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세기 8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40년 넘는 세월동안 민족복장 사업의 외길인생을 걸어온 유옥란(70세)은 조선족 전통 복식 문화를 지키고 전승하는 데 한평생을 바친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조선족 복식 제작기예 전승인이다. 그녀의 인생은 민족복식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게 변혁을 모색한, 살아있는 문화 전승의 기록이기도 하다.
어머니로부터 배운 복장수업 평생직업이 되다
고중을 졸업한 후, 몸이 약해 농사일이 힘들었던 유옥란은 어머니 강선옥의 권유로 집에서 복장재단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것이 훗날 그녀의 평생 직업이 될 줄은 당시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유옥란에게 조선족 전통복식의 첫 스승이였다. 시집갈 나이가 되자 어머니의 잔소리도 심해졌고 유옥란은 자립해 자신의 길을 개척하겠다고 결심했다.
1978년, 그녀는 연길에 살고있는 언니를 찾아갔다. 연길에 와서 처음에는 할 일이 없어 막막했고 찬장유리그림 그리기 등 일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늘 복장일에 향해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여 신흥가두 복장점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자리가 없다”며 거절당했지만, 그녀는 여러 번 찾아가 간청했다. “한복도 하고 무엇이든 잘한다”며 시험해 보라고 했고 결국 그 복장점에 들어가게 되였다. 그때 그녀는 생후 4개월 반밖에 안 된 아들을 업고 발전촌에서 복장점까지 걸어서 출근했다. 이것이 유옥란의 복장사업을 향한 실제 출발점이였다.
1980년대 초부터 그녀는 본격적으로 복장사업을 시작했다. 1988년에는 젊은 나이에 상해로 건너가 석 달 동안 서양식 의상 디자인과 기술을 배웠다. 당시 네 살배기 아들을 남편과 시부모님께 맡기고 떠나는 결단이 필요했지만 이 경험은 전통과 현대를 결합하는 중요한 초석이 되였다. 그녀는 조선족복장만 고집하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맞춰 다양한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였다.
2014년, 그녀의 사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연변대학에서 장식 디자인을 전공한 아들이 합류하면서 ‘수가인(绣佳人)’이라는 브랜드가 탄생했다. 아들은 디자인과 기술 관리, 컴퓨터 작업, 기계 관리 등을 맡았고 2011년에 결혼한 며느리도 곧 함께 일하며 젊은 감각의 디자인 아이디어를 더했다. 이로써 가족이 함께 하는 전승의 맥락이 형성되였다.
‘변화’와 ‘혁신’ 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조화
40년이 넘는 사업 기간 동안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큰 도전은 ‘변화’와 ‘혁신’이였다. 복식 산업은 5년 주기로 소재, 색상, 디자인이 빠르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한때 잘 나가던 디자인도 시대에 뒤처지면 창고에 쌓이기 일쑤이다.
더 큰 고민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였다. 최대 30명에 이르는 직원들, 그중 많은 이가 농촌에서 기술을 배우며 생계를 이어나가려는 사람들이였다. 직원들이 일거리가 없어 공장 기계 앞에 앉아 있을 때면 유옥란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들을 위해 시장에 나가 단가를 낮춰가며 일감을 찾아다녔고 번 돈은 자신보다 직원들에게 먼저 돌렸다. “그들이 나를 믿고 왔는데...”라는 생각이 그녀를 움직였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는 전통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현대인의 생활에 맞는 복식을 고민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며느리의 젊은 감각이 더해지며 ‘개량복’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전통 한복의 너른 소매와 긴 치마는 현대인의 활동에 불편함을 주었고 젊은이들은 더 세련되고 편안한 옷을 원했다. 유옥란과 며느리가 만들어 낸 개량복은 여러 변화를 거쳤다. 소매는 좁아지고, 전통의 ‘꼬리치마’ 대신 활동성이 좋은 통치마가 등장했다. 특히 목선을 강조하는 ‘깃’ 부분은 전통적인 딱 맞는 형태에서 목선이 길어 보이는 ‘사령(斜领)’디자인으로 변화했다. 이는 외관상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과 업무에서의 편의성을 크게 높였다.

재단 방법에서도 변화가 있었다. 전통적인 ‘평면 재단법’은 인체의 립체적 곡선을 완벽히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립체 재단’ 방식을 도입해 어깨와 소매 부분이 더 자연스럽고 멋스럽게 떨어지도록 개선했다.
디자인과 소재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외국에서 들여온 꽃무늬가 아름다운 천을 사용했고 허리 부분에 고무줄을 넣어 입고 벗기 편한 치마를 만들었다. 식당 종사자들을 위해 기름이 잘 묻지 않는 소재와 디자인을 개발하고 앞섶이 벌어지지 않도록 색동 줄을 장식으로 더해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모두 잡았다. 이러한 개량복은 식당 유니폼으로 큰 인기를 끌어 한 해에 600벌 이상 팔리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국가급 전승인의 사명을 안고
유옥란은 단순한 사업가를 넘어 문화 전승인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아들, 며느리, 조카를 포함해 후계자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있다. 특히 조카는 기계 수리부터 종이 도면(纸版) 제작, 컴퓨터 작업까지 두루 섭렵하며 훌륭한 전승 후보로 자리 잡았다.
그녀의 활동 령역은 연변을 넘어 흑룡강 등 동북 3성 조선족 산재 지역으로 확장되였다. 2023년, 유옥란은 연변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의 현지 답사에 전문가로 동행하면서 흑룡강 지역의 조선족 문화 전승 현황을 살피고 필요한 기술과 디자인을 전파하는 데 기여했다. 그녀가 만든 옷은 이 지역 공연 단체와 문화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였다.

유옥란은 어려운 시기를 여러 번 겪었다. 2015년 남편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4년 반 동안 병상에 누워 있었고 2019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남편을 돌보면서도 사업과 전승의 끈을 놓지 않았다. 1,000명이 참가하는 대형 농악무 공연을 위해 20여 일 동안 밤낮으로 1,000벌의 옷을 만들기도 했다. 직원들이 밤샘작업을 꺼리면 자신이 덜 벌더라도 야근비를 더 주며 ‘국가 임무’라며 설득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는 조선족 복식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에 맞는 옷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2017년 무렵이였다. 당시 연길시문화관에서 창작한 대형 중국 조선족 농악무에 천여 명이 참가했고 유옥란은 그 공연에 필요한 다양한 복식을 제작·공급했다. 이후 2021년 길림성 무형문화유산 전문가 조사팀이 연변을 방문했을 때, 그녀가 운영하는 ‘수가인’ 복장점도 주요 조사 대상이 되였다.



최근에도 2022년 ‘례의연변’공연복장과 2023년 집체결혼식복장, 2024년 복식기예전시복장, 2025년 중국조선족회갑잔치 등 지역의 여러 행사들에 아름다운 조선족민족복장들을 선보이면서 국가급 전승인으로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였다.
전통의 맥락에 녹여내는 ‘살아있는 전승’
유옥란의 복식 세계는 평면 재단법과 섬세한 바느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전통 한복은 평면으로 천을 재단해 비례에 맞춰 옷을 짓는 방식이며 도본을 만들어 몸에 맞는 형태를 잡는다. 바느질은 실의 간격과 방향, 감치는 방법 등 여러 기법이 어우러져 옷을 아름답게 완성한다. 그녀는 이러한 전통 기법을 가족과 제자들에게 전수하며 단순한 옷 한 벌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적 콘텐츠를 한 땀 한 땀 엮어내고 있다.

유옥란에게 복식은 생계 수단이 아니라 민족의 얼과 력사를 담은 문화유산이다. 어머니의 바느질에서 시작해 연길의 작은 복장점에서의 시작과 상해에서의 공부, 가족 브랜드 ‘수가인’의 탄생, 그리고 국가급 전승인에 선정되기까지 그녀의 삶은 조선족 복식의 현대적 전승사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전통의 맥락에 녹여내는 ‘살아있는 전승’을 지켜가면서 시대와 호흡하고 가족과 이웃, 제자들과 함께 걸어온 유옥란의 바늘끝에는 오늘도 과거와 현재를 잇는 민족의 혼이 담겨져 있고 아름다운 옷들이 한 점, 한 점 탄생하고 있다.길림신문