까?”라고 묻군 했다. 내가 1학년 꼬마친구들에게 조선어문을 가르친다고 하자 그들도 배우고 싶다며 자기들에게도 가르쳐달라고 했다.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우리 말을 배우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침마다 학교 대문에 들어설 때면 멀리서 1학년 학생들이 달려와 두 손을 배에 모으고 “선생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며 허리를 굽혔다. 이를 지켜본 다른 선생님들도 조선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이 제법 인사말을 잘한다며 대견해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복도와 운동장에서 만나는 고급학년 학생들도 먼저 조선말로 인사하기 시작했다.
놀랍기도 하고 궁금해서 어떻게 조선말을 배웠느냐고 물으니 1학년 학생들이 하는 말을 듣거나 집에서 동생에게 배웠다고 했다. 어떤 학생은 동생을 집안의 ‘조선어문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오이, 우유, 고추 같은 단어를 조금씩 익히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직접 가르치지 않은 학생들까지 우리 말에 관심을 보이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
점심시간에 학교 주변을 거닐 때도 학생들은 나를 발견하면 달려와 “国旗는 조선말로 어떻게 말해요?”, “树는요?”, “花는요?” 하고 묻는다. 나는 하나하나 성의껏 대답해주며 아이들이 교실에서 배우지 못한 지식들을 생활 속에서 익히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날에는 년세가 지긋한 선생님 한분이 사무실로 찾아와 조선어를 배우고 싶다며 매일 한마디씩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딸이 어려서부터 조선족학교에 다녔고 지금은 연구생 공부를 하고 있는데 늘 바쁘게 보내다보니 자신은 배울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다.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말과 별보다 빛나는 우리 글을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꽃 피워주고 싶었던 나는 기꺼이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오늘도 나는 타민족학교에서 우리 말과 글의 아름다운 꽃을 한송이씩 피워가고 있다. 최봉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